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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살이

지리산 닷컴 '맨땅에 펀드' - 농협에 맞서다.

'지리산닷컴'이라는 웹 커뮤니티가 있다. 오랫동안 서울 연신내라는 곳에서 웹디자인으로 밥벌이 하던 사람이 지리산 아래 오미리라는 마을로 거처를 옮겨 살면서 전하는 시골살이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는 매일아침 지리산편지를 통해 오미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전하면서 지금, 여기의 삶에 관한 생각을 나눈다. 그의 직책은 사이버 지리산 마을의 이장이다. 그의 바람은 주민들과 더불어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 오미리 전경

ⓒ 지리산닷컴

최근에 지리산닷컴은 '맨땅에 펀드'라는 신종펀드를 모집했다. 정체불명의 신종펀드는 처음 우려와 달리 일주일도 안 되어 완판 매진되었다.

그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쌓아온 주민들과의 믿음이 기반이다. 법률에 규정된 투자회사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투자회사법 및 증권 관련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모펀드에다가 투자자 보호도 되지 않으니 완벽한 헤지펀트의 요건을 갖췄다. 다른 점이 있다면 헤지펀드는 돈만을?는 대신 '맨땅에 펀드'는 주민들의 소박한 행복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 계절에 한 번 펀딩한 땅을 둘러보게 하는 투자자 감시방문이 계획돼 있다

ⓒ 지리산닷컴

'맨땅에 펀드'에는 절대 셈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1인당 펀딩금액 30만 원에 모집인원이 100명이니 총 수탁고가 3000만 원 밖에 안 된다. 재산증식에 투자되는 보통의 펀드라면 한사람 몫의 펀딩금액도 안 되는 적은 돈이지만 같은 3000만 원이라도 질이 다르다. 일반펀드가 물질적인 풍족을 지향한다면 '맨땅에 펀드'는 물질적인 풍족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한다. 3000만 원이라는 액면 금액으로는 절대 셈할 수 없는 가치가 맨땅펀드에 내재 돼 있다.


'맨땅에 펀드'는 토종과 유기농을 지향한다. 지향점은 지리산닷컴의 자연 사람 소통이라는 중심축과 궤를 같이한다. 투자자들에게 연간 7~10회 정도의 농산물 택배를 보낼 계획이다. 매실효소, 산마늘장아찌, 곰취장아찌 등 도시에서 만들기 힘든 품목이 포함된다. 믿을 만한 농부의 결과물과 자연채취를 통해서 확보한 재료들이다. 우리밀과 쌀도 대상이다. (이 품목은 사명감이다) 밀가루 2kg, 쌀 10kg 정도씩 펀드 투자자들에게 보낸다.


시세에 따른 재료비와 노임에 해당하는 추가비용을 옵션으로 된장과 간장, 청국장, 김장까지 오미리 맨땅에서 키운 결과물로 만들어 보낼 계획도 있다. 철 따라 보리밟기, 우리밀 축제, 쌀 축제, 땅콩죽 축제, 감 축제, 김장 축제, 청국장 축제, 대보름 달집축제 등의 오프라인 행사도 곁들인다. 최소한 계절에 한 번은 펀딩한 땅을 둘러보게 하는 투자자의 감시 방문이다.




▲ 맨땅에 펀드는 토종과 유기농을 지향한다.

ⓒ 지리산닷컴

펀드니까 펀드 매니저도 있다. 오륙십 년 농사전문가 지정댁, 대평댁, 금강댁, 남원댁 등이 그들이다. 마을의 노인들에게도 펀드를 돌보게 하고 인건비를 지불한다. 명실공히 사회적 기업인 셈이다. 펀드 고문단도 갖췄다. 홍순영, 김종옥 등 초등학교 졸업하고 평생 농사만 지어 온 농사 전문가들이다. '맨땅에 펀드'의 위용을 실감하게 만드는 경영진 아닌가.

언뜻 CSA나 로컬푸드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알고 보면 '맨땅에 펀드'는 대안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편리하게 주문해서 몸에 좋은 유기농 농산물을 구입해 먹겠다는 단순한 소비개념이 아닌 것이다. 투자설명서에 펀드 메니저와의 교감 속에서 투자자의 역할까지 요구하는 귀찮은 펀드다. 투자를 신청한다고 아무나 받아주지도 않는다.

펀드메니저의 생각에 공감해야 비로소 투자를 '허락'한다. 그럼에도 돈들이고 귀찮아지는 일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다. '맨땅에 펀드'의 조기매진 열풍은 불편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열망을 반영한다. 잘못된 시스템을 뒤에서 '씹는'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 물질적인 풍족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한다

ⓒ 지리산닷컴

'맨땅에 펀드' 배후엔 무엇이 숨어있기에... 거대 자본 농협에 맞서다

'맨땅에 펀드'의 배후에는 거대자본에 대한 저항이라는 밑그림이 숨어있다. 토종종자, 유기농 고집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상상 이상으로 한심하고 개선가능성 제로인 거대자본 농협이 타겟이다. 이 땅의 농협은 이미 권력화되어 스스로의 몸집을 불리는 일에만 열중할 뿐 농민을 잊은 지 오래라는 생각 때문이다.

순하디 순한 꿀벌들도 다급하면 포식자 말벌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포악한 말벌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꿀벌들이 자기 몸의 수십배나 되는 말벌을 둘러싸고 날갯짓으로 열을 발생시켜 질식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꿀벌들의 통쾌한 반격이다. '맨땅에 펀드' 꿀벌들의 날갯짓으로 과연 말벌 농협을 퇴치할 수 있을까?

지리산 닷컴이 '맨땅에 펀드'로 그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이 성공할 지는 알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펀드가 지금 우리에게 최적의 지혜로운 대안이라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야 하는 이 땅에서, 더불어 행복하기 위한.  




▲ 맨땅에 펀드는 이 땅에서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쾌한 대안이다

ⓒ 지리산닷컴

어느 도시 건물 한 귀퉁이에서 헤드셋을 쓰고 통유리 칸막이 속에 앉은 여성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직거래로 위장한 유기농과 무농약 농산물을 구입해서 먹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착한 농부들은 온라인에서조차 소비자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습니다. 오직 싼 가격에 농산물을 생산할 것만 강요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작은 꿈을 실현해서 거대하고 힘 있는 것들과의 싸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맨땅에펀드」는 일회성을 염두에 둔 펀드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산 농지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고 펀드 가입자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어도 하나의 작은 시골 마을 경제를 운용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하여「맨땅에펀드 함양」, 「맨땅에펀드 태백」, 「맨땅에펀드 완도」, 「맨땅에펀드 정선」, 「맨땅에펀드 봉화」… <투자설명서 중에서>

유쾌한 대안 '맨땅에 펀드'의 건투를 빈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