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사람입국(立國 )’을 표방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 중심의 경제발전 모델을 추구하겠다.
비정규직 비율을 55%에서 27%로 낮추고,
연간 근로시간을 2400시간에서 2000시간으로 줄이고,
평생학습 참여율을 22%에서 40%로 높이겠다.”
문 전 사장은 “일자리 창출이 성장의 수단이자 최선의 복지정책”이라면서
“일자리 창출을 국정 최고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 전 사장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의 바탕에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유한킴벌리)라는 친환경기업 이미지뿐 아니라
이른바 ‘4조 근무제’ 로 압축되는
유한킴벌리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4조 3교대제 혹은 4조 2교대제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높인 작업장 혁신 사례는
문 전 사장이 대통령 자리에까지 도전하는 발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직후
대량실업 사태 당시 유한킴벌리의 ‘4조 근무제’ ‘평생학습체제’ 모델은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직후 대안으로 급부상
‘Y-K모델’로 불리는 유한킴벌리 생산혁신 모델은
사람중심 경영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알려져 있다.
문 전 사장은 2003년 말 청와대 정책실의 주선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뉴패러다임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고,
노 대통령은 “이런 보고를 너무 오래 기다렸다”며
“당장 실시하라”고 말했다.
뉴패러다임 정책개발을 위한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 신경쟁력특위’(위원장 문국현)가 구성됐고,
2004년에 발족한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에서
각 사업장에 유한킴벌리 모델을 전파하고 있다.
2001년 이후 문 전 사장이 대중 앞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게 된 이유도
환경경영보다는 유한킴벌리의 작업장 혁신 사례가 더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그 뒤 문 전 사장은
회사 안팎에서 “회사에서보다 텔레비전에서 더 자주 얼굴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기업 바깥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문 전 사장은
‘우리의 과제’ ‘사람중심의 창조적 국가발전 전략’ ‘지식경제 창조’ 등을 내세웠다.
유한킴벌리 모델이 확산되던 때와 기업경영을 넘어 ‘국가경영’ 메시지를 던지면서
원대한 야망을 품기 시작한 시점이 서로 맞물려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문 전 사장이 전파하는 사람중심 경영모델은
“사람(지식근로자)의 경쟁력을 통해 기업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자”고 외친다.
지금까지 뉴패러다임센터를 통해
뉴패러다임 컨설팅 사업에 참여한 기관은 약 158개에 이른다.
2007년 3월 현재 기업규모별, 업종별로 뉴패러다임 컨설팅 참여기관은
제조업 사업장 50개, 서비스업 71개, 공공부문 37개 등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이 42곳, 100∼300인 45곳, 100인 미만 71곳이다.
뉴패러다임센터 쪽은 “뉴패러다임이 유한킴벌리 같은 제조업에만 적용될 수 있는 모형이라는 지적이 있었으나,
서비스 업종과 공공기관 등 다양한 업종에 뉴패러다임 모형이 적용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고 말한다.
이렇듯 유한킴벌리 사례가
‘고용 안정+높은 생산성+지식노동자 배출’의 성공적 시스템으로 인정받으면서
기업인 문국현의 포부도 날로 커진 것일까?
‘작업장 학습·혁신 체제를 통한 일자리 지키기’로 불리는
유한킴벌리 모델은 어떤 것일까?
유한킴벌리는 1998년 경제위기 당시
제품 수요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공장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주저앉고,
재고는 계속 쌓여갔다.
구조조정의 위기가 감돌았고,
잉여인력 비율이 전체 직원의 40%를 넘어섰다.
이 때 1995년 사장으로 취임한 문 전 사장은
정리해고 대신 4조 근무제를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했다.
이른바 ‘고용조정 없는 구조조정’ 이었다.
당시 노조는 실질임금 저하를 우려하면서 4조 근무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노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유한킴벌리의 국내 3개 전 공장(대전·김천·군포 공장)에서 4조 근무제를 전면 실시했다.
4조 근무제에 따라 기계는 365일 풀가동됐고,
‘충분한 휴식과 충분한 학습체제’를 바탕으로 생산성은 높은 속도로 향상되기 시작했다.
매출액은 1996년 3323억원에서 2003년 7036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유한킴벌리 대전공장은 동일 업종 가운데 세계적으로
최저 불량률과 최고의 생산성을 내고 있고,
경제위기 기간에 매년 1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등 놀라운 경영 성과를 올렸다.
시장점유율 추락으로 위기에 빠진 1992년 당시,
대전공장 책임을 맡았던 문 전 사장은
국내 제조업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4조 3교대제를 도입해
직원 수를 110명으로 오히려 늘려 여유인력을 확보하고, 근로자 학습체제를 구축하는 데 나섰다.
기존의 3조 3교대 방식에 비해 “야근·특근 수당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종업원들의 우려가 있었으나
생산성은 급속히 증가했고,
이어 군포공장과 김천공장에도 4교대제가 전면 시행됐다.
유한킴벌리의 4조 2교대제는 전 직원이 4조로 나뉘어
16일을 한 주기로 ‘주간 4일 근무(하루 12시간)’→ ‘휴무 4일(교육 1일 포함)’→ ‘야간 4일 근무(하루 12시간)’→ ‘휴무 4일’ 의
순서로 근무하는 방식이다.
교대시간은 오전 7시와 오후 7시다.
종업원 1인당 연간 근로일수는 180일 정도이고,
1주일 평균 근로시간은 42시간(교육시간 포함 45.3시간)이다.
유한킴벌리 모델의 또 다른 핵심은
‘고강도 학습체제’에 있다.
이는 4조 근무제라는 독특한 방식과 긴밀히 결합돼 있다.
즉, 4조 교대제를 도입해 1개 조를 예비 조로 두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인력의 133%가 고용돼 있고,
100%의 인력이 일을 하면 나머지 33%의 인력은 쉬거나 교육을 받게 된다.
4조 3교대제 당시 대전공장의 1인당 교육 시간은 연간 약 360시간으로,
이 중 120시간 정도는 정규 근로시간 내에 포함된 교육·훈련이고
나머지 240시간 정도는 잔업수당을 지급하는 교육·훈련 시간이다.
유한킴벌리의 평생학습 체제는 직무교육 60%, 교양교육 40%로 구성된다.
그러나 유한킴벌리가 교육·훈련을 강화한 배경에는
1년 내내 쉬지 않고 풀가동이 필요한 장치산업이라는 성격이 크게 작용했다.
근로자들을 다기능화해서 전환배치를 쉽게 하고,
설비 보수 능력을 강화해 기계의 가동 중지를 최소화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치산업 특성과 유일한의 설립 철학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고가의 기계설비를 24시간 풀가동해 설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4조 교대제가 도입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유한킴벌리의 기술적 특성이 4조 근무제 도입의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일 뿐
문 전 사장의 리더십 혹은 혁신경영이 성공의 요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4조 근무에 따라 연간 공장 가동 일수는 약 320일에서 360일로 늘었고,
주말·휴일에도 주·야간 근무가 계속 돌아간다.
이에 대해 문 전 사장은
<세계가 배우는 한국기업의 희망, 유한킴벌리>라는 책에서
“유한킴벌리는 GE 잭 웰치의 구조조정·인력감축 방식 대신
인력유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효율성에 주목했다”며
“사람에게 투자하면 각자가 회사에 큰 이익을 안겨준다.
기업의 효율성은 사람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키움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기계는 하드웨어에 불과하고, 사람 중심의 혁신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직업능력개발원 이성 연구위원은
“장치산업이라는 특성과 고 유일한 박사의 인간존중 철학이 뿌리로 작용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4조 2교대를 도입해 여유인력을 두면 단기적으로 인건비가 늘어나고
회사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대부분인데,
이와 달리 문 사장은 혁신과 학습을 중요한 요소로 보고 여기서 경쟁력의 원천을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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