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7
년, 프랑스의 가난한 서기였던 니콜라스 플라멜은 어느 날 황동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낡은 책을 단돈 2플로린을 주고 샀다.
당시에는 그 책이 불가사의한 비서(秘書)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멜은 온통 유황 냄새로 가득한 이
책이 유대의 왕자이자 대제사장이며 점성술사였던 아브라함이 동족에게 금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쓴 책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연금술사의 도움으로 괴상한 그림들에 대하여 많은 사실들을 알아내기는 했어도, 결정적인 비밀은 해독할
수가 없었다. 플라멜 부부는 당국에게 들키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면서 비밀의 열쇠를 알려줄 유태인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무
려 21년 동안 비밀의 해독에 매달린 플라멜은 우여곡절 끝에 카발라주의자인 유대인 내과의사를 만나게 되지만, 의사는 비법 전체를
전수해주지 못한 채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플라멜 부부는 불완전한 비법을 가지고 수년 동안 실험실에서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마침내 1382년, 그들은 반 파운드의 수은을 순은으로 변성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다시 3개월 뒤 반 파운드의
수은을 순금으로 변성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모
든 비교(秘敎)에 나타나는 공통적이고 핵심적 특징 가운데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비밀 전수가 있다는 것을 지난 창간호를 읽은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나 고대를 막론하고, 연금술서 역시 해독의 마지막 열쇠는 오로지 스승이 전하는 구전에
의해서만 전달된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이 증명해주듯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스승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금술서는 말하자면
부름이고 메시지일 뿐이며, 스승을 찾으라는 권유일 따름이다. 연금술은 황금 제조법이 전부가 아니라, 스승과 입문자가 직접
접촉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영적 능력과 구원 방법의 전수이다.
과
학사가(科學史家)라면, 위에서 방금 정의된 연금술의 본질에 대하여 비웃음을 금치 않을 것이다. 과학사가들에게 연금술은 화학의
기초 단계로, 금을 모조하거나 위조하기 위한 난삽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과연 연금술이 화학의 조잡한 선사(先史)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영지주의과 맥을 같이하는 연금술
초
기의 연금술 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물리학을 기초로 형성되었고, 화학적 실험기술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화학에서
빌어왔다는 점은 과학사에서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연금술 이론이 탄생할 당시부터 연금술 내부에는 고대 주술에서 흘러들어온
종교적 체험이 뒤섞여 있었다. 즉, 물질이 생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태고의 야금술사와 대장장이들의 신비술이 연금술을 통해
연장되고 있었다.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성숙하는 광물들을 황금의 완벽함에 도달할 때까지 질적 성장을 계속하는 태아로 간주하였던
야금술적 사고가 연금술에 그대로 흡수된 것이다. 연금술사는 대지모의 자궁 속에 배태된 태아(광석)의 성장을 가속화시키고, 모든
비천한 금속을 고귀한 금으로 최종 변성시키려 했다.
이
와 더불어 연금술의 신비주의 양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서기 1∼3세기 사이의 영지주의였다. 인간 영혼이 본질적으로 신의
영혼의 편린이라는 영지주의의 기본 개념은, 어두운 물질 속에 신의 빛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연금술사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영지주의의 영적 과정과 연금술의 가시적 작업은 매우 비슷했고, 또 상호보완적이었다. 따라서 연금술의
신비주의적 측면은 대부분 영지주의의 영향이라고 보면 옳다.
가 령 조지모스, 클레오파트라,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 등이 화학 작용을 영지주의의 용어로 표현해 놓은 것을 보면 그러한 사실이 분명해진다. 특히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세 번 위대한 헤르메스)는 서양 연금술의 전설적인 창시자이다. 이집트 지혜의 신 토트와 동일시되기도 하는 헤르메스는 헤르메스주의의 시조이고, 헤르메스주의에는 연금술이 포함되어 있다. 헤르메스는 3만6천 권에 달하는 연금술서를 집필하였다고 하며, 그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에메랄드 명판』이다.
12단계 연금술 작업의 의미
그렇다면 과연 범용한 금속을 금으로 변성시킨다는 연금술 작업의 구체적 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일반적으로 연금술의 대작업은 다음의 12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소 → 응결 → 응고 → 용해 → 소화 →증류 → 승화 → 석출 → 밀랍 → 발효 → 증식 → 사영
' 철학의 나무'로 그려지기도 하는 작업의 12단계는 중국 연금술의 전통에 나타난 화금석의 6단계와도 거의 일치한다. 중국 연금술의 경우는 숨은 용(하소), 벌판의 용(발효), 보이는 용(응결), 도약하는 용(용해), 나는 용(증류), 떠도는 용(승화)이라는 용의 여섯 양태로 과정을 상징하였다.
12
단계의 조작을 위해서는 유황과 수은, 그리고 소금이 기본 요소로 준비되어야 한다. 유황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능동적 원리이자
남성이다. 수은은 달로 상징되고 수동적 원리이자 여성이며, 소금은 유황과 수은의 결합 수단이다. 반대 원리인 남성 유황과 여성
수은은 왕과 왕비로 상징되면서, '철학자의 알'이라고 불리는 자궁 모양의 용기 속에 담겨져 결합한다. '철학적 결혼'이라고
불리는 결합이 끝나면, 그 물질은 레비스(Rebis=Res+Bis, 곧 '양성체'라는 의미)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 결합은
곧이어 하소 과정으로 넘어간다. 하소는 가열과 흡사한 과정인데, 여기서 검은 물질이 얻어진다. 이 검은 물질 때문에 이 단계를
흔히 흑화 단계라고 부르며, 연금술사들은 이 과정을 왕과 왕비의 죽음, 부패로 묘사하였고, 용기(容器)는 무덤, 관, 지옥으로
묘사하였다.
왕
과 왕비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그들의 아들, 즉 현자의 돌이라 불리는 화금석(化金石)이 만들어지는 것은 증식의 단계에서이다. 제일
마지막 사영 단계에서 현자의 돌을 가루로 만들어 종이나 밀랍에 싼 다음, 변성시킬 금속에 던져넣으면 금속은 동일한 양의 순수한
금으로 변성된다. 작업의 단계별 진행과는 다른 측면에서 연금술 과정을 설명할 수도 있다. 현자의 돌로 귀착되는 대작업은 물질을
총 네 단계에 통과시킴으로써 달성된다. 이 네 단계는 물질의 색깔에 따라 각각 멜란시스(검은색), 류코시스(흰색),
크산토시스(노란색), 이오시스(붉은 색)로 구분된다. 이 네 가지 색깔에 해당되는 작업의 각 단계는 흑화(黑化), 백화(白化),
접근, 그리고 적화(赤化)이다. 간혹 다섯 단계 작업일 경우는 여기에 생화(生化), 혹은 공작꼬리가 추가된다. 이 넷 혹은 다섯
단계는 서양 연금술의 전 역사를 통해서 보존되었다. 그 가운데 죽음을 상징하는 흑화와, 아들의 탄생(현자의 돌의 완성)을
상징하는 적화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거의 모든 연금술 삽화에 보면, 새로 탄생된 젊은 왕은 붉은 색과 관련되어 묘사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자의 돌로 다시 태어나는 연금술사
하
지만 이 비법이 연금술의 전부는 아니었다. 연금술사들에게 금은 부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빛이었다. 연금술사들은
스스로가 현자의 돌이 되어야 했다. 즉 연금술사들은 실험실에서 연금술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도 조작을 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13세기 무렵 중국의 연금술이 거의 전적으로 명상 기술의 하나가 되고, 연금술적 처리 과정이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연금술사의 몸 안에서 행해지던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도의 연금술사가 자신을 정화시키고 각성시키기 위해서,
다시 말해 자신의 육체 속에 잠자고 있는 신성한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서 광물질을 조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4
세기에 살았던 조지모스가 받은 연금술적 계시를 보면 이 점이 확실해진다. 어느 날 조지모스의 꿈에 이온이라는 성직자가 나타나
자신의 사지가 칼로 찢기고 벗겨져, 육체가 영혼으로 변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불에 태워졌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는 연금술에서 납이 금으로 변성되기 위해 불 속에서 자신의 물질이 사라져야 하는 것처럼, 인간은 육체로 죽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통찰이 담겨 있다. 꿈속의 계시에 의해 조시모스는 연금술사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변성을 묘사하였다.
초월을 향한 영혼의 치열한 여행
이
신비주의적 연금술은 16세기와 17세기에 절정에 달하게 된다. 특히 하인리히 쿤라트는 영적인 연금술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독교적인 신비주의자인 쿤라트는 금속의 변성을 연금술사의 정신 안에 일어나는 신비로운 과정으로 해석하였다. 쿤라트
책의 삽화를 보면, 현자의 돌이 놓여 있는 연금술의 성을 묘사하고 있다. 성으로 가는 바른 길은 오직 하나뿐이고, 나머지 길들은
사악한 연금술사들이 가는 죽음의 길이다. 중심에 도달하려면, 연금술사는 필요한 물질과 작업의 전 과정을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깨끗한 심장을 지니고 신의가 있고 조용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실험과학자에게 요구되는 근본적인
자질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자질들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연금술 작업에서 영적인 요소가 얼마나 지배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현대에는 연금술이라는 단어가 신화라는 단어만큼이나 남용되고 있다. [언어의 연금술]에서 [라면의 연금술]에
이르기까지, 연금술은 뭔가를 특별하게 창출하는 기법 정도로 쇠락하여 영화로웠던 지난날을 무색하게 한다. 그러나 연금술은 사실상
화학의 기초 단계로서 구체적 조작과정을 넘어서는 것으로, 연금술사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깨달은 초월적 존재가
되도록 하는, 영혼의 치열한 여정이었다.
연
금술이 단순한 화학 실험을 넘어서는 작업이었다는 증거는 수많은 연금술 삽화의 상징적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실험 도구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은 사실상 몇 개 되지 않는다. 삽화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연금술의 많은 부분을 이해했다고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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