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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당구 열풍 일으킨 20세 여대생 차유람 - 인터뷰, 영상





정작 스무살 프로 포켓볼 당구선수는 인터뷰 도중 “얼짱”이라는 말이 나오자 미간을 찡그렸다.

“ ‘당구계의 보아’, ‘얼짱 스타’ 이런 거 다 만들어진 말이에요. 저는 테니스스타 샤라포바 얘기를 꺼낸 적도 없는데 ‘제2의 샤라포바 될 것’이라고 기사가 나와요. 언론이 저를 떠오르는 별로 만들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래서 기자님들이 무서워요.”

어 린 나이에 당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된 그는 인터뷰 약속 장소에 청바지·보라색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카메라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어, 편하게 얘기만 하는 거 아니었어요? 사진도 찍어요? 화장도 안했는데. ‘쌩얼’ 찍어도 되나.”


차유람은 잠시 화장실에 가서 파우더를 바르고 다시 나타났다.

―유명해진 지 1년이 안됩니다.

“지난해 9월 ‘공포의 13일’부터죠.”

―왜 공포의 13일인가요?

“지금은 좀 적응이 됐지만, 그때는 엄청나게 인터뷰를 했어요. 하루에 3~4개씩. 계속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데 굉장히 회의를 느꼈어요.”

그 날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트릭샷(묘기당구) 매직 챌린지 대회’가 열렸다. 포켓볼 섹시스타로 알려진 자넷 리 방한소식을 들은 취재진이 경기장에 몰렸다. 2006년 세계여자 포켓 나인볼 선수권대회 우승자 김가영(24)도 주목 대상이었다.

막 상 대회가 시작되자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은 건 당시 열아홉 살 ‘무명’ 차유람이었다. 모두들 “저런 예쁜 선수가 우리나라에 있었나”라는 반응이었다. 김가영을 제치고 결승에서 자넷 리에게 아쉽게 패하면서 무명은 유명을 넘어 스타가 됐다. 기사가 넘쳐났고, ‘얼짱 당구 소녀’ 등으로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미니홈피는 방문자가 넘쳤다.

이후 ‘차유람 신드롬’이 불었다. “골프에 박세리가 있다면, 당구엔 차유람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각 케이블 방송마다 당구 중계 편성이 늘었다. 당구하면 ‘담배연기’, ‘내기당구’만 생각하고 아이들 출입을 금지하던 부모들이 자녀 손을 잡고 당구 아카데미로 찾아오는 현상도 벌어졌다.


―당시 ‘저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이라도 당장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요’라고 얘기했는데, 지금은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그 때 ‘연예계 데뷔하면 어떻겠냐’는 쪽으로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모바일 화보도 찍자는 거예요. 제가 ‘절대 안 하겠다’고 질리도록 말했죠. 그러니까 인터뷰 요청이 줄었어요. 그때 흔들리지 않고 대처를 잘 한 것 같아요. 이제는 언론에서 왜 그러는지 이해도 좀 되고요.”

―지난달 29일 팬미팅도 열었습니다.

“소속사에서 도와주고 팬클럽(한 포털 사이트 카페 팬클럽 회원 수는 4600여 명에 이른다.) 쪽에서도 준비를 많이 했죠. 저는 몸만 가서 행사에 참석했죠. 어쨌든 우리나라 당구 선수가 처음으로 팬미팅을 가졌는데 그게 저라는 게 영광스럽고 감사할 뿐이에요.”

―당구칠 때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종종 잡히는데요. ‘표정 관리 좀 해야겠다’는 얘기를 많이 듣죠?

“당 구 칠 때 웃을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이 저한테 예쁜 모습을 많이 요구해요. 저는 제가 어떤 모습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제가 상품이 될 수 있지만 경기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경기를 할 때면 관중을 의식하지 않고 상대방을 의식하죠. 상대한테 약한 모습을 보일까봐 표정을 숨긴 적은 있어도, 관중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귀여운 표정을 짓진 않아요. 앞으로도 그렇게는 안 할거고.”

―‘실력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먼저 유명해져 아쉽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었죠.

“실 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얘기는 한 적이 있어요. ‘혹시 얼굴이 예뻐서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이런 질문 받으면 ‘네 가끔 부담스럽죠’라고 말하거든요. 그럼 다음날 ‘얼굴이 예뻐서 부담스러워’ 이렇게 나와요. 기자님들이 외모에 대한 많은 질문을 가지고 오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나중에 실력으로 극복해야죠.”


 

차유람이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다. 2003년 한국여자포켓 나인볼 여자부 1위를 시작으로 매년 수 많은 대회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그녀는 올해 해외 훈련과 외국 대회 출전으로 국내 랭킹전 경기에 빠져서 순위가 밀려났지만 최근까지 국내 랭킹 1위(현재 3위)였다.

―우리나라 당구가 침체기였다가 최근에 조금 살아나고 있는데요, 차유람씨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당구 붐(boom)’을 위해 차유람씨를 활용하는 것 같기도 한데.

“만 약에 그렇다면 저는 많이 활용 당하고 싶어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당구를 스포츠로 인식시킬 수 있는 것도 굉장히 뜻 깊은 일인 것 같아요. 제가 포켓볼 선수인데 쓰리 쿠션볼 행사나 이색 대결에 나가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테니스를 치다가 당구를 시작했죠. 당시 ‘박세리 신드롬’으로 골프열풍도 불었는데요, 왜 당구를 선택했죠?

“테 니스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집안 사정(차유람 부모는 인천에서 횟집을 하고 있다)이 별로 안 좋았어요. 골프는 돈이 많이 들잖아요. 언니랑 저랑 같이하면 돈이 두 배로 들어서요. 지금은 골프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당구가 저를 따라다녔는데, 지금은 제가 얘(당구)를 따라다녀요.”

―아버지(차성익씨·53) 권유로 당구를 시작했죠?

“제 가 당구 큐(cue) 한 번 잡아보지 않고 아빠가 하라고 해서 한 건 맞아요. 세계 제패할 수 있는 게 당구라고 하셨죠. 당시 부모님께서 ‘왜 자식 인생 망치냐’라는 소리 자주 들으셨어요. 하지만 저희들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하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학교까지 포기해 가면서 당구를 시킨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아 빠가 스포츠를 무척 좋아하시죠. 학생시절에 유명한 육상선수였다고 들었어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 건 저였어요. 1년 동안 아빠한테 졸랐어요. 당구를 치고 싶은데 공부가 정말 싫었거든요. 또 아이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해서 대인기피증 같은 것도 있었고요. 물론 지금은 친구가 많아요. 결국 부모님도 제 결정을 존중하셨죠. 이런 가족을 만난 것도 행운이죠.”

―하루 최소 8시간씩 연습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기본 스트로크 연습만 매일 1만번씩 했다는데, 당구가 싫었던 적은 없나요.

“정 말 많았어요. 여러 번 그만두려고 했죠. 지난해 9월까지도 그랬어요. 한번 해보세요. 얼마나 어려운데요. 제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고, 의욕도 떨어지고…. 제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해도 또 답이 없는 것 같았고요. 내가 잘해도 한국 실정이 많이 안 좋으니까요. 한 달간 큐를 놓고 방황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외국에 나가서 국제 경기에 자꾸 출전하다 보니까 꿈이 생긴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당구가 좋아졌어요.”

―왼쪽 어깨가 2㎝ 정도 처지고 등뼈도 휘었죠. 괜찮아요?

“몇 년 전에 씻으려고 거울을 보는데 왼쪽 어깨가 주저 앉은 거예요. 2년 전부터는 등뼈도 조금 바깥으로 튀어 나오기 시작했어요. 당구 칠 때는 모르겠는데 일상 생활을 할 때는 약간씩 아파요.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씨 인터뷰했던데, 그분 발 보셨죠? 그분에 비하면 전 아무 것도 아니죠. 모든 사람이 신체적인 고통을 안고 가잖아요. 특히 스포츠 선수들은. ‘괜찮냐’고 물어보면 제가 오히려 부담스러워요. 음, 굳이 말하자면 불면증이 문제예요. 점점 더 심해져요.”

―불면증이 얼마나 심해요?

“1~2시간 정도는 침대에 그냥 누워 있어야 해요. 아마 당구 때문인 것 같아요. 당구는 그냥 치면 10시간도 칠 수 있지만, 집중해서 치면 1시간만 쳐도 지치거든요. 계속 신경이 많이 쓰이니까 잠 자는데 영향이 있겠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갔는데,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별로요. 제 또래 애들은 연예인 얘기하고 시험 떨어진 얘기 하는데 저는 전혀 공감대가 없잖아요. 그런데 흥미를 못 느껴요. 그런데 교복은 한 번 입고 싶어요.”

―미니홈피에 가봤더니 1촌들이 거의 다 남자던데요.

“남 자인 친구가 훨씬 편해요. 제가 학교를 안 다닌데다가 당구 환경이 거의 남자가 많으니까. 경기 때마다 만나는 애들도 있고요, 제가 욕은 안 하지만 남자처럼 말을 거칠게 하고 애들한테 발길질도 하고…. 남자애들도 저를 엄청 세게 때려요.”

차유람은 미국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해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게 목표다.

“독 일 코치한테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코치가 하라는 대로 6시간 연습만 하는 걸 보고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연습 외에 게임도 2~3시간 정도 더 하니까 다른 외국 애들보다 훨씬 많이 한 거죠. ‘자기가 시키는 대로 아무 소리 안하고 다 하니까 놀랍다’고, 열심히 집중해서 하는 게 재능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자부심을 느껴요. 앞으로 이 재능을 살리면 1~2년 내에 세계 톱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계 톱이 안 돼도 괜찮아요. 그냥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 지금은 그것뿐이에요.”




차유람은… 


1987년 7월23일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2003년 10월 한국여자포켓 나인볼 랭킹전 1위를 시작으로 풀사랑 나인볼 오픈 1위(2004년9월), 제2회 KBF 전국포켓 나인볼 선수권대회 2위(2005년9월)를 차지했다.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 포켓볼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포켓볼 시작 6년 만에 국내프로랭킹 1위(현재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당구 관련 종합 기획사인 ‘드래곤 프로모션 코리아’에 스카우트돼 활동하고 있다.

차유람은 지난 2월 제2회 코리아 프로투어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뒤 내년 미국 여자프로선수 데뷔를 위해 독일·미국을 오가며 훈련과 대회 출전을 계속하고 있다. 올 해외 무대에서는 미국 바이킹 큐 레이디스 나인볼 투어 1위(3월), 미국 레이디스 스프릿 투어 스톱 2위(5월)에 올랐다.

키 160㎝, 몸무게 45㎏인 차유람은 집중력과 승부욕이 뛰어난 반면, 체력이 약한 것이 단점이다. 당구선수 치고는 키가 작다는 지적에 대해 차유람은 “세계적인 선수 중에는 키 작은 선수가 많고, 키가 작으면 단단한 이미지가 강해 서양 선수들이 훨씬 더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중2때 학교를 그만둔 차유람은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해 올해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했다.

차유람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대회가 없을 때는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훈련할 때는 인천 모 교회에 마련된 당구연습장에서 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