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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_경제

이건(EAGON) 박영주 회장

이건(EAGON) 박영주 회장


솔로몬군도에서 키운 희망 나무


사양산업으로 인식되어온 합판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 세계적인 종합목재
기업으로 성장한 이건. 이 회사는 현재 남태평양 솔로몬군도에서 여의도보다 90배나 넓은 숲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보다 2배나 큰  초이셀 섬에서도 원목 자원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본지는 머나먼 솔로몬군도에서 20년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설계한 박영주 회장을
지난달 7일 서울 양평동 본사에서 직접 만나보았다.





“솔로몬군도 초이셀 섬의 벌채권을 확보한 순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든 임직원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사업을 어떻게 진행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죠. 회의와 토론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나무를 베어낸 곳에 다시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본격적인 고생을 해보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당시 이건은 열대 지방에서 한 번도 나무를 키워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나무의 모종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환경에 맞는 나무를 선정하는 것, 좋은 종자를 구하기 위해 어미 나무를 구하는 것, 그 나무에서 거둬들인 씨앗의 싹을 틔우기 위한 것까지 모든 게 박영주 회장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강가의 모래를 어렵게 구해서 볶아 소독을 했고, 톱밥을 태워 섞은 흙을 개발해내면서 모종은 마침내 싹을 틔웠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지요. 하루에 20㎝씩 자라는 잡초 때문에 어린 묘목이 살아날 가망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어린 묘목을 보호하기 위해 직원들이 일일이 돌봐야 했습니다. 당시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경험 부족으로 겪어야만 했던 시련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차 좋은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위기는 나무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쪽에서 닥쳤다. 수많은 종족과 부족으로 이뤄진 솔로몬군도에서 종족끼리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분쟁은 급기야 쿠데타로 이어졌고, 모든 외국 기업들은 솔로몬군도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박 회장 역시 캠프 안의 장비조차 철수시키지 못한 채 섬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박 회장에게 희소식이 날아든 것은 그로부터 1년 후. 쿠데타가 끝났으니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냐는 솔로몬군도 측의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현지인들과 꾸준한 신뢰를 쌓아온 결과였다. 메시지를 받은 후 곧바로 솔로몬군도로 달려간 박 회장은 외국 기업 가운데 이건의 피해가 가장 적었고, 쿠데타 와중에도 현지인들이 이건의 장비와 묘목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련을 겪으며 느낀 것은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현재 뿐 아니라 미래까지 염두에 둔 경영 활동이 서로간의 신뢰 구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 지금도 솔로몬군도 현지인들은 스스로를 블랙 코리언(검은 한국인)이라 부르며 한국인을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답니다.”
나무 사랑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박영주 회장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냐고 묻자 그가 답한 내용이다. 필리핀 정글을 누비며 나무 위에서 새우잠을 잤던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솔로몬군도에서 겪었던 마음고생에 비하면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환경 경영 전도사


CEO 박영주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은둔의 경영자’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외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맨으로 시작해 비즈니스맨으로 마감하겠다는 본인의 의지 때문이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에 동행을 요구해도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라며 극구 사양할 정도다. 언론에 나서는 것은 더더욱 꺼린다. 그에게는 오직 나무만이 있을 뿐이다. 박 회장이 이끄는 이건 역시 조용한 경영을 표방하고 있다.
이 건은 현재 이건산업과 이건창호시스템, 이건리빙, 이건인테리어 4개의 가족 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4개 기업들은 자연 친화적 제품을 중심으로 ‘사람을 위한 건강한 주거 공간 창조’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목재 기술연구소, 이건창호 기술연구소, 이건리빙 기술연구소 등 각 분야의 전문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건축 자재 연구 개발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해외 사업장으로는 솔로몬군도와 칠레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대규모 조림사업과 사회공헌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건산업은 꾸준한 기술개발과 품질경영을 앞세워 사양산업으로 인식돼온 합판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종합목재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솔로몬군도에 여의도의 90배가 넘는 넓은 숲을 조성, 조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2배 면적인 초이셀 섬의 원목 자원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의 말처럼 이건산업의 주요 사업영역은 합판제조와 판매, 원목 및 합판 무역, 목재 가공 및 재생, 해외 산림자원 개발, 친환경 목재가공 제품 판매다.
이건창호시스템은 지난 88년에 국내 최초로 단열 효과와 방음 기능을 갖춘 시스템 창호를 국내에 선보였다. 이를 토대로 이건창호라는 브랜드를 개발, 국내 창호업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다양한 공간 및 설계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시스템 창호에서부터 대형 건축물 외벽용 커튼월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건창호는 92년 대전엑스포 시공을 비롯해 인천국제공항, 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아이파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택이나 호텔, 주상복합 건물, 관공서, 병원, 대기업 사옥 등의 고급화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국내 시스템 창호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국내 고급 창호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건리빙은 96년 마루사업을 시작한 이래 안전성과 친환경 품질 기준을 충족시키는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친환경 경영을 선언, 그린 리빙(Green Living) 마크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건리빙에서 생산한 이건마루는 2003년 유럽 환경기준의 척도인 핀란드 M1등급(유럽 최고 등급)을 획득했습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장 까다롭다는 포름알데히드 방산 최고 등급 (일본의 F☆☆☆☆) 심사도 통과했어요. 국내에서도 TVOC 방산 등급인 공기청정협회의 최우수 친환경건축자재인증 및 환경마크를 획득했습니다. 친환경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마루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지요.”
이건인테리어는 고급 아파트를 대상으로 시스템 부엌 가구, 일반 가구 등을 공급하는 종합 인테리어 가구 회사다. 지난 98년 아파트 가구 특판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삼성, 대우, 효성 등 대기업 아파트 건설사에 붙박이장, 거실장 등 다양한 제품군을 공급하고 있다.
“저희 회사 경영의 핵심은 바로 환경입니다. 다른 기업과 가장 차별된 점이기도 하지요. 현재의 자연 환경은 무절제한 자원 개발과 낭비로 자원고갈, 수질오염, 대기오염, 삼림 지역 감소 등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개개인의 노력 외에도 국가와 기업의 환경 보전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지요. 이제 환경 경영은 기업의 이윤과 직결되는 동시에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건은 ‘친환경 경영’을 선포하면서 환경친화적 상품 분야를 핵심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아울러 자연친화적인 건축자재와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주택자재를 제공, 건강한 주거공간을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각 계열사의 기술연구소에 힘을 실어 주고 있으며, 보다 친환경적이고 과학적인 건축자재를 개발하여 새로운 건축 문화를 만들고 있다.


문화와 경영의 접목


“저는 예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미술을 하던 집안 어른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딸과 며느리, 조카도 모두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딸은 지금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카도 독일 퀄른지역의 방송교향악단에서 퍼스트 첼리스트로 활약하고 있어요. 큰누나의 큰아들이 음악인 한대수입니다.” 사석에서 처음으로 밝힌다는 음악인 한대수씨와 박 회장의 관계는 집안 자체가 예술적 취향이 강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대수를 공부시키기 위해 미국에 유학을 보냈어요. 농업과 관련된 공부를 시키려던 참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요. 제가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 우여곡절 끝에 찾긴 찾았는데 농업과 전혀 상관없는 뮤지션이 되어 있더라고요. 말이 뮤지션이지 완전 음악 중독자였어요. 한국으로 데려와 정상인으로 만드는데 6개월이나 걸렸어요. 근데 결국 다시 음악 쪽으로 가더라구요. 타고난 취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예술적 취향이 강한 집안에서 자란 박 회장은 그의 문화적 감각을 경영에도 접목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건음악회다. 지난 90년 체코의 아카데미 목관 5중주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는 이건음악회는 올해 16회째를 맞았다.
그동안 헝가리 금관 5중주단, 다르장 플루트 3중주단, 웬델부르니어스 재즈밴드, 폴란드 체임버 싱어스, 로드 아일랜드 색소폰 4중주단, 체코 프라자크 현악 4중주단, 독일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 등이 소개된 바 있으며, 공연장을 찾은 인원만 해도 10만 명이 넘을 정도다.
“임직원들의 이해와 동참 열의가 없었다면 이건음악회를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 ‘마커스 로버츠 트리오’ 공연에는 평소보다 많은 1만여 명의 관객들이 찾아줘서 좌석 배정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관객들이 불평 없이 즐겁게 공연을 관람해 줘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다양한 장학사업과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박 회장은 89년부터 솔로몬군도에서 이건재단을 운영해오고 있다. 재단을 통해 국립미술관 건립 및 의료, 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등 해당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에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칠레에서도 사생대회와 경보단 등을 해마다 후원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현지 사회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001년에는 칠레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박 회장은 CEO가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앞을 내다보는 경영’을 꼽았다. 오랜 세월 현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21 세기는 변화와 도전의 시대입니다. 어제의 지식이 하루가 지난 오늘이 되면 낡은 지식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린 국제 경제의 큰 틀 속에서 지금까지 유효하다고 믿어왔던 패러다임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한다는 것을 CEO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고 기업을 이끌기 위해서는 현재라는 땅 위에 두 발로 굳건히 서서, 다가오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경영이 필요합니다.” 그가 이처럼 자신의 소신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원동력은 스스로가 앞을 내다보는 경영을 실천, 좋은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최근 많은 기업가들이 ‘기업가 정신’을 상실해가고 있다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특히 예전에 비해 진정한 기업가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재 세태라며 우려의 목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경영활동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라는 자신의 생각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일상에서 문화여가 활동을 즐긴다는 박영주 회장. 부족한 시간을 적극 활용하여 공연장이나 음악회, 미술관을 직접 찾아다닌다는 박 회장의 ‘문화 경영’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


임재천 기자


박영주 회장 약력
41년 부산 출생
59년 경기고 졸업
6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75년 광명목재 대표이사
78년 이건산업 대표이사
88년 이건창호시스템 대표이사(現)
93년  이건산업 회장(現)
93년  솔로몬아일랜드 명예영사(現)
93년  칠레 Foresta-l Lautaro S.A. 대표이사(現)
95년   세계임업협회(WFC) 회장
97년  아ㆍ태 삼림기구(APTO) 회장ㆍ이사(現)
0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現)
01년 금탑산업훈장 수상(대통령)
02년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위원회 위원장(現)
03년 메세나 대상 보급상 수상


제 14회 몽블랑 예술후원자상 수상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이 제정된 후 상을 받으신 분들의 리스트를 봤습니다. 수상자들 모두가 문화를 위해 많은 헌신을 하신 분들이더군요. 아주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금호그룹의 박성용 회장께서 지난해 상을 수상했더군요. 올해 제가 상을 받게 되어 큰 영광이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크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6월1일 독일의 몽블랑 문화재단이 선정하는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수상한 박영주 회장이 즉석에서 밝힌 소감이다.
몽블랑 문화재단은 이날 “박영주 회장은 지난 89년부터 이건재단을 설립하여 문화 예술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으며, 칠레와 솔로몬군도 등지에서 아낌없이 후원해온 점을 인정받아 이번에 수상자로 결정했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음악에 대한 조예가 남다른 박영주 회장이 지난해 이건음악회에 초청한 마커스 로버츠 트리오(재즈 공연) 공연의 경우, 미국 출장 중 시애틀에서 직접 공연을 관람한 후 국내 초청을 성사시켜 관객들의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건음악회는 세계 음악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주목을 받고 있으며, Talich String Quartet(체코) 공연의 경우 92년 이건음악회에 소개된 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박영주 회장은 문화후원을 통해 한국의 인식을 드높이는 문화사절로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 3백여 명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몽 블랑 예술후원자상은 세계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기리기 위해 독일의 몽블랑사가 제정한 것으로 매년 10명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역대 수상자로는 미국의 록펠러 재단, 세계적인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 미국의 유명 극작가인 수잔 손탁 등이 있다. 이번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은 박영주 회장 외에도 양 리핑(중국), 앙투안 드갈베르(프랑스), 세인스베리 경과 부인(영국), 리타 시모(미국) 등 10명이 선정됐다.


임재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