귀농을 계획하고 계신 님들께
귀농 !
서울 토박이가 틀에 박힌 생활이 싫어 이곳 충청도로 이주한 지 어느덧 4 년째
접어들었습니다. 귀농이 아닌 거농(居農)생활을 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님들께 전해드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귀농에 대한 꿈과 현실은 가혹하리만큼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거든요.
잠시 들러보거나, 쉬었다 가는 농촌의 자연 모습은 아름답거나 평화롭게 보일지 몰라도
그 내면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귀농에 대한 정보나,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우선 귀농의 형태에 따라 생계 문제에 대한 고려 사항입니다.
은퇴 후 경제력이 있는 분들의 은퇴형 귀농은 크게 걱정이 않되지만,
부양가족이 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이 있어야 하는 생계형태의 귀농은
정말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잘못된 판단이 본인은 물론 부양가족에까지 치명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다니면 많든 적든 간에 고정 수입이 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농촌으로
왔을 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본인 스스로가 소득을 창출해야 하니까요.
한 달 생계비를 계산해 볼 때 기본 식대와 광열비(겨울철 난방비고려), 친지 조경사비,
등을 평균적으로 계산해 보면 최저 월 백 만원은 되어야 합니다
년(年)으로 계산하면 천 이백 만원 입니다.
그렇다면, 귀농 초년생이 농촌에서 그만큼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느냐 하는 것 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농촌의 연령 분포 현실이 증명해 줍니다.
60 대가 50%, 70 대가 30%를 차지합니다. 어느 마을이고 비슷합니다.
왜 4, 50 대가 없을까요? 그만큼 소득이 없기 때문에 생활하기가 어려워
모두 떠나는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기술이 있다면 몰라도
단지 농업(축산, 유실수, 농산물)으로 생계를 꾸려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외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 수입되는 농산물의 종류와 량(量)의 확대로 농사 짓는 어르신들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면 뭔가 하기는 해야 하는데,
하는 것 마다 수입 농산물 때문에 가격이 폭락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것저것 수입 않되는 농산물이 없는 상황에서, 토박이 농민에게도 천 만원의 소득을
내기란 쉽지 않은데, 귀농 초보자가 가능할 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입니다.
귀농 첫해는 이방인으로서 마을에 적응하여야 하고, 둘째해에는 농작물 실습을 하게
됩니다. 어찌됐든 간에 셋째 해부터 소득이 발생한다 해도, 농지와 주택구입 자금을
제외하고 2년간의 생활 자금은 갖고 있어야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귀농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특히 학생이 있는 가족은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귀농에 실패하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
2. 귀농지 매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귀농 자금이 여유가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특히 생계형의 귀농인은
제 경험상 의견으로는, 처음부터 무턱대고 구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단 가고자 하는
곳에서 거주를 해 보고 그 후에 구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귀농하고자 하는 곳에 친지나 믿을 만한 연고자가 있을 때는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살아 보고 구입하는 것이 더 낳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1) 환경 사항
* 주변에 산이 있을 경우 바람이 지나가는 골 자리는 피해야 합니다. 인체에도 안좋고
땅(흙)이 거칠어 일반 땅보다 힘이 더 듭니다. 퇴비(비료)도 더 들어가고, 창마철에
바람이라도 세게 불거나 태풍이라도 지나가면 농작물이 쉽게 쓰러집니다.
농작물이 쓰러지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갑니다. 농사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 북향이나 서향의 농지와 주택은 피해야 합니다. 주택의 경우 겨울철 난방비가
남향보다 배나 더 듭니다. 농지도 마찬가지 농작물이 쉽게 병들 수 있고,
소출(수확)에 있어서도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 가축을 많이 사육하는 마을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름철 냄새와 병충해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축을 할 경우는 더 유리하겠지요.
* 환경조건이 나쁘다고 해서 무조건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두배 세배의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농사일에 이골이 난 토착민도 그런 곳은 피하는데
초보자에게는 너무 무리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2) 법적인 문제
* 농지나 건축물에 대한 등기부등본의 확인은 기본입니다.
* 항상 외지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길(道路)에 있습니다. 지적도 상에 길이 나와
있지 않은 땅과 주택은 아예 접근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외진 곳이나 막다른 곳에 있는 농지나 주택을 매입할 경우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지적도상에 있는 도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건물을 신축하려면 지적도상에 도로가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도시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도로가 지적도상에도 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농촌에는 옛날부터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시부길이 있었는데
60년대 새마을사업 일환으로 정부의 보상 없이 경운기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이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된 땅은 주민 편의상 내 주었을 뿐,
실제 지주(地主)가 있다는 것입니다.
경운기가 지나다니고는 있지만 사실은 남의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이지요.
결국 같은 농민으로 볼 때는 본인도 남의 땅을 밟고 다니니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지인이 들어오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딱 막아버려 주먹다짐에 법정까지
갑니다. 몇몇 사람이 다니기 위해 길을 내 주어야 하는 것은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막아도 된다는 실제 법적 판결이 났습니다.
3) 농지 매입 시기
* 농촌의 농지는 도시처럼 매매가 빈번하지 않아서 가격이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대개의 경우 누구네 밭이 얼마에 팔렸다더라 소문이 나면 그것이 기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팔린 땅보다 환경이나 입지조건이 좋은 땅은 밑져야
본전 식으로 가격을 올려서 내놓게 되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지가격을 모르는
도시인들이 볼 때는 싸게 보여 구입하게 됩니다. 결국 후회하게 됩니다.
* 농촌에 빈 집이 계속 나오는 이유를 알고 계신지요. 노인 어르신들만 사시는 집이
70%를 차지합니다. 길게 잡아 10년을 내다 본다면, 노환으로 떠나시는 분도 계시고
병환이나 농사일이 힘에 부쳐 도시의 자녀에게로 떠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들이 승계해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 대부분 매물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싸거나 적당한 가격에 나오는 매물들이 끊임없다는 것이지요.
대개 이런 것들은 소리소문 없이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동네 안에서 처리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렇게 싸거나 좋은 것들이 외지인에게까지 차례가 갈 리가 없지요
* 그렇다면, 왜 현지에서 살아보고 구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
현재 농촌에는 빈집이 많습니다.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농가주택을
임차해 농사도 지어보고, 주민들과 어울리며 살아보면서, 동네 안에서 이런저런
연유로 나오는 좋은 물건을 골라서 구입하면 실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도저히 농촌 생활에 적응이 안될 때, 투자한 것이 없으니 쉽게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일단 모든 것이 투자 되면 움직이기 힘들거든요.
빠른 결정이 물질적, 정신적 손실을 막아줍니다.
귀농할 농지나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공산품처럼 쉽게 바꿀 수도
없고, 마음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사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인생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귀농은 연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하면 그날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이방인으로 마을에서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올릴까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귀농을 계획하고 계신 님들께(3)
3. 귀농 마을에서 적응하기
옛 말에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면 백전백승한다고 했습니다.
1)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최선인가는 도시나 농촌에서나 마찬가지로 중요하지만,
귀농하고자 하는 사람은 재력이나 배움의 많고 적음을 떠나 최소한 다음 이야기들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남의 이야기를 생각 없이 여기저기 퍼트려 입이 가볍다는 말을 듣지나 않는지.
-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는 다혈질의 성격 소유자인지,
- 생각 없이 말을 해 남들로부터 촐랑거린다거나 철딱서니 없다는 말을 듣는지,
-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남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나 않는지,
-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지는 않는지,
- 그렇게 게을러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소리를 듣지나 않는지,
- 酒邪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나 않는지,
이렇게 말하면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다고 그렇게 따지냐고 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성격의, 행동의 소유자라면 남의 동네에 들어가 터를 잡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배겨나지
못하고 스스로 떠나게 됩니다.
도시는 대체적으로 앞집에 누가 사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를 모르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농촌은 열려있고 또 열려있어야만 되는 생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마을 토착민들의 내면을 헤아려야 합니다.
IMF 이후, 도시나 농촌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농촌은 피해가 더 크다고 봅니다.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농가를 제외하고는 다 같다고 보면 됩니다.
* 정신적인 면으로 들어가 보면, 집집마다 이런저런 가슴 아픈 사연을 하나씩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IMF 이후 자식들에 대한 걱정 입니다.
- 명퇴하거나 퇴출 된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 이혼한 딸(또는 아들)이 어린 자식들과 생계유지는 잘 하고 있는지,
- 논, 밭 담보 잡혀가며 사업하는 아들 잘 되고 있는지,
- 부도, 카드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잠적한 자식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는지,
- 학교 졸업 후 몇 년째 놀고 있는 자식 언제 취직이 될런지,
- 자리 잡으면 데리고 간다며 맡 긴 손자는 언제나 데리러 올런지,
등등 겉으로 표시만 내지 않을 뿐, 속마음은 숯 검댕이 사연들 뿐 입니다. 집안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습니다. 서로서로 말조심 합니다.
* 경제적인 면으로 보면 WTO,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 농산물 때문에 가격이 폭락해 그나마도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농가의 소득은 계속 줄어가는데, 물가는 반대로 올라만 가니, 더욱더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농촌에서 가장 비중이 큰 지출은 겨울철 난방비와 경조사비가 90%를
차지합니다.
1,000평의 밭에 고추를 심었다고 가정해,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고추를 심기 위해서는 2월 중순에 고추씨 싹 띄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3월에 포토
작업을 하여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종을 키우고, 4월에 노지의 밭을 갈아 비닐 씌우고,
5월에 모종 심으며 고추말뚝 박고, 6월에 두 세 번 줄도 매줘야 하며, 이때부터
10 일에 한 번씩 끝물 딸 때까지 계속 소독을 해 줘야 합니다. 7.8월엔 뙤악 볕에
비 맞듯 땀을 흘리며 고추를 따야 합니다. 이 고생은 추석이 지나고 9월 끝물을
따야 끝이 납니다. 이 과정에서 힘에 겨운 어르신들은 소독 약물, 뙤악 볕을 이기지
못해 병원으로 실려 가시는 분도 많습니다. 밭 천 평을 경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 드는지 도시인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탄저병이나 역병이 없었다고 가정하여 소득을 따져 보면 대략 800근 정도로
근당 5천원으로 산출하면 4 백만 원이 됩니다.
+ 소득 : 4 백만 원(800근 X 5 천원)
- 비용 : 2 백만 원(종자, 소독약, 고추 딸 때 품삯, 비닐, 등)
- 지출 : 2 백만 원(일년 난방비 100, 경조사비 100)
결국 천 평에서, 어르신들이 막된 말로 뼈 빠지게 고생했음에도 손에 쥐는 것이
없다는 사실, 이것이 농촌의 몇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 소득을 얻기가 힘들다는 뜻이고 소득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3) 최선의 적응은 따뜻한 마음과 적극적 행동만 있으면 됩니다.
마을 주민의 70%가 60대 이상이며, 그 중 50%가 할머니 홀로 또는 할아버지 홀로
외롭게 사십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농촌으로 오면, 1 톤 화물차(화물과 여러 사람이 탈 수 있는 떠블 캡)을 마련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적응하는데 일등 공신의 몫을 합니다.
* 마을회관으로 찾아가 노인회장님 이장님 등 마을 모든 분들께 인사는 기본 예의
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댁씩 찾아가 각 호별 내용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또한 나에 대한 것도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민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고, “뭐 하던 사람이야?, 왜 왔데?
뭘 한데?” 등 갖가지 의구심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시간이 늦어지면 건방지다거나
구설수에 오를 수 있습니다.
* 어르신들을 자주 찾아뵙고 약주라도 대접하면 이런저런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을에 대한 지난 일 들이라던가 텃밭 채소 기르기, 농사로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빠르게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농사철이 되면 정신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읍내나 시내 나갈 때 마을을 한 바퀴
돕니다. 공과금이라든가 심부름할 것은 없는지 조금만 신경 쓰면 무척 좋아하십니다.
들어올 때도 우리 동네 어르신 안계신가하고 버스 정거장을 둘러봅니다.
농촌은 버스 다니는 시간이 있습니다. 놓치면 어르신들 말씀대로 절단 납니다.
* 기본적인 가전제품 수리, 전등 갈아드리기, 사료나 비료구입 등 힘 드는 일을
도와드리면 무척 좋아하십니다. 또 봄철 감자부터 마늘, 옥수수, 홍고추, 고구마 등
벼 추수에 이르기까지 힘들게 수매(농협 농산물 집하장에 내다 파는 것)하시는 것을
트럭으로 운반해 드리면 좋아하십니다. 특히 할머니 혼자 계신 분들께는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또 시내 장날 내다 팔 물건들을 운반해 드려도 좋아 하시구요.
그래서 화물차가 좋다는 것 입니다.
* 연세가 있으셔서 환자분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모셔다 드리구요. 한 밤 중엔
119역할도 합니다. 어르신들은 119부르면 돈을 내시는 줄 아시거든요.
*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다보면 어느 분의 생신이 언제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메모해 두었다가 다음 생신에 양말 한 켤레라도 선물해 드리면, 자식보다 낫다고
하시며 손을 꼭 잡아주시기도 합니다. 희한하게도 농촌은 내집 뿐만 아니라 남의 집
어르신 생신이나 제삿날까지도 잘 기억합니다.
* 비라도 내려 추적추적해지면 어르신들은 방에 앉아 먼 산 바라보시며 자식걱정
입니다. 이럴 때 읍내 모시고 나가 순대국이나 짜장면에 막걸리 한잔 대접하면
멋 진 하루가 됩니다. 여담으로, 어느 날 뜨끈 한 “삼선 울면”을 시켜 드렸더니,
왠 비싼 요리를 시켰냐며 짜장면으로 바꿔오라는 말씀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농촌은 이렇게 순박하고, 정이 있으며 사랑이 있습니다.
* 이렇게 모두 내 부모라 생각하고, 어르신들이 하시기 힘든 일이나 잘 모르시는
일들을 도와 드리면서 생활한다면, 마을에 적응하는 대에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 조심해야 할 것은 위에서 언급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일곱 가지,
농촌에 머무르는 한 꼭 명심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친숙해 졌다고 방심하여
한 가지라도 실수해서 어른들께 마음의 상처를 드리면 무척 힘들어집니다.
마을에 적응하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며,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실행으로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일부, 귀농하려면 돈이 많아야 된다거나, 텃세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조심해야 할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농촌에 살면서 도시인 행세를 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욕심을 비우고 그 자리에 봉사의 마음을 채우면 어떨런지요.
이렇게 농촌의 겉 모습 보다는 내면의 현실을 알고, 조금만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따뜻한 마음과
행동으로 옮긴다면, 어느 마을에서나 환영 받는 귀농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렇게 살다 보면 마을에 평판이 좋아 저절로 좋은 농지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옵니다. 살아보고 구입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 이해가 되시는지요?
귀농하겠다는 사람이 농촌에서 멋진 차나 타고 다니는 *** 모습으로 보여 주민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사는 것 보다는 모자 눌러쓰고, 흙 묻은 작업복에 장화 신고 트럭 운전하는,
소박한 귀농인의 멋진 모습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직은 마음도 몸도 젊다고 생각하니까요.
다음엔 소득 창출을 위한 농산물 선택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귀농을 계획하고 계신 님들께(4)
4. 소득을 내기 위한 농산물 선택
1) 종목 선정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내가 관심이 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료가 많은 것은 좋지만 선택에 헛갈립니다.
저는 생계형의 귀농은 아니었지만 앞 날을 준비하는 차원으로 10 여 년 동안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식용 달팽이에서부터, 귀뚜라미, 우렁이 양식, 미꾸라지 수조양식, 은사시
나무, 매실, 오가피 나무, 개량종 밤 등등 30 여 가지가 넘습니다. 이것도 될 것 같고,
저것도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많은 자료들을 미련없이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남들이 성공했다고
매스컴을 타거나 노출이 되면 그땐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남모르게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고생해서 성공해 자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 것을 쉽게 뒤 따라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며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관심 갖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규모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 그것에만
치중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귀농하기 1년 전까지는 종목을 결정해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1년 동안 그 종목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밀 자료들을 구하고, 농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 초기에 종목 선정시 고려 사항입니다.
- 시설을 요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밤, 사과, 배 등 저온 냉장 창고시설 을 요하는 과실수. 허가규정이 까다로운 100평 이상의 축사 (자신이 있다면 무방),
난방을 요하는 재배시설의 하우스.
-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은 일손도 구하기 어렵고, 그에 따른 경비 지출로
소득이 없다.
- 판로에 자신 없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남들이 잘 모르는 특수작물)
2) 투자 자금
그 다음에는 투자 자금에 대한 결정입니다. 투자 규모는 자기가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의 30% 내에서만 할 것을 권합니다. 나머지는 규모 확대 시 필요한 비상자금으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농업인이 되면 저리로 농자금을 쉽게 대출 받을 수 있지만 아예 생각 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출 받는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며 무리수를 둔다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보면 대출 받아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집과 농지를 다 잃을 수 있습니다.
3) 구체적 접근
제가 농촌에 와서 3년 동안 약 400평의 밭에서 경험 삼아 농작물을 해 보았습니다.
채소는 물론 고추에서부터 콩, 서리태, 참깨, 감자, 고구마 등등 곡물까지도 다양하게 해
보았습니다. 또한 토종 닭, 토끼도 30여 마리씩 길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년 소득을 추정해 보았지만, 채소나 곡물만으로는 최저 생계비 년
1,200 만원의 소득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만큼의 소득을 내기 위해서는 첫째, 농지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하고, 또한 그 만큼
일손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둘째, 수입 농산물 때문에 가격이 안정적이지 못하며, 더욱이 계속 하락추세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해마다 수입관세율이 낮아져 수입 물량은 늘어만 가고, 추가적으로 한미 FTA 협상이 내년 3월에 끝나, 2008년부터는 실행이 된다니 농가는 더욱 회의적 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 조건 속에서도, 특별한 품목도 아니고 자금을 많이 들이지도 않으면서
년 소득, 수 천만 원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귀농인들에게
희망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디서 들은 것이 아니고 실제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의 근황입니다. 세 사람의 실례를 소개합니다.
* 노지 오이
K 자동차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97년 IMF 직후 퇴직하여 조그마한 까페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것도 여의치 않아 2000년 봄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40이 넘은 나이에 빈손으로 시작한 오이 농사, 불과 몇 년 만에 그림 같은 집도 짓고 결혼도 했습니다.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서울 가락동 농산물 센타의 경매사가 농산물 생산자들에게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교육차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 마을의 J 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날부터 J 의 오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 것보다 30% 나 더 높은 가격에 경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오이박스에 그의 이름이 씌여 있는 것은 포장을 열어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높은 가격에 팔린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농사짓지 않는 저도 궁금해 그를 만나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슬그머니 웃기만 합니다.
첫 째, 그는 오이 박스를 열어보는 순간 그림 같다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오이의 크기를 거의 똑같이 맞추고, 색깔까지도 맞춘다는 것입니다. 둘째, 오이를 항상 여유로 두 개씩 더 넣는다는 것입니다. 모자랄 경우 신용을 잃기 때문입니다. 셋째, 활처럼 휘어진(20?) 오이를
1자로 편다는 것입니다. 박스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는데 오이는 휘어져 백 개를 넣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대개의 사람들이 휜 것들을 그대로 넣습니다.
이렇게 소문이 돌아 여러 사람들이 오이를 펴보려고 시도했지만 애꿎은 오이만 부러뜨리고
포기했습니다. 슬그머니 그에게 또 물었습니다. 비법이 있느냐고? 다른 사람들과는 경쟁
상대이기 때문에 안 되고, 저에게만 가르쳐 준다고 하며 가르쳐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웃음만 나옵니다.
어쨌든 그는 3단(900평)에서 평균 오이 1,500박스를 합니다. 장마철에는 박스당 4-5만원도 가지만 평균 잡아 2 만원만 잡아도 년 3,000만원이 됩니다. 그의 또 다른 소득을 여기서
다 쓰자면 너무 길어집니다. 대충 년 소득 4-5 천만원은 될 것 같습니다. 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 에게 FTA영향을 물었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FTA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통일은 금방 안 되더라도 물자 교류로 수송용 남북 철도가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배로 수송할 때 시간 차이 때문에 오이가 시들어 안되지만, 만약 철도가 연결되면 중국에서 24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다른 사람보다는 한 수 위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 자리를 떴습니다.
* 소 사육
25살에 부모로부터 소 3 마리를 물려받아 20 년이 지난 지금 자식들 다 공부시키고
수천 평의 농지와 300평 정도의 축사에 80 마리의 한우를 갖고 있는 L씨의 이야기 입니다. 현재 그의 축사에는 마리당 3 백만 원씩(현재 시가 4백, 새끼 송아지 감안) 계산해,
2 억대의 현금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생물은 외상이나, 수표가 안통하고 오직
현금거래만 하니까요.
소는 태어나서 일 년이 지나면 새끼를 갖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습니다.(임신기간 10개월) 이렇게 계산해서 3 마리로 시작한 소는 20년 뒤 몇 마리로
불어날까요. 재미삼아 계산해 보세요.
그의 소 사육 방식은, 숫 송아지와 새끼 날 때 난산하는 것 그리고 새끼를 잘 건사하지
못하는 소들은 가차없이 처분합니다. 그리고 또 새끼를 3 마리까지만 받아내고 처분합니다.
그러니 그의 소들은 항상 젊고 건강한 것들만 있게 되는 셈입니다. 처분한 것으로 사료
구입하고 남는 것은 다 소득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소는 살림 밑천이며, 그것으로 자식들 다 공부시켰다는 소리를 한번쯤은 들었을 겁니다. 그만큼 한우는 자연 재앙이 없는 한 치사율이 거의 없습니다.
L씨가 소를 단 한 마리도 사지 않고도 현재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와의 대화 속에 답을 찾아냈습니다. 일편단심 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뭐 하면(예를 들어 항암에 좋다는 표고버섯) 소득이 괜찮다는 소리들을 묵살했다는 것, 그리고 작년 소 값이 6백 만원으로 치솟을 때 대출 받아 더 크게 확대하라는 권유도
묵살했다는 것, 초지일관 한 가지만 자기 능력에 맞게 밀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2008 년부터 실행되는 FTA에 대해서 물었더니 웃으며 말합니다. 97년 우루과이라운드 실행으로 98년 송아지가 30만원 갈 때도 끄떡없었는데 무슨 소리냐, 우리나라에 소가 멸종 되겠느냐, 그리고 아울러 소가 돈이 된다고 하니 너도나도 뛰어들거나, 대출 받아 확대한 사람들 다 정리되면 소 값이 천 만원 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촌에서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며 겸손해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지금 소 값이 떨어지다 안정은 되었지만, 그의 말을 토대로 추측해
보면 아마도 올 겨울이 오기 전에 그의 축사에는 새끼만 몇 마리 남고 다 따뜻한 은행으로 이동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또다시 소 값이 파동칠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옥수수 할머니
여름이면 시내 주공 APT 정문 옆으로 담을 끼고 앉은 노점 할머니들 중 옥수수를 팔고 계신 할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분은 우리 마을에 사시지는 않지만 우리 마을에 논
다섯 마지기를 갖고 계셔서 알게 된 분입니다.
현재 연세가 72이신데 옥수수를 쪄서 파신지는 10 여년 되었다고 하십니다. 밭 농사가
너무 힘들어 포기했는데, 동갑내기 남편인 할아버님이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따신 후
변화가 온 것입니다.
남들이 60 나이에 무슨 면허증이냐고 빈정대거나, 주책 부린다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면허증을 따신 겁니다. 그리고 1톤 봉고를 사셨습니다.
어느 날부터 그 차에 가스통과 솥, 그리고 옥수수를 싣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파트 정문
앞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고, 또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옥수수는 딸릴 정도로 잘
팔렸답니다. 모자랄 것 같아 할아버님께 핸드폰 한 번이면 쏜살같이 차에 싣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년을 해보니 옥수수의 판매량을 짐작해 남의 밭까지 얻어 옥수수를
심었고, 나중에는 옥수수를 팔아 모은 돈으로 그 밭도 샀다는 겁니다.
하다보니 요령이 생겨 여름 휴가철이나 가을 단풍철에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이동해
가며 파셨다는 것입니다. 찐 옥수수 3 개 2,000원, 과연 하루에 얼마나 파셨을까 궁금
합니다. 슬그머니 여쭤보았더니 장마철엔 못 팔았지만 행락철엔 없어서 못 팔 정도
였답니다. 그럭저럭 한 십 만원은 될 걸? 하시기에 대충 계산하는 동안에 또 한마디를
하십니다. 가을엔 고구마도 있잖아! 아차 가을엔 고구마도 쪄서 파시는구나, 그렇다면...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이 대략 천 만원은 넘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농사 짓느라 큰
고생하지 않으시며 생활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 됩니다. 옥수수는 요소 비료
두 번, 소독 한 두 번이면 잘 자랍니다.
할아버지가 면허증 딴다고 쑤군대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부럽다고 하신답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힘들어 못하시겠답니다. 그동안 벌어 놓으신 것으로 할아버님과 여행
이나 다니고 싶다고 하십니다. 은백의 할아버지 운전 솜씨가 더 빛날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세 사람의 실태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특별한 종목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도
수 천 만원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어느 종목은 되고 어느
종목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며, 어떻게 하느냐가 최고의 관건임을
깨우치게 합니다. 어떤 종목을 확정한 후 이 분들의 공통분모처럼 실행하면 또 한 사람의 성공한 귀농인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그리고 귀농에 대한 모든 것을 제 나름대로 종합적으로 판단해 여러분께 건의를 한다면,
정 말 무지의 허허벌판에서도 혼자 이겨낼 자신이 있는 사람 외에는 뜻이 맞는 두 가족 이상이 함께 귀농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제일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귀농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도 농촌에 도시민 이주마을 네 곳을
선정해 조성 중에 있습니다. (농축유통신문 2005년 12월 26일자 게제) 어느 노래 가사처럼 백 년도 못 살면서 남은 인생을 힘들고 외롭게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IMF 이후 98년부터 시작된 귀농 행렬이 2,000년 이후 90% 이상이 다시 도시로 되돌아
갔다고 합니다. 떠난 사람들은 농촌의 겉 모습만 본 원(遠)시적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고, 남은 사람은 보다 적극적인 근시적으로 접근해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 남은 사람들 중에도 연금을 받는다던가, 도시로부터 수입이 있어 생활비가
고정적으로 내려와 생활하는 사람들 외에는, 순수하게 귀농해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점을 꼭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글을 쓴 동기도 여기에 있습니다. 귀농에 관련된 여러 까페에서 올려진 좋은
자료나 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귀농을 위해 구체적 자료가 필요한 분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막연하고, 무모한 도전으로 귀농에 실패하는 것을 막고, 여러분들이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귀농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 이 글을 썼습니다.
귀농 !
서울 토박이가 틀에 박힌 생활이 싫어 이곳 충청도로 이주한 지 어느덧 4 년째
접어들었습니다. 귀농이 아닌 거농(居農)생활을 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님들께 전해드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귀농에 대한 꿈과 현실은 가혹하리만큼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거든요.
잠시 들러보거나, 쉬었다 가는 농촌의 자연 모습은 아름답거나 평화롭게 보일지 몰라도
그 내면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귀농에 대한 정보나,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우선 귀농의 형태에 따라 생계 문제에 대한 고려 사항입니다.
은퇴 후 경제력이 있는 분들의 은퇴형 귀농은 크게 걱정이 않되지만,
부양가족이 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이 있어야 하는 생계형태의 귀농은
정말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잘못된 판단이 본인은 물론 부양가족에까지 치명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다니면 많든 적든 간에 고정 수입이 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농촌으로
왔을 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본인 스스로가 소득을 창출해야 하니까요.
한 달 생계비를 계산해 볼 때 기본 식대와 광열비(겨울철 난방비고려), 친지 조경사비,
등을 평균적으로 계산해 보면 최저 월 백 만원은 되어야 합니다
년(年)으로 계산하면 천 이백 만원 입니다.
그렇다면, 귀농 초년생이 농촌에서 그만큼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느냐 하는 것 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농촌의 연령 분포 현실이 증명해 줍니다.
60 대가 50%, 70 대가 30%를 차지합니다. 어느 마을이고 비슷합니다.
왜 4, 50 대가 없을까요? 그만큼 소득이 없기 때문에 생활하기가 어려워
모두 떠나는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기술이 있다면 몰라도
단지 농업(축산, 유실수, 농산물)으로 생계를 꾸려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외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 수입되는 농산물의 종류와 량(量)의 확대로 농사 짓는 어르신들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면 뭔가 하기는 해야 하는데,
하는 것 마다 수입 농산물 때문에 가격이 폭락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것저것 수입 않되는 농산물이 없는 상황에서, 토박이 농민에게도 천 만원의 소득을
내기란 쉽지 않은데, 귀농 초보자가 가능할 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입니다.
귀농 첫해는 이방인으로서 마을에 적응하여야 하고, 둘째해에는 농작물 실습을 하게
됩니다. 어찌됐든 간에 셋째 해부터 소득이 발생한다 해도, 농지와 주택구입 자금을
제외하고 2년간의 생활 자금은 갖고 있어야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귀농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특히 학생이 있는 가족은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귀농에 실패하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
2. 귀농지 매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귀농 자금이 여유가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특히 생계형의 귀농인은
제 경험상 의견으로는, 처음부터 무턱대고 구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단 가고자 하는
곳에서 거주를 해 보고 그 후에 구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귀농하고자 하는 곳에 친지나 믿을 만한 연고자가 있을 때는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살아 보고 구입하는 것이 더 낳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1) 환경 사항
* 주변에 산이 있을 경우 바람이 지나가는 골 자리는 피해야 합니다. 인체에도 안좋고
땅(흙)이 거칠어 일반 땅보다 힘이 더 듭니다. 퇴비(비료)도 더 들어가고, 창마철에
바람이라도 세게 불거나 태풍이라도 지나가면 농작물이 쉽게 쓰러집니다.
농작물이 쓰러지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갑니다. 농사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 북향이나 서향의 농지와 주택은 피해야 합니다. 주택의 경우 겨울철 난방비가
남향보다 배나 더 듭니다. 농지도 마찬가지 농작물이 쉽게 병들 수 있고,
소출(수확)에 있어서도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 가축을 많이 사육하는 마을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름철 냄새와 병충해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축을 할 경우는 더 유리하겠지요.
* 환경조건이 나쁘다고 해서 무조건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두배 세배의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농사일에 이골이 난 토착민도 그런 곳은 피하는데
초보자에게는 너무 무리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2) 법적인 문제
* 농지나 건축물에 대한 등기부등본의 확인은 기본입니다.
* 항상 외지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길(道路)에 있습니다. 지적도 상에 길이 나와
있지 않은 땅과 주택은 아예 접근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외진 곳이나 막다른 곳에 있는 농지나 주택을 매입할 경우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지적도상에 있는 도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건물을 신축하려면 지적도상에 도로가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도시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도로가 지적도상에도 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농촌에는 옛날부터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시부길이 있었는데
60년대 새마을사업 일환으로 정부의 보상 없이 경운기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이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된 땅은 주민 편의상 내 주었을 뿐,
실제 지주(地主)가 있다는 것입니다.
경운기가 지나다니고는 있지만 사실은 남의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이지요.
결국 같은 농민으로 볼 때는 본인도 남의 땅을 밟고 다니니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지인이 들어오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딱 막아버려 주먹다짐에 법정까지
갑니다. 몇몇 사람이 다니기 위해 길을 내 주어야 하는 것은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막아도 된다는 실제 법적 판결이 났습니다.
3) 농지 매입 시기
* 농촌의 농지는 도시처럼 매매가 빈번하지 않아서 가격이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대개의 경우 누구네 밭이 얼마에 팔렸다더라 소문이 나면 그것이 기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팔린 땅보다 환경이나 입지조건이 좋은 땅은 밑져야
본전 식으로 가격을 올려서 내놓게 되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지가격을 모르는
도시인들이 볼 때는 싸게 보여 구입하게 됩니다. 결국 후회하게 됩니다.
* 농촌에 빈 집이 계속 나오는 이유를 알고 계신지요. 노인 어르신들만 사시는 집이
70%를 차지합니다. 길게 잡아 10년을 내다 본다면, 노환으로 떠나시는 분도 계시고
병환이나 농사일이 힘에 부쳐 도시의 자녀에게로 떠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들이 승계해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 대부분 매물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싸거나 적당한 가격에 나오는 매물들이 끊임없다는 것이지요.
대개 이런 것들은 소리소문 없이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동네 안에서 처리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렇게 싸거나 좋은 것들이 외지인에게까지 차례가 갈 리가 없지요
* 그렇다면, 왜 현지에서 살아보고 구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
현재 농촌에는 빈집이 많습니다.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농가주택을
임차해 농사도 지어보고, 주민들과 어울리며 살아보면서, 동네 안에서 이런저런
연유로 나오는 좋은 물건을 골라서 구입하면 실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도저히 농촌 생활에 적응이 안될 때, 투자한 것이 없으니 쉽게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일단 모든 것이 투자 되면 움직이기 힘들거든요.
빠른 결정이 물질적, 정신적 손실을 막아줍니다.
귀농할 농지나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공산품처럼 쉽게 바꿀 수도
없고, 마음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사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인생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귀농은 연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하면 그날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이방인으로 마을에서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올릴까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귀농을 계획하고 계신 님들께(3)
3. 귀농 마을에서 적응하기
옛 말에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면 백전백승한다고 했습니다.
1)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최선인가는 도시나 농촌에서나 마찬가지로 중요하지만,
귀농하고자 하는 사람은 재력이나 배움의 많고 적음을 떠나 최소한 다음 이야기들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남의 이야기를 생각 없이 여기저기 퍼트려 입이 가볍다는 말을 듣지나 않는지.
-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는 다혈질의 성격 소유자인지,
- 생각 없이 말을 해 남들로부터 촐랑거린다거나 철딱서니 없다는 말을 듣는지,
-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남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나 않는지,
-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지는 않는지,
- 그렇게 게을러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소리를 듣지나 않는지,
- 酒邪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나 않는지,
이렇게 말하면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다고 그렇게 따지냐고 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성격의, 행동의 소유자라면 남의 동네에 들어가 터를 잡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배겨나지
못하고 스스로 떠나게 됩니다.
도시는 대체적으로 앞집에 누가 사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를 모르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농촌은 열려있고 또 열려있어야만 되는 생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마을 토착민들의 내면을 헤아려야 합니다.
IMF 이후, 도시나 농촌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농촌은 피해가 더 크다고 봅니다.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농가를 제외하고는 다 같다고 보면 됩니다.
* 정신적인 면으로 들어가 보면, 집집마다 이런저런 가슴 아픈 사연을 하나씩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IMF 이후 자식들에 대한 걱정 입니다.
- 명퇴하거나 퇴출 된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 이혼한 딸(또는 아들)이 어린 자식들과 생계유지는 잘 하고 있는지,
- 논, 밭 담보 잡혀가며 사업하는 아들 잘 되고 있는지,
- 부도, 카드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잠적한 자식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는지,
- 학교 졸업 후 몇 년째 놀고 있는 자식 언제 취직이 될런지,
- 자리 잡으면 데리고 간다며 맡 긴 손자는 언제나 데리러 올런지,
등등 겉으로 표시만 내지 않을 뿐, 속마음은 숯 검댕이 사연들 뿐 입니다. 집안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습니다. 서로서로 말조심 합니다.
* 경제적인 면으로 보면 WTO,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 농산물 때문에 가격이 폭락해 그나마도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농가의 소득은 계속 줄어가는데, 물가는 반대로 올라만 가니, 더욱더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농촌에서 가장 비중이 큰 지출은 겨울철 난방비와 경조사비가 90%를
차지합니다.
1,000평의 밭에 고추를 심었다고 가정해,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고추를 심기 위해서는 2월 중순에 고추씨 싹 띄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3월에 포토
작업을 하여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종을 키우고, 4월에 노지의 밭을 갈아 비닐 씌우고,
5월에 모종 심으며 고추말뚝 박고, 6월에 두 세 번 줄도 매줘야 하며, 이때부터
10 일에 한 번씩 끝물 딸 때까지 계속 소독을 해 줘야 합니다. 7.8월엔 뙤악 볕에
비 맞듯 땀을 흘리며 고추를 따야 합니다. 이 고생은 추석이 지나고 9월 끝물을
따야 끝이 납니다. 이 과정에서 힘에 겨운 어르신들은 소독 약물, 뙤악 볕을 이기지
못해 병원으로 실려 가시는 분도 많습니다. 밭 천 평을 경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 드는지 도시인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탄저병이나 역병이 없었다고 가정하여 소득을 따져 보면 대략 800근 정도로
근당 5천원으로 산출하면 4 백만 원이 됩니다.
+ 소득 : 4 백만 원(800근 X 5 천원)
- 비용 : 2 백만 원(종자, 소독약, 고추 딸 때 품삯, 비닐, 등)
- 지출 : 2 백만 원(일년 난방비 100, 경조사비 100)
결국 천 평에서, 어르신들이 막된 말로 뼈 빠지게 고생했음에도 손에 쥐는 것이
없다는 사실, 이것이 농촌의 몇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 소득을 얻기가 힘들다는 뜻이고 소득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3) 최선의 적응은 따뜻한 마음과 적극적 행동만 있으면 됩니다.
마을 주민의 70%가 60대 이상이며, 그 중 50%가 할머니 홀로 또는 할아버지 홀로
외롭게 사십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농촌으로 오면, 1 톤 화물차(화물과 여러 사람이 탈 수 있는 떠블 캡)을 마련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적응하는데 일등 공신의 몫을 합니다.
* 마을회관으로 찾아가 노인회장님 이장님 등 마을 모든 분들께 인사는 기본 예의
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댁씩 찾아가 각 호별 내용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또한 나에 대한 것도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민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고, “뭐 하던 사람이야?, 왜 왔데?
뭘 한데?” 등 갖가지 의구심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시간이 늦어지면 건방지다거나
구설수에 오를 수 있습니다.
* 어르신들을 자주 찾아뵙고 약주라도 대접하면 이런저런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을에 대한 지난 일 들이라던가 텃밭 채소 기르기, 농사로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빠르게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농사철이 되면 정신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읍내나 시내 나갈 때 마을을 한 바퀴
돕니다. 공과금이라든가 심부름할 것은 없는지 조금만 신경 쓰면 무척 좋아하십니다.
들어올 때도 우리 동네 어르신 안계신가하고 버스 정거장을 둘러봅니다.
농촌은 버스 다니는 시간이 있습니다. 놓치면 어르신들 말씀대로 절단 납니다.
* 기본적인 가전제품 수리, 전등 갈아드리기, 사료나 비료구입 등 힘 드는 일을
도와드리면 무척 좋아하십니다. 또 봄철 감자부터 마늘, 옥수수, 홍고추, 고구마 등
벼 추수에 이르기까지 힘들게 수매(농협 농산물 집하장에 내다 파는 것)하시는 것을
트럭으로 운반해 드리면 좋아하십니다. 특히 할머니 혼자 계신 분들께는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또 시내 장날 내다 팔 물건들을 운반해 드려도 좋아 하시구요.
그래서 화물차가 좋다는 것 입니다.
* 연세가 있으셔서 환자분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모셔다 드리구요. 한 밤 중엔
119역할도 합니다. 어르신들은 119부르면 돈을 내시는 줄 아시거든요.
*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다보면 어느 분의 생신이 언제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메모해 두었다가 다음 생신에 양말 한 켤레라도 선물해 드리면, 자식보다 낫다고
하시며 손을 꼭 잡아주시기도 합니다. 희한하게도 농촌은 내집 뿐만 아니라 남의 집
어르신 생신이나 제삿날까지도 잘 기억합니다.
* 비라도 내려 추적추적해지면 어르신들은 방에 앉아 먼 산 바라보시며 자식걱정
입니다. 이럴 때 읍내 모시고 나가 순대국이나 짜장면에 막걸리 한잔 대접하면
멋 진 하루가 됩니다. 여담으로, 어느 날 뜨끈 한 “삼선 울면”을 시켜 드렸더니,
왠 비싼 요리를 시켰냐며 짜장면으로 바꿔오라는 말씀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농촌은 이렇게 순박하고, 정이 있으며 사랑이 있습니다.
* 이렇게 모두 내 부모라 생각하고, 어르신들이 하시기 힘든 일이나 잘 모르시는
일들을 도와 드리면서 생활한다면, 마을에 적응하는 대에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 조심해야 할 것은 위에서 언급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일곱 가지,
농촌에 머무르는 한 꼭 명심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친숙해 졌다고 방심하여
한 가지라도 실수해서 어른들께 마음의 상처를 드리면 무척 힘들어집니다.
마을에 적응하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며,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실행으로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일부, 귀농하려면 돈이 많아야 된다거나, 텃세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조심해야 할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농촌에 살면서 도시인 행세를 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욕심을 비우고 그 자리에 봉사의 마음을 채우면 어떨런지요.
이렇게 농촌의 겉 모습 보다는 내면의 현실을 알고, 조금만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따뜻한 마음과
행동으로 옮긴다면, 어느 마을에서나 환영 받는 귀농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렇게 살다 보면 마을에 평판이 좋아 저절로 좋은 농지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옵니다. 살아보고 구입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 이해가 되시는지요?
귀농하겠다는 사람이 농촌에서 멋진 차나 타고 다니는 *** 모습으로 보여 주민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사는 것 보다는 모자 눌러쓰고, 흙 묻은 작업복에 장화 신고 트럭 운전하는,
소박한 귀농인의 멋진 모습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직은 마음도 몸도 젊다고 생각하니까요.
다음엔 소득 창출을 위한 농산물 선택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귀농을 계획하고 계신 님들께(4)
4. 소득을 내기 위한 농산물 선택
1) 종목 선정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내가 관심이 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료가 많은 것은 좋지만 선택에 헛갈립니다.
저는 생계형의 귀농은 아니었지만 앞 날을 준비하는 차원으로 10 여 년 동안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식용 달팽이에서부터, 귀뚜라미, 우렁이 양식, 미꾸라지 수조양식, 은사시
나무, 매실, 오가피 나무, 개량종 밤 등등 30 여 가지가 넘습니다. 이것도 될 것 같고,
저것도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많은 자료들을 미련없이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남들이 성공했다고
매스컴을 타거나 노출이 되면 그땐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남모르게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고생해서 성공해 자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 것을 쉽게 뒤 따라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며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관심 갖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규모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 그것에만
치중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귀농하기 1년 전까지는 종목을 결정해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1년 동안 그 종목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밀 자료들을 구하고, 농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 초기에 종목 선정시 고려 사항입니다.
- 시설을 요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밤, 사과, 배 등 저온 냉장 창고시설 을 요하는 과실수. 허가규정이 까다로운 100평 이상의 축사 (자신이 있다면 무방),
난방을 요하는 재배시설의 하우스.
-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은 일손도 구하기 어렵고, 그에 따른 경비 지출로
소득이 없다.
- 판로에 자신 없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남들이 잘 모르는 특수작물)
2) 투자 자금
그 다음에는 투자 자금에 대한 결정입니다. 투자 규모는 자기가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의 30% 내에서만 할 것을 권합니다. 나머지는 규모 확대 시 필요한 비상자금으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농업인이 되면 저리로 농자금을 쉽게 대출 받을 수 있지만 아예 생각 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출 받는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며 무리수를 둔다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보면 대출 받아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집과 농지를 다 잃을 수 있습니다.
3) 구체적 접근
제가 농촌에 와서 3년 동안 약 400평의 밭에서 경험 삼아 농작물을 해 보았습니다.
채소는 물론 고추에서부터 콩, 서리태, 참깨, 감자, 고구마 등등 곡물까지도 다양하게 해
보았습니다. 또한 토종 닭, 토끼도 30여 마리씩 길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년 소득을 추정해 보았지만, 채소나 곡물만으로는 최저 생계비 년
1,200 만원의 소득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만큼의 소득을 내기 위해서는 첫째, 농지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하고, 또한 그 만큼
일손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둘째, 수입 농산물 때문에 가격이 안정적이지 못하며, 더욱이 계속 하락추세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해마다 수입관세율이 낮아져 수입 물량은 늘어만 가고, 추가적으로 한미 FTA 협상이 내년 3월에 끝나, 2008년부터는 실행이 된다니 농가는 더욱 회의적 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 조건 속에서도, 특별한 품목도 아니고 자금을 많이 들이지도 않으면서
년 소득, 수 천만 원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귀농인들에게
희망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디서 들은 것이 아니고 실제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의 근황입니다. 세 사람의 실례를 소개합니다.
* 노지 오이
K 자동차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97년 IMF 직후 퇴직하여 조그마한 까페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것도 여의치 않아 2000년 봄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40이 넘은 나이에 빈손으로 시작한 오이 농사, 불과 몇 년 만에 그림 같은 집도 짓고 결혼도 했습니다.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서울 가락동 농산물 센타의 경매사가 농산물 생산자들에게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교육차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 마을의 J 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날부터 J 의 오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 것보다 30% 나 더 높은 가격에 경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오이박스에 그의 이름이 씌여 있는 것은 포장을 열어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높은 가격에 팔린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농사짓지 않는 저도 궁금해 그를 만나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슬그머니 웃기만 합니다.
첫 째, 그는 오이 박스를 열어보는 순간 그림 같다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오이의 크기를 거의 똑같이 맞추고, 색깔까지도 맞춘다는 것입니다. 둘째, 오이를 항상 여유로 두 개씩 더 넣는다는 것입니다. 모자랄 경우 신용을 잃기 때문입니다. 셋째, 활처럼 휘어진(20?) 오이를
1자로 편다는 것입니다. 박스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는데 오이는 휘어져 백 개를 넣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대개의 사람들이 휜 것들을 그대로 넣습니다.
이렇게 소문이 돌아 여러 사람들이 오이를 펴보려고 시도했지만 애꿎은 오이만 부러뜨리고
포기했습니다. 슬그머니 그에게 또 물었습니다. 비법이 있느냐고? 다른 사람들과는 경쟁
상대이기 때문에 안 되고, 저에게만 가르쳐 준다고 하며 가르쳐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웃음만 나옵니다.
어쨌든 그는 3단(900평)에서 평균 오이 1,500박스를 합니다. 장마철에는 박스당 4-5만원도 가지만 평균 잡아 2 만원만 잡아도 년 3,000만원이 됩니다. 그의 또 다른 소득을 여기서
다 쓰자면 너무 길어집니다. 대충 년 소득 4-5 천만원은 될 것 같습니다. 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 에게 FTA영향을 물었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FTA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통일은 금방 안 되더라도 물자 교류로 수송용 남북 철도가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배로 수송할 때 시간 차이 때문에 오이가 시들어 안되지만, 만약 철도가 연결되면 중국에서 24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다른 사람보다는 한 수 위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 자리를 떴습니다.
* 소 사육
25살에 부모로부터 소 3 마리를 물려받아 20 년이 지난 지금 자식들 다 공부시키고
수천 평의 농지와 300평 정도의 축사에 80 마리의 한우를 갖고 있는 L씨의 이야기 입니다. 현재 그의 축사에는 마리당 3 백만 원씩(현재 시가 4백, 새끼 송아지 감안) 계산해,
2 억대의 현금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생물은 외상이나, 수표가 안통하고 오직
현금거래만 하니까요.
소는 태어나서 일 년이 지나면 새끼를 갖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습니다.(임신기간 10개월) 이렇게 계산해서 3 마리로 시작한 소는 20년 뒤 몇 마리로
불어날까요. 재미삼아 계산해 보세요.
그의 소 사육 방식은, 숫 송아지와 새끼 날 때 난산하는 것 그리고 새끼를 잘 건사하지
못하는 소들은 가차없이 처분합니다. 그리고 또 새끼를 3 마리까지만 받아내고 처분합니다.
그러니 그의 소들은 항상 젊고 건강한 것들만 있게 되는 셈입니다. 처분한 것으로 사료
구입하고 남는 것은 다 소득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소는 살림 밑천이며, 그것으로 자식들 다 공부시켰다는 소리를 한번쯤은 들었을 겁니다. 그만큼 한우는 자연 재앙이 없는 한 치사율이 거의 없습니다.
L씨가 소를 단 한 마리도 사지 않고도 현재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와의 대화 속에 답을 찾아냈습니다. 일편단심 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뭐 하면(예를 들어 항암에 좋다는 표고버섯) 소득이 괜찮다는 소리들을 묵살했다는 것, 그리고 작년 소 값이 6백 만원으로 치솟을 때 대출 받아 더 크게 확대하라는 권유도
묵살했다는 것, 초지일관 한 가지만 자기 능력에 맞게 밀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2008 년부터 실행되는 FTA에 대해서 물었더니 웃으며 말합니다. 97년 우루과이라운드 실행으로 98년 송아지가 30만원 갈 때도 끄떡없었는데 무슨 소리냐, 우리나라에 소가 멸종 되겠느냐, 그리고 아울러 소가 돈이 된다고 하니 너도나도 뛰어들거나, 대출 받아 확대한 사람들 다 정리되면 소 값이 천 만원 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촌에서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며 겸손해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지금 소 값이 떨어지다 안정은 되었지만, 그의 말을 토대로 추측해
보면 아마도 올 겨울이 오기 전에 그의 축사에는 새끼만 몇 마리 남고 다 따뜻한 은행으로 이동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또다시 소 값이 파동칠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옥수수 할머니
여름이면 시내 주공 APT 정문 옆으로 담을 끼고 앉은 노점 할머니들 중 옥수수를 팔고 계신 할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분은 우리 마을에 사시지는 않지만 우리 마을에 논
다섯 마지기를 갖고 계셔서 알게 된 분입니다.
현재 연세가 72이신데 옥수수를 쪄서 파신지는 10 여년 되었다고 하십니다. 밭 농사가
너무 힘들어 포기했는데, 동갑내기 남편인 할아버님이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따신 후
변화가 온 것입니다.
남들이 60 나이에 무슨 면허증이냐고 빈정대거나, 주책 부린다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면허증을 따신 겁니다. 그리고 1톤 봉고를 사셨습니다.
어느 날부터 그 차에 가스통과 솥, 그리고 옥수수를 싣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파트 정문
앞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고, 또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옥수수는 딸릴 정도로 잘
팔렸답니다. 모자랄 것 같아 할아버님께 핸드폰 한 번이면 쏜살같이 차에 싣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년을 해보니 옥수수의 판매량을 짐작해 남의 밭까지 얻어 옥수수를
심었고, 나중에는 옥수수를 팔아 모은 돈으로 그 밭도 샀다는 겁니다.
하다보니 요령이 생겨 여름 휴가철이나 가을 단풍철에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이동해
가며 파셨다는 것입니다. 찐 옥수수 3 개 2,000원, 과연 하루에 얼마나 파셨을까 궁금
합니다. 슬그머니 여쭤보았더니 장마철엔 못 팔았지만 행락철엔 없어서 못 팔 정도
였답니다. 그럭저럭 한 십 만원은 될 걸? 하시기에 대충 계산하는 동안에 또 한마디를
하십니다. 가을엔 고구마도 있잖아! 아차 가을엔 고구마도 쪄서 파시는구나, 그렇다면...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이 대략 천 만원은 넘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농사 짓느라 큰
고생하지 않으시며 생활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 됩니다. 옥수수는 요소 비료
두 번, 소독 한 두 번이면 잘 자랍니다.
할아버지가 면허증 딴다고 쑤군대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부럽다고 하신답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힘들어 못하시겠답니다. 그동안 벌어 놓으신 것으로 할아버님과 여행
이나 다니고 싶다고 하십니다. 은백의 할아버지 운전 솜씨가 더 빛날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세 사람의 실태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특별한 종목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도
수 천 만원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어느 종목은 되고 어느
종목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며, 어떻게 하느냐가 최고의 관건임을
깨우치게 합니다. 어떤 종목을 확정한 후 이 분들의 공통분모처럼 실행하면 또 한 사람의 성공한 귀농인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그리고 귀농에 대한 모든 것을 제 나름대로 종합적으로 판단해 여러분께 건의를 한다면,
정 말 무지의 허허벌판에서도 혼자 이겨낼 자신이 있는 사람 외에는 뜻이 맞는 두 가족 이상이 함께 귀농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제일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귀농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도 농촌에 도시민 이주마을 네 곳을
선정해 조성 중에 있습니다. (농축유통신문 2005년 12월 26일자 게제) 어느 노래 가사처럼 백 년도 못 살면서 남은 인생을 힘들고 외롭게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IMF 이후 98년부터 시작된 귀농 행렬이 2,000년 이후 90% 이상이 다시 도시로 되돌아
갔다고 합니다. 떠난 사람들은 농촌의 겉 모습만 본 원(遠)시적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고, 남은 사람은 보다 적극적인 근시적으로 접근해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 남은 사람들 중에도 연금을 받는다던가, 도시로부터 수입이 있어 생활비가
고정적으로 내려와 생활하는 사람들 외에는, 순수하게 귀농해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점을 꼭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글을 쓴 동기도 여기에 있습니다. 귀농에 관련된 여러 까페에서 올려진 좋은
자료나 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귀농을 위해 구체적 자료가 필요한 분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막연하고, 무모한 도전으로 귀농에 실패하는 것을 막고, 여러분들이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귀농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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