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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살이

[숲이 희망이다] 8. 겨레의 나무, 솔


[숲이 희망이다] 8. 겨레의 나무, 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다. 지난 6월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한국 갤럽의 특별 기획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40가지’란 주제로 실시한 조사결과 중 흥미로운 점이 두가지 눈에 띈다. 하나는 은행나무(4.4%), 단풍나무(3.6%), 벚나무(3.4%), 느티나무(2.8%)보다 소나무(43.8%)를 좋아한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좋아하는 꽃과 새는 오히려 외래종인 장미와 앵무새란 사실이었다.

이 결과를 접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화의 거센 파고를 넘어야만 할 세태를 반영하듯 꽃과 새에 대한 우리들의 취향은 외래종인 장미와 앵무새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왜 나무만은 여전히 이 땅의 토종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일까? 정보혁명의 광풍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식정보사회에서 농경문화를 대변하던 소나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실이다. 소나무는 농경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으면 안될 중요한 나무였다. 오죽하면 우리네 인생을 ‘소나무와 함께 태어나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뒷산 솔밭에 묻힌다’고 표현하기까지 했을까. 이 말은 금줄에 끼인 솔가지, 소나무로 만든 집과 가구와 농구, 그리고 관재(棺材)로 사용하는 송판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우리 문화의 특성을 ‘소나무 문화’라고 일컫는 이유도 소나무가 간직한 이러한 물질적 유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소나무만큼 한민족의 문명발달에 숨은 원동력이 된 나무도 없다. 소나무를 도외시한 채 궁궐을 비롯한 옛 건축물의 축조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물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소나무의 공덕은 더 크다. 왜적을 무찌른 거북선과 전함은 물론이고, 쌀과 소금을 실어 날랐던 조운선은 모두 소나무로 만들었다. 세계에 자랑하는 조선백자도 영사라고 불리는 소나무 장작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소금 생산도 이 땅의 솔숲이 감당했다. 과거엔 가마솥에 바닷물을 붓고 소나무를 베어내 불을 때는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나무 문화로 대표되는 농경사회는 지난 한 세대만에 이 땅에서 사라졌다. 궁궐재와 조선재를 제공해왔던 이 땅의 소나무 숲은 산업화에 따라 농촌인구가 줄어들면서 하루하루 불안정한 상태로 변하고 있다. 지난 1,000년 동안 소나무 숲은 인간들의 적당한 관심과 간섭으로 안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맨땅에 씨앗이 떨어져야 싹이 트고 활엽수 속에서는 맥을 못추는 소나무의 생태특성상 땔감용으로 숲 바닥의 낙엽들을 긁어내고 활엽수를 제거했던 인간의 관행이 소나무에는 좋은 생육공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나무 숲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간섭이 사라지자 참나무류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식생천이의 질서에 따라 소나무의 생육공간을 차츰 잠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솔잎혹파리, 소나무 재선충 같은 외래 병해충의 창궐은 이 땅의 소나무에 엄청난 재앙이 되고 있다.

한때 우리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하던 소나무 숲이 인간의 간섭이 사라지고, 병충해와 산불, 수종 갱신으로 급감해 오늘날은 겨우 산림면적의 25%만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 뒤에는 이 땅에서 소나무가 사라져 가리라는 보고도 있다.

‘눈앞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오늘날 우리들이 우리 주변에서 급격하게 사라져가는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조상들의 문학과 예술, 전통과 풍습에 녹아 있는 소나무의 상징적 의미가 오늘날도 한국인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조상의 문학과 예술과 상징에 녹아 있는 소나무의 영역은 이 땅의 다른 어떤 나무들보다 더 컸다. 소나무는 한시와 노랫말과 산수화 속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였다. ‘일월오악도’나 ‘십장생도’ 속의 소나무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민속신앙과 풍수지리 사상, 유불선(儒佛仙)에 녹아든 소나무는 민족 정체성의 한 요소가 되어 오늘날도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 흔적은 오늘날도 여전히 살아 있다. 장관급 벼슬을 가진 늠름한 정이품 소나무는 최근 2세를 얻기 위해 인공교배와 유전자지문 감식까지 받았고, 토지를 소유한 부자 나무로 국가로부터 납세번호를 부여받은 석송령 소나무는 올해도 어김없이 재산세를 냈다. 600년 전 조선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목멱산에 심었던 그 소나무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의 한 구절이 되어 오늘도 노래 불리고 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솔잎을 가르는 장엄한 바람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면서 시기와 증오와 원한을 가라앉히고자 솔밭에 정좌하여 태교를 실천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철 변치 않는 늘 푸름과 청청한 기상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받아 지조·절조·절개와 같은 소나무의 덕목을 머리 속에 심어 주었다.

우리 문화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기이하게 여길 이러한 소나무를 우리는 어제도 가지고 있었고, 오늘날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오늘날까지 우리의 가슴 속에 담겨서 일관된 정서로, 또는 생활 전통의 문화 요소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이런 소나무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소나무는 이름 있는 건물 앞의 조경수로, 시민을 위한 녹지공간의 공원수로, 유서 깊은 도로변의 가로수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도 변함없이 시인은 소나무를 예찬하고, 화가는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내고, 전문가는 소나무에 대한 다양한 연구 내용을 책으로 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변함없이 애국가를 통해서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가슴에 담고 있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