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운동 10년과 우리 농촌
전국귀농운동본부가 만들어진 지 1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꼭 10년 전 귀농학교
1기생으로 귀농교육을 받았습니다. 환경공학적 처방이 이 땅의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농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처음 받게 된 교육이었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과 기대감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하던 중이어서 모든 강좌에는 참여하지 못한 엉터리 교육생이었지만 귀농학교 1기생이라는
자부심이 지난 10년간 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더라도 항상 제 머리 속에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19일에 10년이 된 귀농운동본부가 조졸한 잔치마당을 벌였습니다. 잔치마당에 앞서 그간의 귀농운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귀농인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귀농인이 겪고 있는 문제는 크게는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농사를 통해 생활을 해야 하는데 농사는 서투르고, 더구나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경우 유기농으로 농사를 잘 지으려니 더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지역사회에서 잘 융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농을 한 농촌마을에 또래가 적고 기존의 화학영농 중심의 관행농을 하고 있는 마을주민과의 정서적·현실적 괴리가 존재합니다. 오순도순 사는 농촌마을의 공동체를 상상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을에서 섬처럼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셋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사회 변화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입니다. 생명가치를 존중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반성하고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삶을 위해 선택한 것이 귀농이었지만 여전히 우리 땅은 개발에 의해 멍들고 있고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의 더 깊숙한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귀농인은 개인적으로 힘들고 버거운 삶을 지탱하여야 하고, 지역사회에서는 소외되거나 고립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화천의 한 귀농인은 이러한 어려움을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고 표현하였습니다만 오히려 처음에 가졌던 생각에 적합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거나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3년 전, 정보화마을의 교육에서 만났던 충주의 젊은 귀농인을 기억합니다. 경영학 석사 학위를 가지고 복숭아 농장을 하고 있는 귀농 7년차라는 그분은 작년부터 소득을 내고 있다며 농사에 자신감을 내보였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농사가 익숙해졌으니 복숭아 농장 옆의 솔밭을 개간하여 복숭아밭을 두 배로 늘릴 예정이라 했습니다. 그분에게 밭을 개간하는 비용과 부부가 관리할 수 없는 규모로 밭이 늘었으니 자재비이며 인건비이며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생산비를 계산해 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그 귀농인은 복숭아밭을 두 배로 늘리려는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복숭아밭을 늘린다고 해서 수익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농민도 그렇지만 한 가지
작목에 집중하고 무작정 규모를 늘리기 쉽습니다. 생태적인 삶이란 시장과 자본주의와 거리를 두는 것이지만 생활을 하려니 어쩔 수
없이 시장에 농산물을 내다 팔아야 합니다. 시장에 농산물을 팔려니 어느 정도 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작물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작물을 경작하기 때문에 작업은 한 시기에 집중되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가격을 받아야
하니 관행농의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됩니다.
귀농운동본부는 지난 10년간 연간 500명 정도의 수료생을 배출하는 귀농교육을 쉬지 않고 계속 진행해 왔다고 합니다. 또한 귀농지침서인 계간 『귀농통문』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6권째 발행했다고 합니다. 정말 찬사를 보냅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이제 귀농운동본부가 더 많은 도시의 젊은이의 귀농을 돕고 이미 귀농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업을 제안해 봅니다.
첫째로, 귀농학교를 수료하였지만 아직 귀농하지 못한 사람들이 귀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지원 조직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에서는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을 공동체적으로 지원하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를 하고 있습니다. CSA는 도시민이 유기농업을 하는 농가의 생계를 보장하고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은 도시회원의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도시민이 농산물의 가격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농가에 보내 주면 농민은 그 가격에 상응하는 다양한 농산물을 보내 줍니다. 귀농학교의 수료생과 귀농인을 이와 유사하게 연결해 준다면 귀농인이 시장적 접근방법의 영농에서 탈피하여 유기적이고 생태적인 영농 방법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둘째로, 지역운동을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홍성군의 홍동 지역과 남원시의 산내 지역의 사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지역에 이미
귀농하였고 또한 귀농을 원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이 지역에는 귀농인의 생활을 도울 수 있는 많은 시설과 사업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아들을 돌보는 여성농업인센터가 있고,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대안학교가 있으며, 소규모 농산물을 모아
도시와 직거래하는 생활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단체나 조직이 있고, 그 속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운동을 지원한다면 귀농인이 보다 시장과 자본주의와 멀어진 농촌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의 농업·농촌의 모든 문제를 시장 중심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중심적인 정책은 이미 많이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 정도의 실험이라면 시장 중심적 정책의 실효성은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중심적 사고에서 공동체 중심적 사고로 전환하는 것만이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귀농인을 지원하기 위한 귀농운동본부의 노력은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10돌이 된 귀농운동본부의 앞으로의 활동에 더욱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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