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 - 동화의 나라에서 ‘ 경영의 노스트라다무스 ’ 를 만나다

이 할아버지의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
힘만 세고 성실한 ‘마당쇠 직원’은 필요없다
“꿈꾸는 경영의 시대, 상상력으로 무장하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아버지들이 모두 옛날옛적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드림소사이어티’를 꿈꾸는 이 미래학자의 예언은 늘‘족집게’였다. “노동력은 대체할 수 있어도 상상력은 대신할 수 없다. 감성으로 무장하라. 꿈꾸는 경영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삼성에겐 어떤 예언을 할까? “삼성의 위기는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치명타를 ‘삼성답게’ 극복하라. 그러면 삼성은 또 다른 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중심가 반드쿤스텐(Vandkunsten) 거리. 북유럽의 한기(寒氣)를 가득 머금은 겨울 비를 뚫고 이곳 6번지의 '드림컴퍼니(Dream Company)'를 찾아갔다.

북유럽식 '오가닉(유기농)' 카페가 있는 아담한 건물 2층. 문을 두드리니 20대 후반의 젊은 남자 직원이 나와 기자를 맞았다. 말이 '컴퍼니(회사)'지, 흘끔 둘러보니 30여 평 남짓한 가정집. '기업의 미래 전략 컨설팅 회사'라는 홍보 문구에서 현대적 사무실을 연상했던 기자는 맥이 빠졌다.

보글보글 커피가 끓으며 구수한 향이 스며 나오는 서재가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65)의 사무실이었다. 반백의 머리에 분홍색 셔츠, 담배 파이프까지 물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은 영락없이 '할아버지 교수님'이었다.

인터뷰를 하겠답시고 수천 ㎞를 날아온 기자에게 그가 먼저 질문을 쏟아냈다. "요즘 한국은 별일 없나요? 세계적 대기업(삼성)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면서요?" 그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한국이 나한테 관심이 많으니까요. (웃음) 한국은 워낙 역동적인 곳이라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의 사무실 벽은 그의 행적을 말해 주듯 아프리카와 미국, 남미, 동유럽 등 전 세계의 토산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중 하회탈이 들어간 액자도 눈에 띄었다. "사무실이 너무 작은 것 같은데 괜찮은가"라고 물었다. "이게 드림소사이어티 시대의 기업이죠. 공간은 작지만, 우리 회사의 꿈은 세상을 모두 덮을 만큼 큽니다."

옌센은 2001년 덴마크 미래학 연구소 소장 자리에서 은퇴한 뒤 드림컴퍼니를 차렸다. 기업의 미래 전략에 대한 경영컨설팅이 주 업무. 대표인 자신과 비서 1명이 전직원이다. 그는 스스로를 '최고상상책임자(CIO·Chief-Imagination-Officer)'라고 부른다.

CIO라는 직함은 그가 1999년 주창한 '드림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론'의 요체를 담고 있다. "MBA들이 지배하는 기계적 효율성의 기업은 점차 도태될 것이다. 미래는 꿈꾸는 경영자들의 시대다." 다시금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옌센은 "가난과 배고픔이 사라진 세계에서 소비자들은 재미와 스릴, 사랑, 윤리적 자부심 같은 정서적 만족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세기에 그가 '미래'라고 지칭했던 시대는 현실이 되고 있다. 옌센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옌센은 "미래의 기업은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감성적 경험(emotional experience)을 제공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고 예언했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옌센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한 회사들이다. 애플의 아이팟, 스타벅스의 까페라테, 도요타의 렉서스, 삼성전자의 휴대폰을 생각할 때 소비자들은 뚜렷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세계 시장을 제패한 이들 상품에는 그것만의 독특한 경험과 이야기(story)가 있는 것이다. 옌센은 "그 이야기들은, 다름 아닌 그 기업과 경영자들의 꿈이 체화(體化)한 것"이라고 했다.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된 가치관과 비전(vision)을 제시하고, 이를 기업의 모든 구성원과 공유해 가는 것이야말로 옌센이 말하는 경영인의 가장 큰 역할이다. 심지어 소비자까지 기업의 비전을 믿게 만드는 경영자가 있다. 옌센은 "이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경영자"라고 말했다.

옌센은 시대가 배출한 '꿈꾸는 경영자'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Jobs), 영국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Branson) 회장을 꼽았다. "우리는 어느 순간 그들의 꿈과 열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이 창조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동참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합니다. 투자자들도 투자하고 싶어 안달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에게 삼성그룹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드림소사이어티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중요한 자산인 명성(reputat ion)에 치명적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닐까요?" 그는 "기업 경영과정에서 악재는 발생하게 마련"이라며 "이번 사건은 삼성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의로운 주인공(hero) 들은 돈이나 권력 대신 항상 사랑(가족과 연인)을 선택합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 점에 열광하죠. 만약 삼성이 자신의 명성에 걸 맞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는 삼성의 새로운 신화(legend)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삼성의 새 이야기에 감명받을 것입니다. 나중에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것이란 것도 자명합니다."

위클리비즈는 많은 기업인과 경영학 교수들에게 "가장 만나고 싶은 경영의 구루(guru)가 누구인지" 물어보곤 한다. 롤프 옌센(Rolf Jensen)은 가장 많이 이름에 오르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와의 만남은 지난해 12월의 방문에 이어 두 차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뤄졌다.

옌센은 자신의 저서이자 전매특허가 된 '드림소사이어티(dream society)'의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하자 "머리(brain) 못지 않게 가슴(heart)이 중요해진 시대"라고 답했다.

요즘 기업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드림소사이어티의 소비자들은 기업에 감성적 만족을 요구한다. 글로벌 브랜드의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뉴요커가 된 듯한 느낌을, 발랄한 디자인의 프랑스산 핸드백을 메고 파리지앙이 된 듯한 기분을, 타이거우즈와 똑 같은 골프화를 신고 최경주가 광고한 골프채를 휘두르면 마치 그들처럼 라운딩할 것 같은 자신감 말이다. 단순히 기술과 가격 경쟁력만 신봉하는 기업이 만든 제품은 결코 월마트나 까르푸의 매장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종업원은 힘세고 성실한 '마당쇠'가 아니다. 소비자를 매혹시키고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넘치는 창조적 인재들이다. 옌센 씨는 "노동은 얼마든지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할 수 있다. 오직 상상력만은 영원히 인간의 능력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9년 덴마크에 서 '드림소사이어티'의 초판이 출간된 이후, 글로벌 경영의 트렌드는 책의 예언처럼 크게 변화해 왔다. 한때 강력한 경영자의 리더십이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리더 없는 창조적 조직', '목표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조직'이 21세기의 경영 기법으로 각광 받고 있다. 경영자의 리더십 역시 구성원에 대한 통제력이 아닌 동기 부여 능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나의 신념과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소수 정예의 조직이 드림소사이어티의 이상적(ideal) 기업이다. 이들은 마치 몽골의 유목전사를 닮았다. 전리품보다 전사의 명예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옌센은 "미래 기업의 구성원들은 말 많고 탈 많은 스톡옵션보다, 조직의 인정과 명예를 얻는 것을 더욱 중요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드림소사이어티의 기업은 안팎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도전을 받는다. 소비자에게 감성적 경험을 전달하고,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 창조적 일체감을 불어넣는 것은 훌륭한 '이야기(story)'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때보다 홍보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 림소사이어티는 지금도 진화 중이다. 기업들은 더욱 세련된 감성 만족 전략을 내놓고 있고, 다품종 소량 생산 기법의 발전에 힘입어 개인화된 상품(personalized product)들이 나오고 있다. 그는 "드림소사이어티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당신은 '드림소사이어티'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는데요, 이후 당신의 생각은 변화하지 않았나요?

"드림소사이 어티에 대한 개념이나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난 10여 년간 설명하는 방법이 계속 바뀌고, 발전해 왔습니다. 최근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는 인간의 욕구와 뇌 구조의 상관 관계에 빗대서 표현하곤 합니다. 즉 과거에는 이성과 언어를 관장하는 대뇌 피질(neo cortex)이 지배하는 세계였다면, 이제는 뇌의 안쪽에 있는 감정 중추(대뇌 변연계·limbic brain)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말하지요."

― 책에서 시장(market)을 총 6가지로 구분하셨는데, 이중 가장 중요한 시장은 무엇인가요? (옌센은 시장이 소비자의 어떤 감성적 요구에 부응하느냐에 시장을 '모험 이야기 시장', '사랑과 소속감 시장', '돌봄의 시장', '정체성 시장', '마음의 평화 시장', '신념의 시장'으로 나누었다. 이를테면 그린피스(Greenpeace)는 신념의 시장에 속하는 단체이다.)

" '사랑과 소속감의 시장'이 으뜸입니다. 연인을 위해 꽃이나 반지를 사주거나, 비싼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는 행위, 크리스마스나 생일날 가족들에게 주는 선물을 주는 행위가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먹고 사는 데 아무 영향도 없는 일에, 소득의 상당 부분을 쓰고 있는 것이죠. 더구나 이 시장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나라들의 경제 개발이 이뤄지고, 개인적이고 서구적인 생활 방식이 확산될 수록,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독감은 더욱 커질 겁니다. 따라서 사랑과 소속감의 시장과, 여기에 속하는 산업 역시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기업들은 드림소사이어티의 세계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요?

"드림소사 이어티 시대의 소비자들은 감성적 만족을 위해 기업에 항상 새로운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요구합니다. 이는 기업의 경영과 조직 원리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기업은 종업원들이 물리적 노동력을 제공했지만, 이제는 종업원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지식과 창조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입니다.

노동은 얼마든지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에선 상점, 레스토랑, 호텔, 정부에서 이용되는 노동력의 최대 80%를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생산은 조립 라인의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지적이고, 대단히 사회적인 과정이라는 점에서, 종업원은 더 이상 기업의 구성요소(component)가 아니라, 기업에 동화된 일부분입니다. 기업이 내세우는 신념과 이야기에 구성원들이 모두 동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더 이상 기계적 조직의 기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구성원들이 서로 느슨하고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는 역동적 조직이 미래의 기업입니다. 이들은 동일한 신념과 아이디어, 목표로 뭉쳐져 있습니다. 과거 수렵채취경제 시대의 부족 사회나, 몽골의 유목 부족을 떠올리면 됩니다."

― 지난 10여 년간 그런 예상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까?

" 선진국 기업들을 보면, 이미 그런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참이죠. 요즘 글로벌 경영의 트렌드를 보면 관리와 규율보다는 열정과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종업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에 의해 회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 이른바 '리더가 없는 조직(leaderless organization)'을 추구하고 있지요.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 역시 효율적인 통제(control)가 아니라, 동기(motivation) 부여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드림소사이어티식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매우 느린 과정입니다. 본격적인 변화를 확인하려면 몇 년 더 지나야 할 겁니다."

― 개인의 삶에서 일과 놀이의 구분이 없어지고, 직장은 제2의 가정이 될 것이며, 일은 '힘든 재미'가 될 것이라고도 주장하셨는데요.

" 벌써 대부분의 직장(workplace)에서 반복적인 노동이 기계와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일이 주는 육체적 고통은 분명 줄어들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침울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업의 계층 구조가 점점 평평해지고, 종업원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동기를 부여하면서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가족의 생계를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놀이터이자 돈을 벌어가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구글의 사무실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일이 더 재미있어졌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제 개인적 기준으로 봐서는,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가정 생활이 점점 희생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재미로부터는 멀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 기업의 자산 중에 인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으므로 이를 회계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하셨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 드림소사이어티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자산에서 물적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인적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입니다. 브랜드 가치, 근로자와 소비자간에 공유된 감성, 지적 재산권, 종업원들의 협력으로 창출된 가치 등이 모두 광의의 인적 자산에 포함됩니다. 이제는 자본마저 글로벌한 금융 시장에서 전문가들이 지닌 고도의 금융 테크닉을 이용해 구해오기 때문에, 인적 자산에 일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실 지금까지 기업들과 회계사들은 살아있는 자산이 아니라 죽은 자산만 따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종업원들이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나 기업 문화이기 때문이죠. 이를 측정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이 아직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기업이 쓰는 총 인건비가 인적 자산(human assets)과 맞먹는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기업이 종업원들을 해고하면 줄어든 인건비 액수만큼 인적 자산도 줄어든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 임직원들의 성과 보상책으로 스톡옵션이 주로 활용되어 왔는데, 요즘 스톡옵션의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많다 보니 성과 보상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 드림소사이어티 시대의 기업 조직과 문화라면, 조직 내의 인정(recognition)이 스톡 옵션이 주는 만족감을 충분히 상쇄해 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우리 조직의 중요한 멤버이고, 우리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런 만족감은 가정에서 부모나 형제, 자녀로부터 받는 정서적 만족감과 비슷한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물질적인 보상도 있어야겠지만, 반드시 스톡옵션이 아니더라도 물질적 보상을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 드림소사이어티 환경에서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독특한 경험을 주는 '이야기(story)'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낸다고 말씀하셨죠. 예를 들어 '우리 제품에는 이런 전통과 철학이 있습니다'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만 강조하다 보면 연구·개발보다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마케팅이나 홍보에만 너무 힘을 쏟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마케팅과 홍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제품의 질과 가격에 더불어, 거기 내재되어 있는 스토리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품질의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상품끼리 경쟁한다면 이야기의 힘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물질적 차이까지 이야기가 메울 수는 없습니다. 드림소사이어티는 농업사회와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의 유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정보의 가치 없이 이야기가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이야기, 즉 임직원들의 감성과 열정을 관통하는 이야기('기업 문화'를 의미)에 대한 홍보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제는 기업 문화가 기업의 능력과 가치를 결정하니까요. 시장을 향한 홍보뿐만 아니라, 내부적 홍보가 무척 중요해진 것이죠."

―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이야기가 있다면, 반대로 그 가치를 깎아 내리는 반(反)이야기(anti-story)도 있을 텐데요. 기업은 어떤 전략으로 맞서야 하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림소사이어티에서 이야기와 반(反) 이야기간의 싸움은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투쟁이 될 것입니다. 맥도날드와 소비자들간의 이야기 전쟁을 예로 들어 보죠.

맥도날드와 소비자들은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가 정상적인 고기인지, 감자튀김을 튀기는 기름이 건강에 유해한지, 필수영양소는 부족하고 칼로리만 높은 게 아닌지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가장 진실된 가치를 담은 이야기가 승리할 겁니다.

맥도날드는 분산화(de-centralization)의 전략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대처해왔습니다. 즉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제품의 스펙트럼을 넓힘으로써, 이야기 전쟁의 전선을 길게 늘어뜨리고, 적의 공격이 흩어지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 식품이 '트랜스 지방 덩어리'라고 비난하는 이야기에 대항해서는 다양한 저지방, 저칼로리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 고급 재료를 사용한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해 맥도날드가 싸구려 음식을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에도 반박하고 있죠.

일반적으로 작은 기업들이 성공을 거두고 더 큰 기업이 되어 갈수록 반이야기의 공세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은 가장 진실되고 가치 있는 이야기가 승리할 겁니다. 기업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정성을 띠고 있는지, 얼마나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이를 개선시켜 나가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pielberg),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Rowling) 같은 사람을 드림소사이어티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이야기꾼(storyteller)으로 꼽았는데, 기업인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 버진(Virgin)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회장,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회장이 대표적이죠. 브랜슨 회장은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너무나 많은 소비자들이 독과점적이고 비효율적인 대기업으로부터 형편없는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을 구해내자는 것이 버진 그룹의 사명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이야기가 후발 주자라는 버진 그룹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동감한 버진 그룹 고객들에게 만족감까지 줍니다.

스티브 잡스 회장은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감성적 만족을 주고 있습니다. 아이팟(iPod)·아이폰·아이맥 제품에서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쾌감'이 바로 그것이죠. 아이팟보다 기능적으로 더 우수하고 저렴한 제품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애플 제품에 담겨 있는 잡스 회장의 디자인 철학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합니다."

― 이타적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기부하고, 대기업들은 사회 공헌과 환경 보호에 막대한 돈을 씁니다. 아예 기업의 목표가 이윤이 아니라 공공선(public good)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기업들이 왜 이렇게 바뀌고 있나요?

"예전에 미국에 서 심리학자들에게 '미국의 대기업들을 사람으로 친다면, 그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하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싸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성성격장애)'라는 대답이 나왔지요. 이윤에 집착하는 미국의 기업들의 속성을 잘 집어낸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 공헌 등 선행을 통해 경영을 잘할 수 있다는 기업들이 등장했으니, 정말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드림소사이어티의 상황입니다. 기업 자체도 이윤의 극대화보다 환경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발생하는 감성적 만족에 점점 몰두하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의 '좋은 기업'에 대한 가치관 역시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기업에서 감성적 만족을 주는 기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 5~10년이 지나면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년 전만 해도 환경에 대해 콧방귀를 뀌던 BP나 엑손(Exxon), 셸(Shell) 같은 대형 석유기업들이 지금은 친환경적인 사업을 하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지요. 셸은 주유소에서 '셸은 좋은 회사예요!'라고 쓰인 곰 인형을 나눠주더군요."

― 드림소사이어티의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옵니까?

"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물질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방식, 다른 이야기들이 등장할 겁니다. 감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방식이 더욱 더 세련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의 다양성이 증대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극단화 되면서 주문형 자동차나 청바지 등 개인화된 상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대량 생산의 시대는 가고, 개인화된 상품이 등장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개인을 위한 맞춤형 맥주나 감자, 우유, 소금 상품까지 등장하고 있지요.

게다가 소비자가 공동 생산자 혹은 디자이너로 참여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위 프로슈머(prosumer) 혹은 아마추어-프로들(amaproffs)의 등장입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무너지고 있죠. 위키피디아, 리눅스 같은 웹 2.0 시대의 산물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이윤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자본주의적 경제 관념을 무너뜨리고 있지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새 책 '드림소사이어티:다음 세대(Dream Society: Next Generation)'에서 드림소사이어티의 더욱 발전된 형태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옌센은 집필과 출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새 책을 집필하는 동시에 크로아티아(Croatia) 관광 산업 진흥을 위한 전략 컨설팅을 위해 코펜하겐과 자그레브(Zagreb)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은퇴를 해야 하겠죠.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내 상상력이 다하는 날이 오면."


롤프 옌센(Rolf Jensen·66)은 누구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미래학자다. 1999년 정보화 사회 이후의 세계를 예측한 '드림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현재 기업의 비전(vision)과 미래 전략을 컨설팅 해주는 '드림 컴퍼니(www.dreamcompany.dk)'의 대표이자 최고상상책임자(CIO)를 맡고 있다. 덴마크 오르후스(Arhus University)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공무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덴 마크 외교부와 국방부, 수산업부 등에서 근무한 뒤, 1984년 세계 최대의 미래문제 연구단체인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입사해 덴마크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과 미래 혁신전략 등을 연구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연구소장을 지냈다. 캐나다크로아티아의 국가 전략 자문관을 지냈고, 현재 유럽미래학회 자문 위원, 세계미래학사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