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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_경제

영국 - 어린이펀드

'어린이들의 18년 장기 투자를 정부가 직접 지휘한다.'

현재 영국 정부는 2002년 이후 태어난 어린이들을 무조건 어린이펀드(Child Trust Fund)에 가입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국 가가 직접 나서 투자 상품인 펀드 가입을 유도한다는 게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여기엔 영국 정부의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자랑하던 영국 복지정책이 더 이상 국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령 20여 년 전만 해도 8%에 불과하던 대학 진학률이 최근 50%를 웃돌 정도로 높아지면서 정부가 전액 지원하던 대학 학자금은 개인 부담으로 바뀌었다.
어린이펀드를 운용하는 영국 자산운용사 F&C인베스트먼트의 존슨 홀랜드 국장은 "대학 학비 등으로 인해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 영국에도 많아졌다"면서 "영국 어린이펀드 도입은 결국 베이비부머 이후 세대들의 교육과 주택 마련을 돕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말했다.
일단 2002년 9월 1일 이후 출생하고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어린이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어린이펀드에 가입해야 한다. 특이한 점은 정부가 직접 현금 보조를 한다는 사실이다. 막 태어났을 때와 만 7살 때 각각 250파운드(약 48만원)의 바우처(보조금)를 지원해준다. 여기에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250파운드를 추가로 더 지급해 투자금 약 150만원을 정부가 마련해주게 된다.
펀드는 어린이 명의로 해야 하고 부모가 가입을 미루거나 게을리 하면 정부가 대신 가입해준다. 대부분 부모가 상품 유형이나 운용사를 직접 고른다.
투 자 규모는 한 달에 100파운드씩으로 연간 1200파운드까지 가능하다. 이처럼 연간 한도를 두는 까닭은 어린이가 사용할 혜택을 전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 어린이펀드에는 자본ㆍ이자소득을 비과세해 준다. 또 부모나 조부모 등이 어린이 명의로 투자할 수 있어 증여ㆍ상속세가 면제되는 효과도 있다.
투자금은 어린이가 심하게 아프거나 사망할 때를 제외하고는 인출할 수 없다. 만 18세 이후에야 인출이 가능하다. 결국 18년간의 장기 투자를 정부가 직접 유도하는 셈이다.
영국 어린이펀드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저축계좌(은행상품), 일반 투자계좌(주식ㆍ채권상품)와 이 둘을 섞은 안정관리형 투자계좌 등이다. 현재까지 투자 수익률 면에선 일반 투자계좌가 월등하다.
홀 랜드 국장은 "기간이 18년이나 되는 장기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25%는 저축계좌를 선택하고 있다"면서 "학자금, 주택자금 준비 외에 어린이에게 건전한 투자 습관을 만들어 주자는 취지까지 정착되려면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딸 릴리(2)를 키우고 있는 피터 스톤 씨(33)는 2002년부터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어린이펀드 개선안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당초 '재테크'에 그리 민감하지 않은 영국인에게 정부가 직접 현금바우처를 지급하며 펀드상품과 친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스 톤 씨는 "릴리에게 대학교육을 시키는 데 3만파운드(약 58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지금부터 어린이펀드를 통해 대비하고 있다"면서 "영국 부모들은 투자에 대해 잘 모르는데 현금 지원이라는 유인책 때문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맞벌이를 하는 스톤 씨 부부는 1년에 5만8000파운드를 벌지만 최근 자녀 교육비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영국 대학들이 대학등록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중산층 대부분이 힘들어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더 이상 무한대로 주기만 하는 복지가 불가능해진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스톤 씨는 현재 릴리를 위해 어린이펀드 한도 1200파운드를 꽉 채워 내고 있다. 어린이펀드 종류는 은행상품과 주식상품을 적절히 섞은 안정관리형 투자계좌를 선택했다.
그는 "주식형 계좌도 고민해 봤지만 위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안정관리형 계좌는 은행보다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운용보수도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 장기투자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릴 리가 18세 이후가 되면 스톤 씨는 또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까. 영국 정부는 어린이펀드 가입자가 18세가 된 이후에는 개인종합저축투자계좌(ISA)로 자동 편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ISA는 펀드, 주식, 보험, 현금 등에 고루 투자할 수 있는 개인 종합계좌로 16세 이상 영국 국민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스톤 씨는 "빠듯한 소득이지만 18년간 릴리를 위해 어린이펀드를 꾸준히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