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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_경제

중국 부자를 보면 , 중국 경제가 보인다

개혁개방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중국의 부자 지형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형 부자들이 금융·부동산시장의 활황과 서비스시장 개방이란 대세에서 점차 밀려나는 한편, 부의 대물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부자의 변화를 통해 중국 경제의 트렌드를 살펴 본다.
 
 
부에 대한 열망이 터져나는 중국 사회 
 
부(富)가 싫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중국 사회에서 부에 대한 열망은 유별나다. ‘돈을 벌다’는 뜻의 ‘파차이(發財)’가 인사말로 쓰이고, 파차이와 소리가 비슷한 ‘팔(八)’자가 가장 운수 좋은 숫자로 환영 받는 곳이 중국이다.
 
사 회주의 정권 초창기의 극단적인 평등사회가 불과 수십 년 만에 부에 대한 열정이 허용되는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시장경제로 이행하기까지에는 선부론(先富論)이라는 ‘면죄부’가 필요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청나라 중기까지도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부를 좇는 중국 사회 특유의 유전자는 수천 년의 영화와 무관치 않을 성 싶다.  
 
고 대 하(夏)왕조에 이어진 왕조를 중국인들은 상(商)나라로 부른다. 은허(殷墟)의 발견으로 한국인들에게 은나라로 불리지만, 본디 은나라의 국기를 닦은 부족이 상거래에 정통했던 상족(商族)이다 보니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세계의 장사꾼’이라면 서양에선 유대인, 동양에선 어김없이 화교들이 꼽힌다.  
 
개 혁개방으로 중국 경제가 용트림을 하기 전 중국인 부자들은 동남아 화교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거침없는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대륙 부자들의 재산도 불어나고 있다. 대륙시장 자체가 광대한 데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에 최근의 주식시장 활황세까지 가세하면서 대륙 부자들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큰 부자가 되려면, 시운(時運)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좀 어렵게 표현하면, 거시경제 및 산업경기의 흐름을 꿰뚫고, 그리고 남보다 빨리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이 만들어낸 시장의 기회는 선발 진입자가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가 중국 부자들을 분석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부의 지형 변화가 중국경제의 트렌드를 잘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 국에서 인정받는 부자 랭킹엔 세가지가 있다. 미 시사경제지인 포브스의 중국판 버전인 ‘포브스 차이나’가 내놓는 랭킹과 중국 금융전문지인 ‘신차이푸(新財富)’랭킹, 그리고 기업인들의 자선 및 기부를 독려하는 취지로 운영되는 ‘후룬(胡潤)’ 랭킹 등이다.
 
가 장 최근에 발표된 3가지 기준의 100대 랭킹에 공통적으로 포진한 인물은 모두 53명이다. 매체별 선정방법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매체의 랭킹도 1년 만에 오르내림이 심하다. 3가지 랭킹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인물을 업종별로 보면 부동산 분야 종사자가 전체의 34%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고, 이어 종합사업 17%, 제조업 9.4% 순으로 나타났다. 거부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대부분 상하이, 광둥, 베이징에 몰려 있다.  
 
3가지 랭킹 중 5년 동안의 시계열 자료가 비교적 잘 축적된 신차이푸 500대 부자(2003년은 400대 부자) 랭킹을 중심으로 업종과 지역별 비중을 분석해 보았다.  
 
금융·부동산·미디어 분야가 거부들의 산실 
 
올 해 4월 발표된 2007년 신차이푸 500대 부자들의 경우 총 재산 중 부동산 분야 부자들의 재산비중이 가장 높았다. 부동산 비중은 첫 조사발표인 2003년부터 선두를 차지하더니 계속 비중을 높여 올해 발표에선 30%나 차지했다(<그림 1> 참조). 반면 제조업을 영위하는 부자들의 재산 비중은 2003년엔 부동산에 필적할 만큼 높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다양한 업종을 섭렵하는 ‘종합형’ 부자군에게도 밀렸다(<그림 2> 참조).  
 
2006 년 발표에서 광업금속목재 분야 부자들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올라갔지만 올해 다시 내려갔다. 2000년대 초 급속한 중공업화로 기초산업재 공급이 딸렸던 애로현상이 지난해부터 해소되기 시작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분야는 산서성 부자들의 텃밭이다. 500대 랭킹에 포함된 부자 12명 중 9명이 동 업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이다.
 
업 종별 평균재산의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부자들의 업종별 1인당 평균재산을 비교해보면 지난해까지 음료사업에 종사하는 부자들이 ‘부자 중의 부자’라 불릴 만 했다(<그림 3> 참조). 그러나 지난해부터 몰아친 자산시장의 활황과 IT 붐에 편승, 금융·부동산 미디어/오락·소매분야 부자들의 평균재산이 단번에 치고 올라왔다. 특히 금융분야 부자들의 평균재산은 44억6,200만 위안(약 5,354억 원)으로 톱 클래스를 형성했다. 금융 미디어오락 소매분야 부자들의 재산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중국경제의 서비스시장 육성방침 및 개방시책과 관련이 깊다.
 
지 역별로 500대 부자들을 분류해보면, 광활한 중국 경제의 지역적 특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007년 기준 부자들을 지역별로 나눠보면 역시 개혁개방의 첫 수혜지역인 광둥성 부자들의 재산비중이 24%나 됐다(<그림 4> 참조). 이어 상하이, 저장, 장수, 베이징 순. 모두 동부 연해지역 경제권이다.
연 해지역 8개 특별시 성에 속한 부자들의 재산비중은 2003년 66%에서 올해 발표에선 81%까지 치솟았다. 특히 광둥성 부자들의 재산비중이 전년 15%에서 올해 24%로 급등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그림 5> 참조).  
 
광둥부자, 저장부자 
 
부 자들의 평균재산액도 광둥부자들이 43억5,789만 위안(약 5,230억 원)으로 상하이나 홍콩 베이징 등의 부자들을 압도했다(<그림 6> 참조). 특이할 만한 점은 저장성 부자들의 위상. 전체 재산비중은 3위권에 이르지만, 평균재산 순서에선 12위권에 그쳤다. 이는 저장성 부자들이 대개 중소규모의 사업을 영위하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재 산비중이 높은 8대 연해지역 부자들의 주력업종을 살펴본 것이 <표 2>이다. 광둥성 부자들의 경우 500대 부자랭킹에 71명이 포진했고, 이중 22명이 부동산 사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하이와 베이징 등 대도시의 부자들도 주로 부동산에서 큰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다른 연해지방인 저장, 장수, 푸젠, 산둥 등의 부자들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신차이푸 500대 부자들의 올해 평균 재산은 25억6,000만 위안(약 3,072억 원)대. 2003년에 비해 4년만에 3.4배나 늘어났다.  
 
시장을 신뢰한 자수성가형 거부들이 대부분 
 
랭 킹 상위권에 오른 부자들은 대개 무일푼에서 시작, 오늘날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1세대 사업가들이다. 이들이 초기 재산을 축적했던 1980, 1990년대는 지금과 같은 시장경제 질서가 정착되지 못한 시기였다. 따라서 시장질서를 대신했던 정치권력과의 유착도 불가피했고 지방 행정부의 지원, 각종 인맥을 통해 획득한 정보 및 경영자원이 재산축적에 크게 기여했다.  
 
그 러나 인맥을 모두가 중시하는 중국 사회에서 이들의 성공이 돋보이는 것은 시장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축재과정을 살펴보면 창업시기가 더할 데 없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계획경제의 각종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던 개혁개방 초기 시장은 여전히 낯설고 위험한 존재였다. 거부들은 바로 이 시장의 잠재력을 믿고 과감하게 동 시대 사람들이 안주했던 ‘철밥통’을 집어 던진 사람들이다.  
 
거 부들은 대부분 신흥업종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다름 아닌 ‘블루 오션’ 전략이다.요즘이야 부동산이 부의 상징이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도 부동산은 일부 직장(單位)이 직원들에게 나눠줬던 ‘집단적 공공재’의 하나였다. 인터넷 관련 사업도 열악한 중국의 IT 인프라 때문에 요원한 사업으로 여겼다. 에어컨 장사 역시 “과연 중국 일반 가정이 구입할 여력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한동안 떨치기 어려웠다.  
 
중국판 블루오션을 개척한 거부들 
 
3 가지 부자 랭킹에,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진입한 주룽제업(玖龍紙業)의 장인(張茵·50)회장. 동북지방에서 태어난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첫 경제특구였던 광둥성 선전으로 내려가 외국계 합자회사를 다닌다. 그러다 업무 상 만난 제지공장 관계자로부터 “재활용 폐지사업이 유망하다”는 말을 듣고 사직한 후, 홍콩에서 폐지수집을 시작했다.
 
홍 콩에서 재산을 모으자 곧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1990년 미국에 중난(中南)주식회사를 차린 뒤 미국의 폐지를 수거, 중국 현지로 보내기 시작했다. 대미 수출품을 하역한 뒤 텅텅 비어 중국으로 돌아가는 컨테이너를 헐값으로 빌린 것은 그녀만의 수완이었다.  
 
당 시 중국 경제는 각종 포장재로서 골판지 수요가 급증했지만, 삼림훼손 탓에 공급이 원활치 않았다. 장인이 1995년 광둥 둥관(東莞)에 세운 주룽제지는 계속 설비를 늘려 지금은 중국 1위, 세계 8위의 포장지 공급업체로 부상했다. 2006년 3월 이 회사가 홍콩증시에 상장되면서 그녀의 재산은 약 150억 위안(약 1.8조원)으로 불었다.  
 
베 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중국의 1세대 부동산 거부인 쉬룽마오(許榮茂·58)와 관련이 깊다. 푸젠성 출신으로 30년 전 돈을 벌겠다면서 무작정 홍콩으로 나갔지만, 빈약한 광둥어 실력 탓에 간단한 일용직도 구하지 못했던 처지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증권브로커를 하면서 주식투자로 목돈을 마련했고, 1981년 창업한 소규모 금융회사가 거액을 안겨줬다.  
 
1980 년 중반 의류업에 뛰어든 그는 대륙에 5개의 공장을 세워 미국시장의 문을 두드렸으나, 단순 OEM 업체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마침 의류업계의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였다. 1993년 푸젠성 우이산(武夷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근처 토지를 사들여 리조트를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 굴지의 부동산 기업인 스마오(世茂)그룹의 첫번째 개발 프로젝트였다.  
 
쉬 회장은 1995년부터 베이징의 부동산 시장에 진출, 외국인용 고급주택 시장을 개척,업계의 불황을 이겨냈다. 2000년 상하이에 진출할 때도 적자에 시달리던 완샹(萬象)그룹을 인수, 완샹이 보유하고 있던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상하이 부동산 시장이 폭등한 것은 그 직후였다.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압류 부동산들을 싸게 구입해 개발한 것은 쉬 회장의 동물적인 이재본능을 드러내준다.  
 
신 차이푸 부자랭킹 8위에 오른 허성촹잔(合生創展)그룹의 주멍이(朱孟依·48)회장은 ‘봉이 김선달’ 같은 인물. 광둥성 펑순(豊順)현 출신인 그는 고향에서 목돈을 챙긴 흔치 않은 사례이다. 개혁개방으로 각종 노점상들이 펑순에 몰려왔지만, 제각기 흩어져 있어 상권이 형성이 안된 점에 착안했다. 고졸 학력이 전부였던 20대 초반의 주 회장은 현(縣)정부를 찾아가 “노점상들을 모아 상가를 만들테니, 임대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측도 상권 개발에 도움이 된다며 허가를 내줬고, 그는 다른 사람의 자금을 끌어들여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스 정룽(施正榮·44) 상더(尙德)태양에너지 회장은 벼락부자 케이스. 창업부터 신차이푸 부자랭킹 5위에 오르기까지 단 4년이 걸렸다. 장수성 농촌 출신인 스 회장은 1983년 지린(吉林) 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과학원 상하이 광학정밀기계연구소를 거쳐 호주에서 태양전지 관련 박사 학위를 받은, 가방 끈이 긴 부자에 속한다.  
 
2000년 귀국해 중국에선 생소했던 태양전지 사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우시(無錫)시 경제무역위원회 주임에게 사업계획을 보고하는 기회를 잡았고, 그의 주선으로 8개 국유기업의 공동출자를 받을 수 있었다.  
 
2002년 상더(尙德)태양에너지가 처음으로 10MW 건전지 라인을 깔 무렵, 세계적으로 태양전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글로벌 강자로 부상했다.
 
2세 거부도 등장하기 시작 
 
올 해 부자 랭킹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사람은 신차이푸 랭킹 1위에 등극한 양후이옌(楊惠姸)이란 25세 여성이다. 부동산개발업체 ‘컨트리가든(碧桂園)’을 이끌고 있는 양궈창 (楊國强)회장의 둘째 딸. 그녀는 2005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를 졸업한 후 컨트리가든의 주식 약 60%를 물려받은 데 이어 올 4월 초 홍콩증시 상장으로 재산이 무려 455억 위안(약 5.46조원)으로 불었다.  
 
양 후이옌은 30주년을 바라보는 중국 개혁개방이 드디어 부의 대물림을 용인한 사례로 해석된다. 부친 양회장은 광둥성 농촌 출신으로 건설현장의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간 자수성가형 부자. 지방정부의 퇴직 고위공직자를 임원이나 주주로 영입하는 방법으로 인맥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 중앙정부의 부동산 경기 억제책으로 자금압박을 받게 되자 상장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부를 딸에게 물려준 셈이 됐다.  
 
중국 내 한국기업, 중국 증시상장을 노려라 
 
중 국 부자들의 최근 재산증식 과정은 중국 내 한국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첫째 제조업 분야 한 우물만 파다가는 중국 경제의 대세를 놓치기 십상이란 점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이면엔 치열한 가격경쟁이 있다. 제조업 분야는 세금 우대가 사라지고, 토종기업과 글로벌 기업간 기술격차가 좁혀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는 부자들의 재산비중이 갈수록 줄고 있는 이유다.  
 
둘 째, 자본시장의 확충, 구체적으로는 주식 수요기반 확대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 상하이, 선전 등 주식시장은 가파른 상승세로 거품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급등세는 기본적으로 중국 실물경제의 활황과, 주식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유통)물량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경제성장과 중산층의 확대로 광대한 주식 수요기반이 조성되고 있으나, 유통주 개혁 등으로 공급물량은 여전히 묶여 있다.
 
중 국 실물경제의 고공행진을 감안할 때 주식시장의 장기전망은 무척 밝다. 주식시장의 성장은 외국 합작기업에게도 은행 차입 외의 또 다른 자금조달 루트가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 특히 서비스 분야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에겐, 합작선과 협력해 증시상장을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