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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살이

위대한 평민과 생각하는 농민의 마을 - 충남 홍성 생태마을

‘귀농’하면 으레 떠오르는 지역이 몇 곳 있다. 지리산 남쪽 자락 경남 산청이나 악양 평사리 들판을 깔고앉은 하동, 남덕유산이 흘러내린 전북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속리산을 공유한 경북 상주와 충북 괴산, 민주와 생명의 고장 강원도 원주, 깊고깊은 불영계곡 경북 봉화와 울진.

개중 단연 앞줄에 놓아야 할 곳이 충남 홍성이다. 오리농군을 부려 150만평의 친환경 논농사로 짓는문당리 들판에 한번 나서보라. 왜 이곳이 귀농의 메카, 공동체마을의 전범으로 일컬어지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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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당리 환경농업마을 안내판.
외진 시골마을에 난데없이 ‘헌책방 느티나무’라는 간판과 마주친다. 호기심과 책 욕심에 활짝 열린 가게 문으로 들어서니 인기척이 없다. 기대보다 더 많고 다양한 책을 뒤적거리고 있으려니 한 농부가 들어선다. . 왠지 낯이 익다. 쭈뼛거리고 있으려니 먼저 말을 건넨다.

“무인점포에요. 써놓은 책값대로 돈통에 돈을 놓고 책을 가져가시면 돼요. 거스름돈도 알아서 챙겨가시고요. 얼마 전부터 돈통에 돈이 좀 없어지곤 하는데 마을 아이들이 장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100년 후를 준비한 마을 ‘홍성 문당리’

풀무농업기술학교의 2년제 전문과정인 풀무농업전문학교에서 농사를 가르치는 장길섭씨. 녹색평론 잡지에서 편집장 일을 하다 홍성으로 귀농한지 오래되었다. 선생이라기 보다 영락없는 마을 원주민 모습이다. 밭에서 학생들과 감자를 캐다가 잠시 들렸단다.

풀무학교 생협 갓골 작은가게, 풀무 비누공장, 반짓고리 공방, 그리고 생태적인 책들을 주로 펴내는 그물코출판사가 한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가족처럼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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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공부하는 풀무학교 아이들.
생협 가게에서 직접 구워파는 통밀빵이며, 풀무학교 농장에서 직접 키워 생산한 오리농 쌀을 팔고 있다. 좋은 상품이니 안 살 수가 없다. 통밀빵과 유기농 흑향미를 샀다. 역시 파는 사람이나 감시하는 사람은 따로 없다. 알아서 상품을 고르고 돈을 돈통에 놓고 거스름돈을 챙기면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다.

“마을로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제는 빌려줄만한 마땅한 농가가 없는 게 고민”이라는 장씨. 귀농이라는 화제가 나오자 '반짓고리'라는 단아한 이름을 가진 공방으로 굳이 손을 잡아 끈다. 풀무학교에서 창고로 쓰던 것을 개조한 건물로 비누공장에 나란히 붙어있다.

“귀농한 여자분 넷이 취미삼아 부업 삼아 운영해요. 마을 주민들에게 따로 가르치기도 하고. 어때요. 보통 솜씨가 아니죠?” 마음먹기에 따라서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 말고도 얼마든지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장씨는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생협 건물 뒤로는 풀무학교 교장을 지낸, 풀무학교의 역사, 그 자신이 ‘더불어 사는 위대한 평민’인 홍순명 선생님이 새로 황토 통나무 집을 짓고 있다. 주택으로서 뿐 아니라 풀무학교 역사전시관 정도의 효용으로도 쓸 계획이란다. 그 뒤로 실습농장이 펼쳐지고 언덕빼기로는 풀무농업전문학교가 올라앉아 있다. 어찌보면 이곳이 풀무학교 공동체의 무게중심 쯤으로 보인다.

풀무학교가 마을의 시작이자 중심


풀무공동체가 자리잡은 홍동면은 친환경 농업의 메카로 불린다. 풀무농업기술학교 졸업생으로 문당리 홍성환경농업마을에 대표로 일하고 있는 주형로씨가 앞장서 일군 성과다. 지난 30년 동안 오리농 벼농사를 고집해 150만평에 이르는 홍동면 들판을 온통 오리농 유기농업 판으로 바꿔놓았다. 30%에 달하는 홍동면 유기농업 비율은 단연 전국 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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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독립군 주형로씨.
내년이면 개교 50주년을 맞는 풀무학교 학생들은 일류 대학교 진학이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느 게 배움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농사를 지으며 마을과 지역을 지킬 '더불어 사는 평민'이 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졸업도 졸업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창업’으로 일컫는다.

주형로씨와 같이 풀무학교에서 배운 이들이, 마을을 떠나 도시로 돈 벌러 가는 대신 마을을 지키며 키워냈다. 사람이 살 수있는 마을을 만들었다. 어느덧 7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갓골 어린이집, 도시의 대형마트에 오리농쌀 등 친환경농산물을 직납하는 생협, 마을금융기관 신용협동조합, 재생 비누공장, 지역주민들이 공모해 세운 지역신문 등이 다 풀무학교 출신들이 힘을 합쳐 공을 들인 작품이다.

이제 한해 2만명에 달하는 도시민들과 다른 마을 주민들이 배우려고 다녀가는 대한민국 대표마을이 되었다. 또 이제는 학교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일 정도가 되었다. 생협 조합원, 어린이집 학부모 운영위원, 작목반 반장 등 마을 일을 맡아볼 간부 진용도 탄탄하다.

나랏 돈이 아닌 십시일반 마을기금으로

무엇보다 오늘날 이 마을이 이룬 성과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마을들과 크게 다르다. 처음부터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마을 주민들이 호주머니 돈을 십시일반으로 털어 이룩한 것이다. 초기에 마을 여성들이 자원봉사를 어렵게 꾸려온 갓골어린이집을 비롯해 홍성환경농업교육관 건물도 주민들이 쌀을 팔아 모은 돈으로 3천평의 땅을 사고 3만개의 흙벽돌을 찍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직도 직원 3명 월급은 주민들이 모은 환경기금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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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 비누공장, 출판사 등 안내표지.
홍동면에 있는 정규 학교에서 모두 유기농 급식을 시작하면서 학부모들이 유기농 급식과 일반 급식 간 차액을 모두 부담했다. 홍성군에서 학교급식지원 조례를 만들어 예산 지원을 시작한 것은 지난 해부터이다.

이런 홍동면 주민들의 남다른 마을만들기 과정과 비전은 2000년에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만들어낸 '21세기 문당리 발전 백년 계획'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역시 주민들이 돈을 모아 대학에 용역을 맡긴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잘사는 부자마을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한 두레공동체마을, 자연과 조화로운 생태마을을 만들자고 한 일이다.

90여가구 240여명이 오리농사를 짓고 사는 문당리 마을에는 마을총회도 있다. 이장을 뽑고 마을의 사업계획 등을 함께 상의한다. 징계위원회도 있다. 논에 농약을 치면 징계를 받는다.

문당리 마을 백년계획의 구호는 ‘생각하는 농민, 준비하는 마을’이다. “첫째, 근원의 농업으로 돌아가자.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자. 대를 잇는 농업이어야 한다. 희망을 부르는 농업이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자세를 바꿔보자. 스스로 헤쳐 나가려는 자세를 갖자. 긍정적인 사람만이 지혜를 얻는다. 개인에서 협동하는 공동으로 돌아가자. 셋째, 화합으로 함께 하는 농업으로 돌아가자. 행정, 농업관련 단체, 기관, 농민이 하나 되어 함께 하자. 넷째, 생각하고 준비하는 농업으로 돌아가자. 중장기 마을, 농업계획을 세우자. 행정기관에 친환경 계획단(농민, 행정, 소비자, 시민단체)을 만들어 함께 준비하자. "

문당리 사람들은 100년후 마을의 미래를 이미 잘 알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