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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은 사나이 추성훈 - 무릅팍도사 관람기


27일 MBC 황금어장 무릅팍 도사에 추성훈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재미있다는 드라마 '뉴하트' 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TV 앞에 앉아

있었다.  스포츠 스타가 나온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추성훈의 출연은 사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만기 선수처럼 국민적 스포츠였던 씨름같은 운동의 살아있는 전설도 아니고, IMF 라는 우리나라 경제 대공황에 침체 되 있는 국민들의

사기를 드라마같은 역전의 샷으로 단번에 희망과 행복으로 충족시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박세리도 아니고..거기다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지지도 않은 격투기선수를 출연시킨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 한 일이였다.

하지만... 추성훈

결코 낳선 이름이 아니다..

한국에선 기득세력의 텃세에, 일본에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야유와 불공평한 판정, 그리고 버림을 받아야만 했던 그이지만 그누구도 

그가 최강자임을 부인할수 없음을 실력으로 보여주는 파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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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秋成勳, 1975년 7월 29일 ~)은 한국계 일본인 유도가이자 K-1 히어로즈에서 활약하는 종합격투가이다.

일본 오사카 이쿠노쿠 코리아타운에서 태어난 재일 동포 4세로, 후에 일본귀화를 하였으며, 일본 이름은 아키야마 요시히로

(秋山 成勲, あきやま よしひ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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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은 재일한국인 4세로 일본 오사카 시에서 태어나 유도 선수인 아버지 추계이의 영향으로 세 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했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한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가장 유도 명문 고등학교로 스카웃되어

많은 시합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한국국적을 가진 그였기에 일본의 주요 대회에는 출전을 할수 없게 되고

이를 아쉬워 한 일본 유도계에서 그에게 귀화하기를 권유하지만 아버지 추계이의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라는 당부에 따라 1998년 4월 그의 여동생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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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산시청에 들어가 유도 선수로 활동했으나, 2001년 9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이 이유에 대해 교포에 대한 차별,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한국 유도계의 텃세와 파벌 싸움, 자신이 한국에서는 2인자로서 대표가

될 수 없었기 때문 등 여러 추측이 일어났으나, 본인은 일본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더 맞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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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만 뽑을 때는 특정대 출신이 아니어서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던 그는, 세 명의 대표를 내보내는 국제대회에 비로소 국가대표로 나가

외국선수, 한국선수를 모두 물리치고 1위를 했다. 결국 국가대표 2진으로 발탁되어 아시안게임에 출전, 전 경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은 물론

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추성훈이 한국대표로 금메달을 땄을 때 은메달은 일본이었다.

그는 자기가 자란 나라의 선수를 꺾고 한국에 금메달을 안긴것이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후에도 국내에서 추성훈이 겪어야 하는 장벽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그는 "재일동포지만 일본에서 일본선수와 시합을 해도 경기장 안에서는 차별을 받지 않았다"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한 TV방송사에서 추성훈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일이 있었다. 바로 그 시절 추성훈이 시합장에서 카메라를 보고 결코 잊혀지지 않는 말을

 내뱉는다.


“바꿔야지. 말을 해도 안 됩니다, 여기는. 귀화한 다음에 일본에서 유도해야죠.”


결국 추성훈은 2001년 9월 아키야마로 돌아갔다. 일본으로 귀화한 것이다.

그의 꿈이었던 태극마크를 그는 버려야 했다.

그리고 그는 귀화하고 불과 두 달 후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4차례 국제대회를 연이어 석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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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2년 유도 선수로서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안동진을 꺾고 우승을 하게 된다.

 늘 같이 운동하던 선수들과 늘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운동하던 그 운동장에서 일장기를 단 일본인  아키야마 요시히로로 돌아와

그렇게 한국 선수와 운명같은 결전으로 그렇게 금메달을 목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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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 관중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으며 한 국내 스포츠신문은 이런 헤드라인을 뽑았다고 한다.


‘조국을 메쳤다’


강호동이 물었다. "한국이 싫고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 않느냐..?" 고...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는 복수같은 마음보다 자신을 놓친것을 조금은 아쉬워 해줬으면 좋겠다..며 너무나 솔직한 말을 했다.

아마 그 잠시의 머뭇거림 속에는 그 당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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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4세. 근 100년을 가지고 오던 한국국적을 한국생활 3년만에 귀화를 해버린것은 좀 의아하다는 강호동의 질문에..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며 100년...이라...하며 한숨을 토해내듯 고개를 떨구었다

[무릎팍 도사에서]

[시적출력 블로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