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참살이

귀농, 준비에서 정착까지


1. 귀농교육을 받고, 원하는 정보를 모아라
도시에서 귀농을 준비하는 순간 귀농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농학교에 참여하면 많은 정보와 사람 관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간혹 귀농교육을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직접 부딪쳐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농사만큼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합니다. 하늘도 하늘이지만 또한 이웃의 도움이 없다면 시작하기조차 힘듭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귀농은 고달프기만 합니다.

2. 철학적 고민을 가지고 시대와 호흡하라
철 학적 고민이라니 좀 생뚱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귀농은 단순히 봉급생활자에서 농부로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면적인 전환입니다. 나와 내 가족의 생활양식이 농촌생활에 맞게 변해가는 과정에서 무수한 철학적 고민이 따릅니다.
어 쩌다 생산을 많이 해서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하면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농민들이 수확철에 왜 속이 더 터지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수해나 태풍이라도 얻어맞는다면 답이 없습니다. 그럴 때, 쉽사리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내 선택을 믿고 나가려면 준비된 철학, 단단한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힘겨운 농촌과 무너져가는 농업 그 위에다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3. 도시의 편리함은 잊어라
결 론부터 말하자면 귀농을해서 도시생활과 같은 경제적 수준을 유지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이 주는 수많은 기쁨도 큰 것이지만 꼭 돈이 아니더라도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나름의 철학이 튼실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모두 돈과 맞바꾸기에 의식주와 건강문제, 교육문제에 들어가는 돈이 밑도 끝도 없습니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다르게 접근해서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귀농운동본부에 서 일하다 보면 '대체 자금이 얼마 정도 있어야 귀농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됩니다. 물론 답은 없지요. 그렇지만 굳이 답을 해야 할 때는 '몸 누일 집과 50평 텃밭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 정도를 넘어서 황토집을 짓던가, 시설농사를 짓던가, 소를 키우던가 하는 것음 모두 선택사항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다들 웃습니다.
도시생활을 고스란히 옮긴 형태의 귀농을 생각하면 자금은 수 억이 필요합니다. 도시에서 바쁘게 일하던 것처럼 농촌에서도 일하려고 한다면 우선 좀 멈추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귀농설계는 귀농지에서 해야 합니다. 물론 도시에서 설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농촌에서는 새로운 것들이 보입니다. 특히 땅사는 일, 집 짓는 일은 되도록 천천히 신중하게 하길 권합니다. 귀농은 치킨집 신규 창업과는 전혀 다릅니다.  농사짓는 일은 속도와의 경쟁이 아니라 천천히 느리게 사는 일입니다. 자금을 많이 들이면 그만큼 바쁘고 고달프게 됩니다.

4. 농사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수 십 년 유기농업을 하신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길 '돈 버는 작물은 없다. 땀흘린 만큼 거두고 먹는다는 진리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합니다. 귀농을 하겠다면 돈 번다는 개념이 달라야 합니다. 자급자족만 할 수 있어도, 좀 거칠게 말하면'시골에 붙어있을 수만 있어도' 성공적인 귀농이라고 귀농자들은 말합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면 이를테면 소를 여러마리 키우거나 시설작물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면 천천히 바닥부터 일을 익힌 후에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농업소득에 관해서 유념할 일은 유통에 관한 문제입니다.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제때에 제값으로 팔지 못한다면 그만큼 허탈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귀농자들은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맺은 인연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도시의 연고를 잘 활용하면 되지만 그것이 또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존 유통망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농민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작목반에 가입하거나 유기농 생산자로 인정을 받아 생협이나 한살림의 생산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채우려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농사로 돈 버는 방법! 그 어떤 작물이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능력이 있으면 가공을 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친지든 조직이든 든든한 유통망에 기대라는 말 이외에는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5. 농촌에서 직업을 이어가라
귀농을 하면 꼭 농사를 지어야 할까?아닙니다. 농촌에는 농사꾼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귀농한다고 꼭 농사만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10평 채마밭 가꾸는 일은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만 약 부부 중 한 사람이 고정된 수입이 있다면 여러 모로 수월합니다. 실제로 아내는 읍내에서 약사로 근무하고 남편은 농사꾼으로 땀 흘리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지역내 농업관련 활동을 전업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영농조합법인이나 생산자공동체의 사무일을 보거나 트럭을 몰고 배송하러 다니는 귀농자들도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수입도 수입이지만 지역정보를 두루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여자들은 여성농업인센터 같은 데서 방과 후 아이들을 지도하거나 면사무소에서 계약직으로 컴퓨터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런 일들은 농촌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도시에서 일해 본 귀농자들에게 유리합니다.

6. 지역 관공서나 조직을 적극 활용하라
현 재 귀농을 지원하는 안정된 지원체계는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시골 면사무소는 도시의 동사무소과 같지만 농촌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면사무 직원과 통해 놓으면 좋은 지역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농업기술센터의 역활도 무시 못합니다. 도시에서야 가급적 관공서에 안 가는 것이 좋지만 농촌은 관공서와 친해질 수록 좋습니다. 실질적인 귀농자 지원방안은 각 면단위에서 하고 있으니 속된 말로 자꾸 찔러야 합니다.

7. 배필을 찾듯이 지극정성으로 귀농지를 정해라
귀 농지 선정만큼 막막한 일은 또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지도를 펴서 논감고 찍은 곳을 돌아보았다는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고향으로 귀농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고향을 피하는 이유야 알지만 어떤 면에서 고향은 나를 품어줄 수 있는 곳입니다. 이제 농촌 어르신들의 귀농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어서 고향으로 귀농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는 귀농자가 있는 지역도 좋습니다. 귀농자의 마음은 귀농자가 알기에 서로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귀농자라고 해서 나를 도와줄 의무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알게된 귀농자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고 술 한잔 나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당장 내 목표가 급하다고 그런 소중한 인연을 허술하게 생각하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한 번 만난 귀농자와는 자주 안부도 묻고 농산물도 앞장서서 팔아주면서 더 깊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행여 사귀기도 힘들고 할 이야기가 없을까 하는 걱정은 마십시오. 농사 이야기만큼 사시사펄 무궁무진한 주제가 어디 있습니까.
그 외에 몇 가지 요령이 있습니다. 먼저 대상 지역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의 군을 정해서 집중 공략하십시오. 땅은 우선 빌려서 농사짓기를 권합니다. 마을 어른들은 농사짓는 것을 보고나서야 이 사람이 농살를 짓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그러니 첫 해 농사는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잘 하기보다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농지를 빌려주겠다는 사람, 내 땅을 싸게 사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면 옆 마을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땅을 사는 일과 집을 짓는 일을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농촌생활 속에서 얻는 정보야 말로 살아있는 정보입니다. 또 살면서 어떤 형태로 정착할지 가닥이 서면 농지와 집에 대한 시각이 이전과는 달라질겁니다.
귀농지를 찾는 일은 배필을 찾는 일처럼 아주 극적인 인연입니다. 노력이라는 필연고 하늘이라는 우연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내 맘에 쏙 드는 귀농지는 없습니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들면 그곳이 최고의 귀농지입니다.

8. 최후 비결, 귀농은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귀 농을 굳이 정의하자면 마을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귀농의 비결도 여기에 있고, 귀농과 전원생활의 차이도 여기에 있고, 귀농의 최종목표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귀농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마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점은 몸과 마음이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정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농촌이라는 이름 안에 있는 수맣은 요소들에 대한 애정과 농민에 대한 믿음이 그것입니다.흙은 늘 정직해서 내가 땀 흘린 만큼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들이 내게 기대는 아름다운 관계을 위한 노력은  꼭 뿌린만큼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에 힘들지만 그 과정이 귀농입니다.

                                                                                        by 이진천 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