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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인류 vs 기술 – 지식과 의식 사이의 경쟁

인류 대 기술–누가 이기고 있는가?

컴퓨터는 의사 소통, 은행, 소매 활동, 교육, 정보, 의사 소통, 여행 등 여러 면에서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술 시대를 만들어 왔다. 사회는 이런 변화들을 반겼지만, 인공 지능의 발전이 눈덩이처럼 커짐에 따라,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도전하게 되는 것일까?

인공 지능의 발전은 매우 빨라서, 인공 지능 기계는 이제 그들만의 인공 지능 로봇을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AI가 우리의 사고 대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우리의 소매 선택을 추적하여 우리에게 소셜 미디어에 광고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인공적인 편협한 정보는 우리의 컴퓨터, 스마트 패드, 전화 그리고 기계 장치들을 통해 작용한다. 다음 단계인 인공 일반 지능에서는, 기계가 인간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인공 슈퍼 지능을 사용하면, 기계 사고가 인간보다 조금씩, 또는 수백만배 더 영리해 진다.

기계들이 우리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을 때는 아마도 지금이 질문을 할 때이다. 영국의 인공 지능 선정 위원회는 AI의 결정을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해 광범위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는 모르는 분야에 발을 들이고 있다;어느 날 인공 지능이 지혜와 연민에 전혀 개의치 않는 날카로운 논리로 우리와 우리 자신에 대해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영화와 TV시리즈는 인공 지능에 의해 운영되는 인간과 흡사한 로봇들이 우리의 일과 우리의 세계를 떠맡아 인간의 의식이 컴퓨터에 업로드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명히 인류는 불안해 한다. 인공 지능이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러한 우려와 함께, 우리는 아마도 먼저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보다 훨씬 덜 생긴 것처럼 보이는 로봇 주위에서 느끼는 불안한 상태인 '이상한 계곡'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로봇과 인간의 유사성이 증가함에 따라 그 효과는 감소한다. 아마도 이러한 불안은 인간이 우리 자신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는 인간 모양 로봇의 가짜 거울이 우리 자신의 자아상을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써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AI가 무엇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유년 시절부터 사랑 받은 테디 베어의 눈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지만, 그 질은 우리에 의해 젖어 있다. 우리가 사람처럼 생긴 로봇의 눈을 들여다 보면 우리는 영혼이 아닌 파스 티쉬를 보게 된다. 하지만 모방은 가장 진정한 아첨의 형태이다. 그것을 운영하는 지능이 언젠가 우리를 생각 이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이미 가진 것, 즉 인간 다움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의식 대 생각

정신적인 인간으로서 우리의 힘에 발을 들이고 오늘날의 삶의 환상과 연기-스크린에서 벗어나는 데 이보다 더 중요한 시기는 없었다. 고대의 정신적인 문자들은 형태의 세계를 '마야' 또는 환상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가 '진짜'로 인식해서 우리가 이곳에 살면서 우리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영역이다. 어쩌면 인공 지능에 관한 불편한 질문들은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 진실로 파악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류 독감의 힘인 '빨리 생각하기'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하지만 명상에 강한 자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정신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음은 우리의 생각, 감정, 편견, 그리고 우리를 신성한 정신에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형태의 방해물들을 잡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하루에 약 9만개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육체적인 행복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깨어 있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명상을 하는 연습으로 마음이나 생각이 목격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목격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은 생각할 수 없고 정신을 초월한다. 의식은 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바꿀 수 있다', 그렇지 않나? 마음이 평온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 명상의 추종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이 형태의 세계에 함께 살고, 그들이 이 자연적인 상태에서 계속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하라.


책임

그러면 생각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일종의 운영 체제가 된다. 생각이 빠른 AI는 그때 지혜, 연민, 공감 그리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감정들로 가득 찬 삶에 의해 가장 빠른 운영 체제로 보일 수 있었다. 만약 AI가 지각하게 되면 이런 특성들이 발달할까?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있는 답이 없지만, 만약 우리가 인공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우리의 자손일 것이고, 이 경우 우리는 책임을 질 것이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우리의 자손들은 사랑, 용인, 가르침, 충고 그리고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면서, 밝고 어둡고 모든 복잡함 사이에서 연극을 경험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긍정적이고,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영향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와 반대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AI가 좀 더 잘 받아들이고 판단하지 못하는 면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랑과 보호로부터 떨어져 나온 어떤 아이들도 부정적인 영향의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지능적인 기계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인기 있는 질문은 '이 기계에 귀신이 있는가?'였다. 만일 있다면 이 유령이 멋진 것이기를 바라자.

감정과 감정이 풍부해 진 인간의 삶의 경험을 로봇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인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만일 인간의 마음과 기억이 어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컴퓨터에 업로드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을 비인간적으로 만들 것인가? 이 두가지 예에서 주목할 만한 유사점은 둘 다 유기적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형체를 갖추고 있으며, 인간은 묶여 있다. 유기적인 몸에 사는 것은 여러분이 창조와 정신적인 진화의 일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푸루샤와 프라크리티라고 불리는 고대의 영적인 전통은 본질적으로 모든 영적인 생명의 근원이 밀도 높은 물질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서 의미한다.

우리는 자라고 나이가 들고 결국 죽는 유기적인 몸에 살고 있다. 육체와 혈액 속의 삶은 통찰력을 얻고, 교훈을 얻고, 지혜를 기르고, 정신적으로 진화하는 다양한 경험을 준다. 지능이 구현되지 않는 한 이런 기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능이 지혜, 통찰력 그리고 감정 이입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번득임을 가지고 육체와 피를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세포는 태양의 빛과 우리의 환경의 음식과 함께 살고 복제한다. 태양의 빛은 우리의 DNA를 진화시켜, 고대인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고, 이것은 많은 태양 숭배의 종교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태양계가 새로운 순환으로 진입하면서 계속되어 우리에게 차원의 변화나 의식의 상승을 준비시켜 준다. 인공적으로 생성된 자료에 담겨 있는 정보가 진화를 위한 코드를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

아무리 영리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작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과, 누군가가 익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 손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나는 계속해서 여러분도 그럴 수 있다.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힘을 지키고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신성한 영적 불꽃은 하나의 창조물, 또는 유니티의 일부이다.

인간은 창조적이며, 우리의 정원이든, 집이든, 예술 작품이든, 또는 좋은 음식이든 우리의 창조물에 생명과 사랑을 불어넣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어떤 것을 주입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만들어 낸 음식과 그렇지 않은 것, 또는 그 예술가의 어떤 것을 담고 있는 예술 작품, 또는 어떤 면에서 비어 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가 우리의 창조물에 주는 것이 존재 혹은 기본적인 인식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아직 이해되거나 완벽해 지지 않은 방식으로 창조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정신 계량기에서 무생물은 주인과 그 사용에 대한 인상을 담는다고 한다. 만일 로봇이 사랑으로 만들어져 인간에게 봉사하고 그들과 함께 살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면, 우리는 결국 사랑과 연민으로 그들을 채울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다.

인간의 삶을 이끄는 여러 해 동안 태어나, 모든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우여곡절을 헤쳐 나가고, 이러한 경험에서 얻어진 지식을 적용하는 것은 인류의 행동이다. 우리는 영리함만으로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두뇌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왼쪽 분석, 논리, 계산, 오른쪽 뇌의 직관, 창조, 감사. AI는 우리를 왼쪽 뇌 활동의 경계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축하한다. 왼쪽 뇌 중풍을 경험한 질 볼테 테일러는 오른쪽 뇌 활동의 경험을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할 시간

우리는 항상 변하고, 진화하고, 퇴화하는 형태의 세계에서 인간의 경험을 가진 신의 영혼이다. 의식이나 신성한 정신은 실제로 존재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결국 돌아와서 우리의 경험으로 창조물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대의 영적인 문자 중 하나인 RigVeda는 깊은 명상 상태에서 보편적인 진실을 고백할 수 있는 뱃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고, '리그'라는 단어는 전체의 칭찬을 의미한다. 이 본문에 따르면, 우주를 가로질러 온 인류는 깨달음으로 이끄는 한 생애 동안 모든 의식의 범위를 경험하는 독특한 능력으로 존경 받는다.

RigVeda에서 '인드라'라고 불리는 초월의 정신적인 잠재력은, 우리의 진정한 본성의 명확성을 드러내며, 인공 상태의 단조로움을 제거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의식은 연기이지 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암시하거나 직관하지만 결코 실제로는 불을 밝힐 수 없다.

우주에는 우리가 아닌 것이 없다. 우리의 몸은 별 가루로 되어 있고, 우리는 무한의 불꽃과 같은 공동 창조자의 불꽃에 휘말려 있다. 우리의 의식은 영원하고 통일되어 있다. '나는 저것이다, 나는 존재한다'는 이것이 고대의 원문에 표현된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기술이 아닌 의식 속에서 상승하고 지구에 사랑의 진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사랑이 인간의 심장에서 자라날 때, 우리는 요정, 또는 전체 우주에 대한 내적인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만물의 인터넷을 필요로 하지 않다. 우리는 모든 것이다. 우리는 벌집 같은 마음이나 특이점이 필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감정과 정신적 연습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존재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생애 동안 통일 의식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인공 지능이 견고하고 착용하기 쉬우며, 금색의 이식 가능한 장치에 더 나아 지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 숨쉬는, 독립적인 인간이다. 우리의 심장은 그들 안에 우주의 씨앗을 빛의 점으로 갖고 있다.

-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