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시청자의 인생과 맞닿아 있다. 자극적인 소재가 아닌 사람이 중심인 드라마가 절실한 이때 드라마가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남자다운 것인지 미국 영화에서 배웠다. 그 속엔 개척정신, 사랑, 정의와 휴머니즘이 스며있었다”
‘한국의 아버지 상(像)’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최불암(72·崔佛岩). 그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단어가 아버지다. 30년 동안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어린이재단’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에서 그를 만났다. 3월 11일 종영한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채널A)에서 홀로 고향 외딴집을 지키며 사는 고집스러운 아버지 역을 맡았던 최불암은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따스한 감동이 살아있는 휴먼드라마를 작업한 지난 4개월이 행복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 드라마에 대한 쓴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사진=이유정 기자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와 얼마 전 출연했던 곰배령까지 드라마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TV 드라마라는 게 노크 없이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갈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는 안방이 아니다. 안방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등 구조만 크게 키워서 시청자를 끌어모은다. 소위 막장 드라마들 말이다. 대중의 입맛을 핑계 삼아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이미지들로만 가득 차 있다.
아침 드라마들이 특히 그런데 타인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드라마는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시간 남는 젊은 어머니들이 많이 시청한다. 이분들만 안 보면 건전드라마가 나올 텐데…. 드라마는 인생을 반추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난 사람 중심이 아닌 사건 중심인 드라마는 보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영향인지 국민 아버지, 한국인의 아버지 상 등 수식어가 많다
“사실 난 한국의 아버지 상 보다는 한국인의 원형에 관심이 많다. 해서 곰곰이 따져보는데 인내와 끈기, 질박함과 투박함 그리고 선비정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표현하는 말은 많지만 딱히 ‘이것이다’하는 명쾌함은 없다. 단일 민족 순수 혈통 문화를 이야기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돌이켜 보면 일본에서 유럽에서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 섞여 있는 형국이다.”
─국민 아버지의 실제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아버진 사업가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제작한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내가 아버지의 영정을 안고 시사회장에 갔다고 한다. 너무 어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잘 몰랐다. 난 무녀독남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외할아버지가 대신했다. 그래서 노인역 전문배우가 됐는지도 모르겠다.(웃음)”
─전원일기는 국민 드라마였다. 종영된 이유가 소재의 고갈과 시청률 문제라고 들었다. 아쉽지 않았나
“시청률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방송국이 가진 모순 때문에 종영됐다. 예를 들어 A 드라마 제작비를 5000만 원 줬으면 B, C도 같이 줘야 한다. 전원일기가 20년을 넘게 하는 동안 고정 출연자가 30명으로 늘었다. 저마다 자기 출연료를 받아야겠다고 목소릴 내니 불협화음이 생긴 거다. 방송국은 힘이 약하니까 그만 둔 거다.”
─수사반장을 19년, 전원일기를 23년 했다. 이 작품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스스로 옷매무새를 단정케 했다는 점에서 ‘수사반장’은 안방보안관이고 삶의 의욕과 용기를 줬다는 점에서 ‘전원일기’는 삶의 텃밭이라 할 수 있겠다.”
─한류를 전 세계로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드라마 ‘대장금’은 동양의 전통사상을 잘 보여줬다
“그렇다. 근본적인 것은 유교적 정신이다. 상·하의 질서, 삶의 가장 편안한 휴머니즘이랄까. 우리 세대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학교에서 시청각 교육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미국 영화였다. 아마도 카우보이 영화는 수천 편은 봤을 거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이해하게 됐다. 존 웨인,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가 출연한 영화들…. ‘정의가 무엇이냐’ ‘남자다운 게 무엇이냐’를 나는 그때 영화 속 미국 영화배우에게서 배웠다.
언젠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 의회의 몇몇 상하의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한국이 당신네 나라에서 도움받은 바 크다. 자기 나랏일도 아니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약소국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미국의 어떤 힘인가’라고 물었더니 ‘종교다’ ‘와스프(WASP·앵글로 색슨계 백인 개신교도;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지배 계급.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민주적 법치주의를 철학으로 내걸고 교육의 민주성·창의성·경쟁성·합리적 실용주의를 추구)다’ ‘교육이다’ 등 여러 얘기가 많았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의 마지막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가 ‘그것은 영화의 힘이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배우, 좋은 감독이 좋은 일을 하는 좋은 미국인의 전형을 개발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얘기를 하는데 그가 주창한 경제부흥 정책 ‘뉴딜(New Deal)’이 별 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흔히 뉴딜 정책을 통해서 미국의 은행구조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루스벨트가 예리하게 기획한 문화우선정책이 은행구조를 바꿨다는 게 옳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은행에서 박대당하던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에게도 걱정하지 말고 돈을 빌려 주라고 했다는 거다. 그때만 해도 속되게 말해서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할 땐 데 루스벨트에게는 혜안이 있었다.
가수, 만화가, TV 연기자, 영화배우 등 문화의 전면에 있는 그들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고 할까. 다만 몇 가지 원칙은 있는데 작품 속에 반드시 개척정신(Frontier spirit), 사랑(Romanticism), 정의(Justice)와 인도주의(Humanism)가 스며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루스벨트에게 이런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경제공황의 시기에 기간산업이 아닌 연예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상원의 비판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뉴딜을 관철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나저나 부자 나라 미국을 만들기 전에 먼저 훌륭한 미국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감동이다.
나는 다만 순수한 의미에서 가치와 도덕을 준수하는 올곧은 정신의 미국인을 존경한다. 그것도 결국은 한국이 어떤 나라고 한국인이 어떤 사람이냐를 말하기 위함이다.”
─연기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다. 그때 김순철이란 친구와 늘 함께했다. 하루는 순철이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찍 나오는데 출근하는 순철이 아버지와 문 앞에서 마주쳤다. 아버지가 ‘너희는 이렇게 일찍 어딜 가니?’하고 묻기에 ‘연극을 하러 갑니다’ 했더니 ‘연극에서 뭘 하냐’고 되물으셔서 ‘저희 연기합니다’고 대답했다. ‘음’하고 나가시던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한마디 하셨다. ‘너희는 아침저녁으로 세수할 때 거울도 안 보니.’
나도 그렇지만 순철이도 좀 험악하게 생겼었다.(웃음) 난 그때 충격으로 내 얼굴을 분장으로 감추며 노인역만 했다. 1964년, 1965년, 1967년 3년을 국립극단에서 연극을 했고 역시 노인역만 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중앙정보부 7국에서 나를 TV 반공 드라마로 차출하면서 처음 TV 드라마를 시작했다. 1967년 KBS 연기자로 정식 데뷔한 드라마가 ‘수양대군’이다. 당시 김종서 역을 맡았는데 이 또한 노인역이었다. 그때 나이가… 27세였다. 노인 분장하지 않고 내 나이에 맞는 연기를 처음 한 작품이 1997년 ‘그대 그리고 나(MBC)’다.”
─좋은 연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연기자는 백지 같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좋은 연기는 그림 그리는 캔버스처럼 맑아야 한다. 그래야 형상을 그릴 수 있으니까. 신문지 위에 그리면 잘 보이겠나?
한 인물의 배역이 끝나면 빨리 잊어버리고, 타성적 연기와 관습적 캐릭터를 깨뜨려야 한다. 칠판을 닦듯이 지워야 하는 거다. 꾸미고 바르는 일보다 닦고 정화하는 일이 더 급하니까. 지워야 쓸 수 있으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참고 다스리고 산다는 것이 제일 위대한 것 같다. 위장(僞裝)하지 말고 잘 조절하는 게 의미가 있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말이다. 물이 순리대로 흐르듯 평지에서는 천천히,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쉬었다가 흐를망정 거꾸로 역류는 하지 않는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한다. 인생의 목적이 온통 돈과 명예로 가득한 사람은 이런 허망 된 욕심을 갖고 사니까 비극이 생긴다.
배역만 그럴 뿐이지. 나도 지독한 속물이다. 인간은 구름이 어디서 생긴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 줌의 연기처럼 생겼다가 없어져 버리는 거다. 그게 나라고 봐도 좋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얘기를 하겠나만 인간의 오욕칠정을 알고 조절하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불암(崔佛岩)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했다. 국립극단 단원을 거쳐 KBS 공채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발을 들였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주인공 박 반장, 1981년과 1989년에 드라마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 이승만 대통령 역을, 1980년부터 2002년까지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 역을 맡아 유교의 가부장적 이미지와 따스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어른이 없는 시대’의 어른이 됐다. 백상예술대상(남자 최우수연기상/인기상), 대종상 영화제(남우조연상/남우주연상), 백상연극영화 예술상, 국민훈장 목련장, 제3회 서울 드라마어워즈 올해의 스타상, 제22회 위암 장지연상(방송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30년째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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