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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_경제

가난 구제하는 진짜 '무이자' 대출 - 그라민은행 체험기

가난 구제하는 진짜 '무이자'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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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라 마을입구에서 수레를 탄
희망대장정팀의 윤여정(왼쪽),
주세운(가운데)씨와 나연(오른쪽)
그라민은행 살랑가 지점장.


그라민은 멀었다. 지리적인 먼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낯설음의 연속이었다.

9월 13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자리잡은 그라민은행 본부를 찾아갔을 때 우리를 맞이한 한 매니저는 "최근엔 매주 20명 이상 외국 방문객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라민은행과 이 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영향이었다.

그래서인지 방문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은 조금은 정형화된 것이었고, 첫 걸음에 기대를 채우지 못한 우리는 실망을 느꼈다.

사흘 후, 우리는 실제 마이크로크레디트 현장을 보러 그라민은행 보그라 지역 살랑가 지점(Salanga ullahpara branch)으로 출발했다

다카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거리의 보그라 시내에서 방글라데시 특유의 삼륜택시로 갈아탔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푸른 들판을 30분 이상 또 달렸다.

푸르게 여물어가는 벼와 초여름 빛의 녹음 위로 저물어가는 햇살, 이 모든 게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전원적인 분위기에 한껏 취했을 때, 우리는 그라민은행 살랑가 지점에 도착했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말로 '마을(village)'을 뜻한다. 그라민 지점은 그 이름다웠다. 작은 철조망과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쌓인 2층짜리 허름한 건물은 덩그라니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주위에 단 한채의 다른 건물도 없이 오로지 푸른 논밭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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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가 되도록 상환금 정리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그라민은행 살랑가 지점
직원들.


은행 내부는 우리 기준으로 따지자면, 시골동네에 오래된 마을회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넓다란 테이블이 대여섯개 놓인 건물 내부는 밤 9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지만 환하게 밝았다. 경비원도 카운터도 없는 은행 안에선 백열등 불빛 아래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열심히 장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해 올 4월에 지점장으로 발령 받았다는 나연(27) 지점장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며 "마을 주민들과 미팅을 마치고 온 직원들이 상환받은 대출금을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10년 이상 방치된 듯 곳곳이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힌 직원용 숙소에서 한창 짐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끊겼다. 하루에도 두세번씩 정전된다는 방글라데시의 전력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시골의 어둠과 적막은 한층 더 깊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직원들은 양초로 불을 밝힌 채 밤 11시가 지나도록 장부정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라민은행은 기존 은행이 대출해주지 않는 저소득층에 연 20% 안팎 이자율로 창업, 주택, 학비 대출을 제공한다. 심지어 무이자 대출도 있다. 극빈자 대출(Beggar Loan)이 그것이다. 일부 회원 자녀에겐 장학금도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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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민은행에서 대출 혹은 교육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마을 여성들.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1983년 그라민은행이 정식 설립된 이후 방글라데시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가난한 사람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고정관념도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라민은행의 누르자한 베굼 부장은 "방글라데시 마이크로크레디트 이자율은 20~35%로 시중은행 이자율(10~15%)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하지만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빈곤여성의 집에 직접 찾아가서 대출하고 교육, 훈련해야하기에 훨씬 많은 고용과 인건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맨발'로 대출 받아 일어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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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 상환을 위해 그라민멤버 그룹 리더들과
그라민 은행 직원이 정기회의를 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실제로 그라민 멤버(대출자)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라지만 마을 멤버의 집 앞마당 한 귀퉁이에 간이로 의자와 책상을 놓은 것이 전부였다.

여기에 30여명의 여성들과 은행원이 둘러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은행원과 멤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대출금을 조금씩 상환하고 일상생활의 고민을 나눈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서자 주민 한 명이 일어났다.

"하나, 모두 일어나세요." "둘, 경례."

빈민들은 으레 어둡고 움츠러든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우리는 그들의 당당한 눈빛과 표정에 오히려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허름한 양철지붕 집 사이 진흙 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외부인을 오히려 위축되게 만드는 당당함을 지니고 있었다.

직원이 보여준 그라민의 대출신청서에는 담보를 적는 난이 없었다. 대신 집은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식수는 어떻게 구해서 먹는지, 집안에 의자는 몇 개나 있는지 등 신청자의 생활 형편을 물어보는 질문이 4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대출을 원하는 여성이 그라민은행에 문의하면 은행원이 직접 신청자의 집을 방문해 신청서를 작성해준다. 문맹이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을 배려한 조치다.

신청서 마지막 장은 은행이 제시하는 16가지 결심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묻는다. 16가지 결심이란 깨끗한 집으로 보수하기, 채소 심기, 깨끗한 물 마시기, 아이들 학교 보내기, 가족 계획 같은 것들이다.

그라민 멤버인 마로티(34)씨는 "그라민은행에서 제시한 16가지 결심에 대해서 마을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일상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라민 멤버인 자신의 어머니, 도이보티(55)씨의 권유로 그라민 멤버가 되었다. 마로티씨는 집에서 소쿠리 만드는 수공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그라민은행을 만나기 전에는 하루 세끼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여 좋은 일자리를 구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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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민멤버 자하나라(오른쪽)씨의
딸 모쉬미(왼쪽)양은 그라민장학생이다.

그라민멤버, 자하나라(45)씨의 딸 모쉬미(14)양은 장학금 수혜자다. 모쉬미양은 올해 매년 마을에서 12명에게만 주는 그라민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1년에 3000다카, 우리돈 4만원 정도의 돈을 받아 학업에 필요한 책, 학용품 등 물품을 사는 데 쓴다.

모쉬미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자하나라씨는 "딸이 원하는 꿈을 이루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대견스러워 했다.

탐방 마지막 날 만난 조비타(52)씨는 그라민은행에서 '무이자' 대출 지원을 받고 있는 수혜자였다. 그가 받은 극빈자 대출(Begger loan)은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소액대출)의 이자조차 갚기 힘든 극빈층을 위해 그라민은행이 2003년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다른 그라민 멤버들처럼 생활이 향상되었을까 기대를 품고 조비타씨 댁을 찾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차마 카메라를 꺼내들 수 없었다. 궁핍한 그의 생활에 함께 동행했던 은행원들조차 말을 잊을 정도였다.

조비타씨는 그라민 지점 앞에서 견과류 따위를 팔아 하루에 20~30다카, 270~400원을 번다. 이 정도 수입으로는 음식을 구할 길이 없어 이웃집에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남은 음식을 얻어먹는다. 함께 사는 딸은 지불하지 못한 지참금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을 당해 친정으로 쫓겨왔다.

그에게 거처를 물었을 때 통역관은 '집(house)'가 아니라 '작은 쉼터(tiny shelter)'라고 통역해줬다. 잠시 후 거처를 확인했을 때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웃이 소유한 간이 외양간에 한 켠에 마련된 그의 '쉼터'는 나무토막으로 얼기설기 엮은 단상에 볏집으로 덮혀진 움막 같은 곳이었다. 인터뷰 도중, 우리는 움막에 배설을 하는 소를 보며 놀랐지만 조비따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그가 겪어내고 있는 삶 앞에서 우는 것조차 미안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꿨지만 빈곤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소한의 자본도 가지지 못한 극빈층에게는 이 또한 버거운 선택이다.

마을에서 만난 대학생 도히드(21)군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며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3박4일 간 우리와 동행했던 지점장, 나연씨는 자신의 일을 '명예로운 직업(honorable job)'이라 표현했다. 우리가 만났던 모든 그라민 직원들이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 우리는 그들의 말이 겉치레 말이려니 하고 흘려 들었다. 그러나 나연씨가 편안한 차림으로 마을을 거닐 때 마을 사람들이 건네던 진심 어린 미소를 보며,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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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대장정팀의 김이경(왼쪽)씨가
500타카를 계좌에 예치하고 그라민
멤버가 됐다.

그들이 나누던 인사에는 우리가 보통 아는 은행원과 대출자의 관계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따뜻함이 들어 있었다.

한 시골대학 교수의 머리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지 30주년. 우리가 둘러본 현장에선 그라민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높은 의식을 갖게 된 젊은 세대가 탄생하고 있었다.

30년 전에는 한 사람의 꿈일 뿐이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라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