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준(LONE COSTUME)
1992년 esmod 졸업
1992년~1995년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chiffons" 디자이너 근무
1996년~1997년 내셔널 브랜드 "club Monaco" 디자인 팀장 근무
1998년~1998년 내셔널 브랜드 "NIX" 디자인 팀장 근무
1999년 디자이너 브랜드 "LONE COSTUME" 설립
2003년 08월 아시아 타임지 선정 아시아 4인의 아티스트로 선정
2006년 현재 "LONE COSTUME" 대표
2006년 현재 사단법인 뉴웨이브인서울(NWS) 부회장
“유명 호텔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대형 호텔마저도 오래되고 낡아서 편리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과감하게 거리로 나와 유명하진 않지만 작고 아담한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대형 호텔과 비교해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들어서는 순간 단숨에 반하고 말았다. 영국 특유의 엄숙미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프티 호텔은 인테리어 자체만으로도 나의 영감을 자극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매일 다른 분위기의 프티 호텔을 옮겨 다니며 경직되어 있는 영국 속의 작은 위트를 찾아 다녔다.”
정욱준에게 여행은 일과 휴식의 절충점이다. 완전한 휴식을 위해 찾은 섬 휴양지에서 느꼈던 지루함과 따분함은 그에게 있어 최악의 여행. 그 이후 정욱준은 가능하면 목적이 있는 여행을 떠난다. 영국을 찾은 것도 휴식 이외에 확실한 목적, 아티스트 사이먼 핸우드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결국 현지에서는 그를 직접 만나지 못하고 이메일 교환으로 공동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영국 여행이 소모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사이먼 핸우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위트를 영국의 프티 호텔을 전전하는 동안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행은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 고갈된 영혼에 영감을 채워 넣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쉴 곳을 고르더라도 휴식과 영감을 모두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지요. 쉬는 동안 최대한 편안해야 하는 것은 제1의 요건이고, 지루하다 싶을 때 문득문득 자극을 주는 인테리어나 디자인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 또 다른 요건입니다. 항상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에게 휴식은 일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좌 사이먼 핸우드와 공동 작업으로 만든 티셔츠. 우 정욱준의 독특한 위트가 살아 있는 브로치
정욱준의 여행 컬렉션에서 그가 추구하는 절제와 위트를 발견할 수 있다.
정욱준의 여행 기술
휴 식과 일이 하나인 정욱준은 가능하면 다음 컬렉션의 콘셉트가 살아 숨쉬는 곳으로 여행 목적지를 잡는다. 그곳에서 최대한 휴식하고 즐기면서 그만의 콘셉트를 구상해 나간다.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그가 일을 하듯 꼼꼼히 여행을 준비하기 때문. 이렇게 여행하고 돌아오면 그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영감은 이미 절반은 구체화되었음을 의미한다.
1 여행지 선정은 인터넷과 다양한 서적을 통해 접한 아티스트들이 사는 나라, 혹은 그 같은 콘셉트가 살아 있는 곳으로 정한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쉬다만 오는 여행은 싫다. 재미가 없어서.
2 여행을 떠나기 전 가방에 반드시 챙겨 넣는 것은 입욕제. 일상과 마찬가지로 도시 곳곳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영감을 얻기에 저녁때 피로를 풀어주는 반신욕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3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므로 현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휴식 공간인 호텔과 레스토랑. 나의 경우 호텔과 레스토랑은 여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건이다.
< 새로운 10년 여는 사람들 - 패션디자이너 정욱준 >
"트렌치코트의 새로운 해석으로 佛컬렉션에 신선한 충격 줬죠"
신(神)은 여자에게 산고(産苦)를 줬고 예술가에겐 창작의 고통을 떠안겼다.
봄·여름과 가을·겨울 두 시즌에 맞춰 늘 새로운 '무엇'으로 세상과 만나야 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어떨까.
남성복 디자이너 정욱준은 패션쇼를 앞두고 밤을 하얗게 지새는 기간에 "머리로 아이를 낳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지난 17일 찾은 서울 신사동 그의 작업실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들과 책상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사진들….그 속에서 그는 "머리와 손으로 계속 무엇인가를 부수고 만느는 중"이었다.
지난달의 파리는 정욱준에게 '세계로 통하는 창'을 열어줬다.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파리 2008 봄·여름 컬렉션'에서 그는 준지(JUUN.J)라는 이름으로 세계 패션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르 피가로'는 컬렉션에 참가한 디자이너 150여명 가운데 주목받는 6명에 정욱준을 포함시켰다.
"좌석이 200석 정도였는데 (파리 컬렉션은 바이어와 기자들을 중심으로 초청자를 선별하기 때문에 좌석이 많지 않다) 350명이 넘게 왔어요.
제가 얘기하긴 좀 쑥스럽지만 '트렌치 코트를 자기 것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컬렉션에 참가한 신인들의 패션쇼엔 보통 30명 정도 참석하는 점을 감안하면 뜨거운 반응이었다.
'론 커스텀(Lone custom)'이란 브랜드로 2002년부터 서울 컬렉션에 참가하며 국내에서 각광받아온 그였지만,사실 세계로 나가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도전'의 시기를 저울질하던 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1월 승부수를 던졌다.
"제 작품을 들고 무작정 파리로 갔어요.
토템 프레신과 같은 세계적인 에이전트 회사를 찾았죠.라프 시몬즈,베로니크 브랑킨호,베르나르 윌헴 등 촉망받는 디자이너를 보유한 회사들인데 '나에게 관심이나 있을까' 걱정도 많았죠."
한국에서 온 자그마한 디자이너.1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게 만든 콧대 높은 에이전트 관계자들은 작품을 보여주자 "우리가 찾던 스타일"이라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프레신은 '행거를 비워 줄 테니 옷을 걸고 가라'고 했다.
그의 옷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옷과 함께 행거에 걸리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이후 토템과 PR계약을 맺었고 세계 주요도시에 '준지'를 팔아 줄 에이전트도 확보했다.
#옷 입기 싫어하던 아이가….
정욱준은 어린 시절부터 디자이너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아동복 제조·도매업을 했던 부모님은 새 옷이 나올 때마다 아들에게 갈아 입혔다.
"제가 입어보고 '예쁘다'고 하면 그 아동복은 히트를 쳤고 '이 옷 싫어'라고 하면 판매가 부진했다고 그러세요.
옷과 친숙하게 지낸 터라 대학도 의상학과를 가려고 했었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남자가 의상학과를 간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었다.
망설이던 그는 결국 미대에 진학했다.
제대를 앞두고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졌고 결국 '의상이 나의 길이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학을 과감히 중퇴하고 디자인 스쿨인 에스모드(es-mode) 서울에 들어가 3년간 "행복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에스모드를 졸업한 정욱준은 남성복 브랜드 '쉬퐁'을 시작으로 디자인 업계에 얼굴을 내밀었고 1997년엔 '닉스' 디자인 팀장의 자리에 올랐다.
"패션기업 디자인 팀장은 아주 좋은 자리죠.하지만 갈증이 있었어요.
내 옷을 만들지 못하고 언제나 다른 디자인을 모방해야 했던 게 늘 고민이었어요.
이러다가는 디자이너로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죠."
IMF 외환위기로 있던 직장에서도 쫓겨나던 시절.잘나가던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후배 1명과 신사동에 4.7평짜리 매장을 열었다.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다.
이후 배고픈 날들이 이어졌다.
"마네킹 2개에 행거 2개,책상 1개를 놓으면 꽉 찰 정도로 좁은 매장이었죠.한달 수입 중에서 월세 70만원을 내고 나면 50만원 정도 남았는데 둘이 25만원씩 나눠 갖곤 했어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죠."
정욱준은 인터뷰 내내 '인터내셔널'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한국'이라는 틀 속에서 사고하는 패션은 얼마 못가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잘 팔리니까 해외에서도 잘 팔리겠지'라는 생각은 독(毒)과 같아요."그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강조한다.
루이비통이 그렇듯이 이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디자인과 아이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덴티티가 있는 브랜드,디자이너의 독창성이 녹아 있는 패션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디자이너와 창의성'이란 주제로 잠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문제로 화제가 옮아갔다.
정욱준은 "아이덴티티가 있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디자이너가 많아야 한다"면서 "그런데 우리 교육 현실은 창조성과는 거리가 멀어 걱정"이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예술적 기질이 뛰어 납니다.
그런데 그런 자질을 발휘하도록 돕는 교육이 없어요.
한국에선 꼭 대학을 나와야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다는 공식이 있는데 패션이 발달된 나라의 디자이너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패션계에 투입됩니다.
그들보다 4∼5년 뒤늦게 시작하는데다 일도 창조적이지 못하니 경쟁이 되겠어요."
정욱준은 유럽에서 인정받은 뒤 중국에서 당당히 제값 받고 옷을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파리에서 첫발을 내디뎠죠.파리 뉴욕과 같은 본토에서 네임밸류를 얻은 다음 중국 부자들에게 비싸게 팔아야죠." 그는 중국 한 기업에서 높은 연봉과 숙소를 제공받고 디자인팀을 맡아 달라는 제의도 그래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경이로운 데뷔”, “패션계의 신동”, “밀라노가 놓친 신인, 파리가 재발견하다”, “주목해야 할 디자이너”
정욱준 동문의 첫 파리 컬렉션이 끝난 후 전세계 프레스들에서 앞다투어 내놓은 리뷰의 내용들이다.
파
리에서 열린 2008 S/S 파리 맨즈 컬렉션(Paris Men’s Collection)의 첫째 날인 28일, 에스모드 서울이
배출한 졸업생들 중 첫 번째로 파리 컬렉션 진출 테이프를 끊은 정욱준(2기) 동문은 이 날, JUUN.J라는 이름을 세계인들의
가슴에 명확하게 아로새긴 듯이 보였다.
6월 28일, 오후 2시 파리 중심부의 아뜰리에 리슐리유(Atelier
Richelieu)는 전세계 패션을 이끄는 수많은 기자들과 바이어들이 쇼장을 가득 메우며 대형 신인의 탄생을 예고했다.
신인으로서 감안 해야 할 다소 불편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보그, 아레나, 아이디 등 세계 유수의 매체와 한국 프레스진들의 취재
경쟁으로 쇼장이 다소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에스모드 서울의 박윤정 이사장과 고은경 사무처장도 자리를 함께 해 에스모드
서울 졸업생의 첫 번째 파리 컬렉션 무대를 감동스럽게 지켜보았다.
강력한 뉴페이스 모델 더글라스
쥬웰(Douglas Jewell)을 선두로 라이언 테일러(Ryan taylor), 다미에르 블라드식(Damir
Vladusic)의 신선한 워킹은 정통 트렌치를 재해석해 새로운 아이템으로 탄생시킨 첫 라인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이후
벵상 라크로(Vincent Lacroq), 휴고 서지(Hugo Sauzay)등의 낯익은 슈퍼 모델들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정욱준만의 강력한 무기인 완벽한 디테일들과 어울려 더없이 프로페셔널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불규칙한 심장 고동소리 같다는 평을
들은 쇼 음악도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이라는 이번 쇼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켰다.
이번 쇼를 통해
정욱준은 ‘클래식의 재해석’이라는 그간의 의도를 총망라하여 보여주었다. 트렌치, 재킷, 셔츠 등의 클래식한 아이템들의 각 부분을
떼어내서 위치를 바꾸고, 본래의 디테일을 변형시키는 등 아방가르드한 해석을 가미했다. 이는 새로운 실루엣과 아이템을 탄생시키며
세계 무대를 놀라게 한 창조적 시도였다.
쇼가 끝난 뒤 일렬에서 묵묵히 쇼를 관람했던 파리 패션협회장 디디에 그랑박(Didier Grumbach)은 따로 관계자를 불러 “굉장한 쇼였으며, 다음 시즌부터는 준지에게 스케줄 우선권을 주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다음날부터 앞다투어 리뷰를 실은 파리 일간지들과 전세계 매체들을 “한국에서 온 무명의 디자이너 JUUN.J가 전세계 패션계를 놀라게 했으며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고 대서 특필했다.
특
히 ‘르 피가로(Le Figaro)’지는 준지의 컬렉션을 갈리아노, 루이비통, 준야 와타나베와 함께 6명의 핫 리스트로 언급하며
“목요일날 열렸던 컬렉션중에는 아주 특별한 흡입력과 영향을 준 한국인 준지가 있었다. 그의 옷은 완벽하게 공들였고 마무리가
잘되었으며, 준지는 개인적인 터치가 정확하게 드러나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디자이너이다” 라고 평했다.
또한
‘디망쉬(Dimanche)’지는 컬렉션을 총 망라하며 특별히 신인 준지를 주목해야 할 디자이너로 지목했으며, 이외에도
‘FWD’의 Godfrey Deeny와 ‘fashion window’의 Jean-Paul Cauvin 등 세계 여러나라의 주요
패션전문 기자들은 정욱준 동문의 컬렉션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각 미디어들의 극찬으로 정욱준 동문의 ‘준지’ 컬렉션 의상을 전시해놓은 파리 ‘노시즌(No Season)’ 쇼룸은 뒤늦게라도 그의 작품을 보려는 기자들과 바이어들로 가득했다.
첫
데뷰쇼와 쇼룸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친 정욱준 동문은 “분에 넘치는 ‘신동’이라는 닉네임과 호평에 오히려 부담감을 느낀다”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음 시즌 더욱 제 감각과 솜씨를 재차 입증할 수 있는 완벽한 컬렉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홈쇼핑이 유명 패션 디자이너와 제휴해 내놓는 프라이빗 브랜드(Private Brand:자체 상표)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개성이 살아 있는 옷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런칭 4주년을 맞이한 GS홈쇼핑의 ‘론(LONE) 정욱준’도 프라이빗 브랜드 가운데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연간 300억~350억원대 매출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클래식하고 테일러링에 충실한’, ‘세련되고 감각적인’ 옷을 콘셉트로 하는 론 정욱준은 특히 25~35세의 젊은 패션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당연히 그들이 주 고객층이다.
당초 남성복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이후 여성복 라인도 출시해 비슷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현재 남성복 대 여성복 비율은 6 대 4 정도다.
론 정욱준은 고품격 패션을 추구하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장 수트와 양피 재킷 등이 20만원 안팎이다. 회사원 김태성(38)씨는 적당한 가격을 보고 론 정욱준을 처음 구입했다가 이내 품질에도 반한 경우다. “겨울에 모직코트를 한 번 구입해 봤는데 가볍고 착용감이 좋았어요. 입었을 때 맵시도 나고. 디자이너의 정성과 함께 품위도 느껴져 나중에는 정장까지 구입했죠.”
김 씨는 또 “백화점에서 100만원 이상에 파는 정장과 론 정욱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합리적인 가격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다만 “저처럼 키가 크고 마른 편인 사람에게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다른 체형은 어떨지 모르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혜원(35)씨는 남편에게 입힐 정장으로 론 정욱준을 자주 선택하는 주부다. 그는 “론은 한 번 사면 그 다음에 또 사게 된다”며 “가을 트렌치 코트를 하나 구입했는데 디자인도 멋지고 가격도 괜찮아서 겨울 코트까지 구입했다”고 구매 경험을 밝혔다.
GS홈쇼핑의 조철훈 MD는 론 정욱준의 강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론 정욱준의 주 고객층은 30대 초반에서 중반에 몰려 있어요. 고객층이 명확한 이유는 고객의 의견을 수렴한 디자인 콘셉트 때문이죠. 튀지 않지만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고, 클래식한 디자인에 디테일한 포인트를 줘 마니아도 생겨날 정도지요.”
조 MD는 또 “매회 방송 때마다 정욱준씨가 직접 출연해 세계의 패션 트렌드를 소개하고, 아울러 작품마다 디자인 콘셉트와 코디 방법을 설명하는데 남성 고객들의 반응이 꽤 좋다”며 숨은 인기 비결을 덧붙였다.
론 정욱준이 4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 중 하나는 바로 고객관리. GS-eshop에 마련된 인터넷 커뮤니티 ‘론 정욱준’은 담당 MD가 회원들을 직접 관리하며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펼치는 곳이다.
커 뮤니티 회원들의 구매 후기나 질문에 대해선 직접 답을 하며 요구사항도 최대한 들어주는 편이다. 회원들은 정욱준씨의 정기 컬렉션이나 인터뷰 기사, 브랜드 스토리, 방송 예정일 등을 보려고 커뮤니티를 찾기도 한다. 방송 예정일을 미리 알아두고 구매하는 회원도 있다. 커뮤니티 회원들이 들려주는 ‘론 정욱준’은 어떨까?
#1 론을 입는 순간 ‘딱 맞다’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회사원 이의헌(29)씨. “브랜드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론을 입으면 스스로 슬림해 보이고 스타일이 살아난다는 기분이 들어요.”
이씨는 “무엇보다 입었을 때 부드럽게 떨어지는 라인이 론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회사에 론을 입고 나가면 “연예인 스타일 아니냐”, “회사에 입고 나오기 좀 그렇지 않으냐”는 부러움 섞인 핀잔을 받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씨는 “론은 무난하면서도 디자이너의 세련된 감성이 묻어있는 옷” 이라며 “유행도 좋지만 ‘아르마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론’하면 떠올릴 수 있는 ‘론’만의 고집스러운 스타일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2 외국어학원 강사인 라현주(31)씨도 론과의 독특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강의를 하는 도중에 한 수강생이 입은 옷이 디자인도 예쁘고 색감도 독특한 거예요. 남자 옷인 데도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기존 남성 코트랑 느낌부터 달랐어요.”
그 후 라씨는 GS홈쇼핑에서 론 정욱준 여성 정장도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때마침 격식과 세련됨을 함께 갖춘 정장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론이 쏙 들어왔다고 한다.
“정장하면 보통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론은 여성스러움까지 느껴지는 예쁜 옷이었어요. 품질, 디자인, 가격 모두 만족스러웠죠.”
라씨는 이어 가을엔 트렌치코트, 겨울엔 코트를 구입했다. 튀지 않고 세련되며 깔끔한 디자인과 색감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하지만 겨울 코트가 좀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인터뷰 디자이너 정욱준
“이름뿐 아니라 디자인, 패턴 작업, 상품관리까지 직접 다 합니다.”
세 계 패션계가 주목하는 ‘파리 컬렉션’에서 준지(JUUN.J)란 이름을 알리고 돌아온 디자이너 정욱준씨. 그에게 파리 컬렉션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년 전 “내 이름을 건 브랜드로 파리 컬렉션에서 성공하는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자”던 꿈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는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됐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한다. 새롭지 않으면 샴페인 거품처럼 금세 사라지는 패션계에서 튼실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이 앞섰기 때문이다. 세계무대 데뷔 전에도 정씨는 국내에서 이미 인정받는 실력파 디자이너였다. 쉬퐁, 돔, 클럽 모나코, 닉스의 디자이너로 활동한 후 독립해서 1999년 ‘론 커스텀’ 매장을 열었다. 그 후 영화 ‘유령’, ‘화산고’, ‘동갑내기 과외하기’, ‘역도산’ 등의 의상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시아판 타임지에 ‘아시아 4인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적도 있다. 정씨는 홈쇼핑 방송이 있는 날에는 직접 출연해 고객의 뜨거운 반응을 몸소 체험하곤 한다. “홈쇼핑만큼 냉정한 곳이 없어요. 판매가 안 되면 브랜드가 사라지는 곳이거든요.”
이런 이유로 정씨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을 직접 대하며 판매하는 것보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판매할 옷을 출시할 때가 더 긴장된다고 한다. 매출이 곧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는 이름만 빌려주는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디자인과 패턴 작업 모두 제가 제작하고 참여해요. 서너 군데의 협력업체가 있는데 공장을 돌면서 상품관리를 직접 합니다. 고객이 사 입는 건 ‘정욱준이 만든 옷’이잖아요.”
2003 년 8월 GS홈쇼핑에서 ‘론 정욱준’을 처음 런칭할 때만 해도 정씨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 ‘고가에 팔던 옷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으면 자칫 퀄리티가 떨어져 보이지 않을까’ 혹은 ‘디자이너로서 이미지에 타격은 없을까’하며 불안해 했던 것. 하지만 결국 그는 GS홈쇼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옷이란 사람의 손을 타고, 많은 사람에게 입혀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제가 디자인한 옷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입는 상상을 하니 뿌듯하더라고요. 패션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은 고객에게 디자이너의 감성이 담긴 옷을 저렴한 가격에 입힐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던 거죠.”
그렇다면 정씨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옷이란 무엇일까? “입었을 때 편안한 옷이죠. 론 정욱준이 한결같이 인기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멋지고 예쁜 디자인은 기본, 착용했을 때 편안한 옷, 그것이 론 정욱준의 디자인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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