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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코카콜라를 뒤집으면 무슨 뜻이 될까

영화 '부시맨'에서 코카콜라는 현대 문명의 상징이었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서 수천년을 살아온 부시맨들에게 어느 날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매끈하면서도 단단하고 투명한 코카콜라 병은 언뜻 재앙의 징조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부시맨 니카우는 사막을 가로질러 세상의 끝까지 가서 그 병을 버리고 돌아온다.

코 카콜라 병만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디자인도 없다. 잘록한 허리 모양의 실루엣만 보고도 누구나 한눈에 코카콜라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코카콜라 병을 컨투어 병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컨투어는 윤곽선이라는 말이지만 흔히 여성의 몸매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조지아 그린이라고 불리는 오묘한 녹색. 풍만하면서도 날렵하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세로 줄무늬. 손에 쥐었을 때 우둘투둘 탁 달라붙는 느낌. 검은 색의 콜라와 눈부신 빨간색 띠, 그리고 선명한 흰색 글씨. 코카콜라 병은 분명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무엇인가가 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병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갈증을 느끼게 한다.

코카콜라 로고를 뒤집으면 무슨 뜻이 될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이 그 무렵 유행했던 허블 스커트에서 유래했다고 알고 있다. 여자 친구가 입고 있던 스커트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브리태니커 사전에 실린 코코넛의 일러스트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 병을 처음 디자인한 사람들은 유리공장 직원이었던 알렉산더 사무엘슨과 얼 알딘. 유사 제품의 난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코카콜라는 멀리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 달라고 이들에게 주문했다. 그때가 1915년이니까 거의 100년이 다 돼 가는 셈이다. 그들은 궁리 끝에 손에 쥐기 쉽고 미끄러지지 않으면서도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코카콜라를 처음 만든 사람은 약사 출신인 존 펨버튼이었다. 1886년, 두통과 숙취 해소를 위한 약품을 만들던 그는 캐러멜 냄새가 나는 독특한 음료수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는 이 음료수에 탄산수를 섞어 한잔에 5센트씩 받고 팔기 시작했다. '코카콜라(Coca-Cola)'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반복되는 C가 상쾌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펨버튼은 안타깝게도 2년 뒤인 1888년에 죽었고 그에게서 회사를 사들인 사람은 역시 약사 출신인 아사 캔들러였다. 인수 대금은 고작 2300달러. 사무엘슨과 알딘 에게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을 의뢰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을 금고에 보관하는 등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코카콜라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데 공헌했다.

코카콜라의 화려한 로고는 펨버튼의 동료였던 프랭크 로빈슨의 작품이다. 빨간색 바탕에 휘갈겨 쓴 듯한 흰색의 글씨. 이 강렬한 색깔의 대비가 코카콜라의 브랜드 인지도에 큰 역할을 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로고는 그 인지도만큼이나 온갖 악의적인 소문과 음모이론에 시달렸다.

흰색의 글씨가 코카인의 연기를 상징한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코카인은 마시는 형태로 섭취하는 방법이 이용됐기에 로고가 코타인 가루를 태우는 연기를 상징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또 코카콜라에 코카인이 들어있다는 소문도 사실과 다르다. 코카인 대신에 카페인을 넣는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코카콜라의 구체적인 성분은 아직까지 비공개다.

코카콜라 로고는 한때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흰색 글씨를 뒤집어 보면 아랍어로 "모하메드 반대"라는 뜻으로 읽힌다는 이유에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면 비슷하게 보이기도 했다. 중동지역에서 코카콜라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위기감을 느낀 코카콜라는 이슬람교 율법학자들까지 동원해 철저한 분석 작업을 벌여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터무니없는 소문이라는 게 밝혀진 뒤에도 논란은 한동안 계속됐다. 결국 이집트의 문화부 장관이 나서서 해명을 하고 나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이런 종류의 악성 음모이론은 지금도 툭하면 터져 나온다.

누가 산타클로스에게 빨간 옷을 입혔을까?

코카콜라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음모이론은 코카콜라가 산타클로스에게 빨간색 옷을 입혔다는 것이다. 이 음모이론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광고에 처음 등장한 때가 1931년. 흰색의 털로 소매와 옷깃 등을 마무리한 따뜻한 느낌의 빨간색 옷은 코카콜라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현실로 툭 튀어나온 산타클로스에 열광했다.

엄밀히 따지면 산타클로스에게 빨간색 옷을 입힌 것은 코카콜라가 처음이 아니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은 3세기 무렵 불우한 아이들을 돕던 성 니콜라스를 네덜란드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와전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17세기 영국의 문헌에도 흰색 수염을 달고 빨간색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의 묘사가 발견된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사례가 바로 코카콜라 광고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수백년 동안 사람들은 산타클로스를 상상하기만 했을 뿐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코카콜라가 산타클로스를 전속 모델로 쓰기 시작하면서 상상 속의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의 산타클로스로 완전히 대체됐다.

과거의 산타클로스는 굴뚝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귀여운 요정의 이미지였다. 빨간색 외투를 입은 뚱뚱한 할아버지는 전적으로 코카콜라의 작품이다. 해든 선드블룸이라는 화가가 코카콜라의 의뢰를 받고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광고 덕분에 코카콜라는 경쟁업체들을 따돌리고 절대적인 1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다.

선드블룸의 산타클로스는 너무 친숙해서 이제는 코카콜라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다. 선물을 배달하고 나서 잠깐 쉬는 듯한 모습의 이 광고에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병을 들고 있다. 산타클로스를 보고 코카콜라를 연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코카콜라는 이미 그 효과를 충분히 봤다.

빨간색과 흰색의 대비, 크리스마스의 설레임과 눈부시게 흰 눈의 차갑고 상쾌한 느낌, 산타클로스의 매력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는 코카콜라의 이미지로 그대로 반영됐다. 코카콜라의 광고는 이런 이미지를 일관되게 계승하고 있다. 산타클로스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북극곰을 광고에 쓴 것도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루 10억잔씩 팔리는 대표 음료.

코카콜라는 100년 가까이 로고와 병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브랜드파이낸스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430억달러로 세계 1위다. 2위는 마이크로소프트로 370억달러, 3위는 시티뱅크 350억달러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 단어가 OK와 코카콜라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코카콜라는 2006년,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 동안의 통계를 공개했다. 지금까지 팔린 코카콜라를 1초에 1500만갤런씩 나이아가라 폭포에 흘려 보낸다면 38시간 46분 동안 흐를 정도가 된다. 리터로 환산하면 6조753억리터. 병에 담으면 25조7430만병이 된다. 이 병들을 한 줄로 쌓으면 달까지 1057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가 된다.

코카콜라는 세계적으로 400여종, 우리나라에서는 40여종의 음료수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초당 4만명, 하루 10억잔 이상 마시는 대표 음료로 자리 잡았다. 코카콜라가 세계 1위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독특한 디자인과 이 디자인에 힘을 불어넣은 절묘한 마케팅이 있었다.

[이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