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월(Wall)이라는 마을 주변에는 돌 벽이 있고, 그 바깥에는 인간 세계가 아닌, 신비의 왕국
스톰홀드(Stormhold)가 있습니다. 수백년 동안 아무도 넘어가지 못했던 이 경계를 던스턴이라는 청년 하나가 넘어가면서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던스턴은 하룻밤의 풋사랑(?) 때문에 졸지에 트리스탄이라는 아들을 둔 미혼부 처지가 됩니다. 물론 트리스탄이 주인공이죠.
세월이 흘러 18세가 된 트리스탄(찰리 콕스)은 그리 똘똘하게 자라나지는 못합니다. 동네의 미녀 빅토리아(시에나 밀러)를 염두에 두지만 약간 모자란데다 집안도 찢어지게 가난한 트리스탄으로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죠.
그러던 어느날, 하늘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똥별을 보고 있던 빅토리아는 트리스탄에게 "일주일 내로 저 별을 갖다 주면 너와 결혼해주겠노라"고 말해버립니다(바로 위 사진).
별이 떨어진 방향으로 가던 트리스탄은 결국 동네의 경계를 넘게 되죠(안 넘을거면 애당초 이 이야기가 시작한 보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변해 떨어진 그 별 이베인(클레어 데인즈) 때문에 스톰홀드의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 그리고 영생을 노리는 대마녀
라미아(미셸 파이퍼), 그리고 번개를 모으는 해적선장 셰익스피어(로버트 드 니로) 등등이 뒤얽혀 대혼전과 모험이 펼쳐집니다.
일단 모든 것을 떠나서 전제해야 할 것은, 이 영화는 철저하게 동화적인 상상력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 세계와 신비로운 세계의 경계가 아무나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법한 야트막한 돌담 하나라는 것, 그리고 그 돌담의 정체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부터 하나 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아예 이야기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화를 즐기려면 그 설정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죠.
하지만, 원작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영화를
단순히 어린이용 판타지에서 그치지 않게 하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유머감각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도 어른들을 미소짓게
하는 것은 영국식의 약간 비틀린 듯한 위트지만,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동화 비틀기' 유머는 굳이 말하자면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스타일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곱 명의 왕자 중에서 누구 하나가 차기 왕위 계승자로 가려지지 않으면 서로 죽고 죽인 형제들의 영혼이 단 한명도 승천할 수
없다는 규제 때문에 죽은 왕자들이 모두 망령처럼 주변을 떠도는 부분 하며, "너희는 7형제 중에서 넷이 남았구나. 내가 왕위에
오를 때에는 12형제중 나 혼자였지"라고 말하며 사악하게 웃는 늙은 왕(피터 오툴)은 도저히 동화라고는 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피터 오툴의 등장이 다소 놀라웠지만 그 밖에도 이 영화의 캐스팅은 대단합니다. 뭣보다 나오자마자 사라지는 왕자 세컨두스 역으로 이 사람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남은 영화 대부분의 분량에 이런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루퍼트 에버릿. 기억하시겠지만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끝부분에서 상심한 줄리아 로버츠를 멋진 춤 솜씨로 위로하면서 "Bond,
James Bond"라는 위트있는 대사를 던지는 동성애자 친구 역입니다. 진짜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면 언젠가 본드 역할에도
도전해볼만한 배우로 꼽혔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영화가 이런 스타들이 단역을 마다않고 출연할 정도로 대단한 영화인가 하는 생각은 한번쯤 해볼 만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이유는 뭘까요. 감독의 이름에 눈길이 머물게 됩니다.
매튜 본(Matthew Vaughn). 이 사람의 감독 경력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데뷔작이 007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연한 엎치락 뒤치락 액션 영화 '레이어 케이크'고 이게 두번째 작품입니다.
드비어 드루먼드라는 영국의 뼈대 있는 귀족 가문에서 자라난 귀공자 매튜는 영화계 진출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긴 이름을 포기합니다.
대신 재능있는 선배 감독 가이 리치를 알아보고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비롯한 그의 전 작품에서 제작을 맡죠. 조부를
설득해 제작비 지원까지 따 냅니다. 리치가 마돈나와 결혼할 때 들러리 역할을 맡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부러웠겠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마누라로 따지만 가이 리치가 명함을 내밀기 힘들어 집니다.
바로 그에게 1남1녀를 안겨준 아내가 왕년의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이기 때문이죠.
혹시 쓸데없이 아는게 많은 분들은 매튜 본이라는 이름에서 다른 게 생각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남자들로만 이뤄진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 올린 발레 제작자의 이름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의 이름은 Matthew Bourne. 스펠링도 다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Matthew Bourne은 역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입니다.
한글로 쓰면 모두 '매튜 본'이니 혼동의 여지가 충분히 있죠.
아무튼 '스타더스트'의 감독이 매튜 본이라는 것은 이 작품에 또 하나의 의미를 더해줍니다. 그가 왜 이 작품을 연출해야 했을까요. 그건 바로 금발의 미녀 스타(Star)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이건 말장난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역할을 맡은 클레어 데인즈와 관련해 생각해보면 농담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캐스팅에서 가장 의아해지는 부분은 바로 주인공인 별 역의 클레어 데인즈입니다.
설정대로라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빛나야 할 이 배우가 특수효과의 도움 없이지는 전혀 빛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평범한 인간 역의 시에나 밀러는 물론이고 이미 시들기 시작한 미셀 파이퍼보다도 빛나지 않습니다.
그럼 왜 훨씬 더 예쁜 시에나 밀러가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까...하는 문제로 넘어갑니다. 그건 아마도 밀러의 이미지 때문이었겠죠. 얼굴만 봐선 전혀 하자가 없어 보입니다만, 할리우드에서 시에나 밀러의 이미지에는 '골치덩이'라는 것이 항상 붙어 다닙니다.
오죽하면 희대의 바람둥이인 주드 로도 두손을 들고 도망가버렸을까요. 위 사진 같은 모습만 봐선 너무나 멋진 아가씨입니다만, 늘 찍히는 사진은 주로 이런 종류입니다. 독일 '슈피겔' 지군요.
그러다 보니 '가장 순수하고 빛나는 모습이어야 하는' 이베인 역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대신 지성파 여배우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클레어 데인즈가 감독이 생각한 느낌에 훨씬 가까웠던 모양이죠. 이런 의도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제가 감독이라면 절대 이런 캐스팅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에서의 데인즈를 보다 보면 혹시 기네스 팰트로를 캐스팅하려다 대안으로 데인즈가 선택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별' 역할의 데인즈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동화의 세계에서 실제 세계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버리기 힘들었습니다.
하긴, 때를 같이해서 데인즈도 이런 사진이 외신에 떴군요.^^ 좀 조심하지.
아무튼 '스타더스트'는 두어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오락물입니다.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어른들이 은근히 사악한 웃음을 띄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죠. 특히 드 니로가 연기하는 셰익스피어 선장은 이제껏 드 니로의 코믹 캐릭터 중에서는 손에 꼽을 만한 역할로 기록될 만 합니다.
가족나들이용이거나, 머릿속이 좀 복잡할 때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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