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두두차이나
보시라이 사건은 사실상 1971년 린뱌오의 정변이 실패한 이래 두 번째 당내 정변이다. 2012년 들어 중공 정세는 내분과 대립이 격화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다.
왕리쥔 사건으로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군사정변 음모가 폭로되자 후진타오-원자바오가 보시라이에 대해 선수를 쳤다. 그렇다면 앞으로 보시라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또한 보시라이 배후의 저우융캉에서 장쩌민에 이르는 방대한 정치세력과 이익집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소식통에 따르면 중공 고위층은 왕리쥔 사건 처리에 대한 통제를 상실해 내분이 점차 증폭되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이 최악의 경우(집단 망명)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황치판의 배신: 보-저우 정변 입증
2월 6일 보시라이의 오른팔이자 충칭 공안국장이었던 왕리쥔이 갑자기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신청한 사건이 발생했다. 왕리쥔은 당시 3꾸러미의 기밀자료를 미국 측에 넘겼다고 한다. 미국 매체에서 폭로한 일부 내용에 따르면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정변을 일으켜 시진핑을 끌어내리려 했다.
3월 15일 중공 양회(兩會)가 끝난 후 보시라이는 해직당해 베이징에 억류됐고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한편 충칭시장 황치판은 태도를 돌변해 보시라이를 배신하고 보시라이의 모반음모를 폭로해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모반집단의 윤곽이 이미 드러났음을 증명했다.
황치판에 따르면,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저우융캉이 무장경찰을 동원해 미국 영사관을 포위했고 보시라이는 청두까지 쫓아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왕리쥔을 충칭으로 데려오되 필요하면 미 영사관에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왕리쥔이 만약 단순히 보시라이의 부패문제만을 폭로했다면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무장경찰을 동원해 미국 영사관을 포위하는 국제적인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리쥔의 폭로와 무산된 정변
17일 인터넷에는 중공중앙 판공청이 왕리쥔 사건에 대한 조사처리상황을 충칭 모 구(區)의 내부에 통보한 녹음이 전해졌다.
유튜브에도 퍼진 이 녹음에 포함된 다음 내용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후 후진타오가 직접 전문팀을 조직해 조치를 시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각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관계자를 보내 왕리쥔과 담화하고, 중앙기율위원회와 국가안전부가 책임지고 조사를 완성하며, 왕리쥔 사건의 사회적 충격을 감소시키고, 외교부문에서는 관련 외교공작을 전개해 외교 및 국제적 영향을 감소시키고, 충칭업무에 협조해 질서 유지를 강화한다.'
후진타오의 이런 움직임에서 보다시피 왕리쥔 사건에 대한 후-원의 처리는 이미 단순히 중앙기율위원회의 반(反)부패 내지는 정법위의 형사처벌 범주를 넘어섰다.
대기원 본사 칼럼니스트 장톈량 박사는 지금까지 드러난 각종 현상들에 비춰보면 보시라이 사건은 보다 광범위한 ‘모반 폭풍’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련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중에는 왕리쥔, 황치판, 저우융캉 및 전에 보시라이와 연합해 충칭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던 국방부장 량광례(梁光烈)와 청두 군구와 티베트 군구 정법위원 및 사령관 등이 포함되며 또 자오번산, 쓰마난, 쿵칭둥 등도 관련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레 왕리쥔 사건이 터지면서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모반계획에 혼란을 야기했고, 후진타오는 어쩔 수 없이 선수를 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군부 대표들이 잇따라 후-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이후 후-원은 양회가 끝나자마자 보시라이를 끌어내렸다.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모반계획은 이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베이징 고위인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끝난 후 중공 고위층 내부에서 보시라이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고 보시라이는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연금된 상태다.
이는 중공 역사상 1971년 린뱌오가 정변에 실패한 이래 두 번째 대형 모반사건이다.
파룬궁 탄압을 둘러싼 파벌 대립
왕리쥔이 수감되고 보시라이가 해직된 후에도 후-원과 장쩌민 파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외부에서는 중난하이 내부에서 18대를 둘러싸고 정치폭풍의 시작돼 고위층 내부투쟁이 더 공개적이고 심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시사평론가 왕화(王華)는 중공에는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후파 중앙 외에도 또 다른 실권을 지닌 ‘제2의 권력중앙’이 있으니 바로 장파 중앙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인민대 상무위원장 우방궈, 정협 주석 자칭린, 중앙정신문명건설지도위원회 주임 리창춘 등이 포함된다. 장파는 리창춘이 통제하는 언론기구 외에 저우융캉이 통제하는 공안, 검찰, 법원 등 폭력기구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총과 펜을 모두 차지한 셈이다.
이중 정법위는 공안, 국가안전부, 사법, 법원, 검찰을 관할하고 그 외 지방의 무장경찰을 동원하거나 사용할 권한이 있다. 특히 장쩌민은 1999년 파룬궁 탄압을 시작하면서 과거 ‘중앙문혁소조’와 유사한 초헌법적인 기구인 ‘610’사무실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파룬궁 박해정책을 집행하도록 했다.
‘610’은 정법위 서기가 직접 지도하며 모든 국가자원과 폭력기구를 동원할 수 있다. 뤄간에서 저우융캉에 이르기까지 줄곧 장파에서 맡아왔고, 장파에서 차기 정법위 서기로 내정했던 인물이 바로 보시라이다. 장파가 한사코 정법위를 차지하려는 이유는 장쩌민의 박해정책을 보호하고 자신들이 정적으로부터 숙청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파룬궁 박해정책을 집행하면서 장쩌민은 국가재정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자원을 동원했고 중국의 법제(法制)를 어지럽혔다. 더 중요한 것은 장쩌민, 저우융캉, 보시라이 등이 모두 파룬궁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파룬궁 수련자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한 것은 중국의 국가신뢰도에 큰 타격을 줬다. 대체 누가 이 책임을 질 것인가? 장파 인사들은 이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
반면 후진타오, 원자바오 및 시진핑은 파룬궁 탄압 문제에서 줄곧 장쩌민과 거리를 두면서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파룬궁 문제에서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분석가들은 이들의 태도는 장파 인사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고 바로 이 문제가 18대를 앞두고 두 파벌이 대립하는 핵심이 됐다고 말한다.
최악의 상황 대비하는 중공
왕리쥔 사건으로 촉발된 중공 내부투쟁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타협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 대해 중공 고위층의 인식은 대체로 일치한다.
첫째, 왕리쥔 사건은 시한폭탄처럼 일단 기밀이 폭로되자 국내외를 놀라게 했다. 더욱이 2012년은 주요 국가의 대통령 선거가 겹치고 국제적으로도 반공의 파도가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이 사건은 영향력이 22년 전 톈안먼사건을 훨씬 능가하며, 국제경제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 중공에게 감당할 수 없는 타격을 줄 것이다.
둘째, 국내의 대규모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끊이지 않고 저항세력들의 힘도 각종 경로와 방식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들은 보다 큰 규모의 민중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왕리쥔 사건은 언제든 전국적인 항의열조를 불러 일으켜 중공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을 유발할 수 있다.
중공 고위층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8341부대를 포함해 베이징에 주둔한 부대에까지 이미 침투한 조직이 있다는 것이 발견됐고, 이들이 군인 및 사회단체로 역할을 분담해 연합행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이 전파하는 것은 중공이 엄밀히 통제해온 왕리쥔 사건 중 고위층 내부의 투쟁관련 소식들이다.
현재 중공 고위층은 어쩔 수 없이 집단망명을 포함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떻게 대국(大國)의 비호를 받고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 문제와, 안전을 보장하는 당외 조직이나 인사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문제까지 포함돼 있다.
우웨이린(吳偉林)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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