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럽지 않은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우주센터장(이학박사) 민경주 씨는 애국자다. 고분자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다 1989년‘해외유치 과학자’로 한국에 돌아왔다. 가족은 귀국을 만류했으나 조국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미국 미사일(로켓) 기술을 체득한 거의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 지난해 8월 영풍문고 센트럴시티점에서 기자가 읽을 만한 우주공학책을 골라주면서 그가 했던 말이 지금도 또렷하다.
“우리의 비전은 우리의 우주기술로 대한민국 국토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는 귀국한 뒤 KARI에서 우주로켓 KSR-Ⅰ과 KSR-Ⅱ를 개발했다. 1993년 6월 지축을 박차고 오른 KSR-Ⅰ은 고체연료를 쓰는 1단 로켓, 98년 6월 발사된 KSR-Ⅱ는 2단 고체로켓으로 단(段) 분리 실험을 했다. 그가 지키는 강토(疆土)의 남단 외나로도에 자리한 우주센터(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는 후학(後學)들이 “우주기술로 대한민국 국토를 보호하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해나갈 터전이다. 목표대로라면 2008년 말, ‘우리 발사체’에 실린 ‘우리 위성’이 이곳에서 우주로 솟구쳐 오른다.
8월14일, 높은 곳에서 흥한다는 고흥(高興)의 날씨는 새색시처럼 변덕스러웠다. 2003년 8월 첫 삽을 뜬 우주센터는 99% 완공됐다. 발사통제동, 추적레이더동, 발사체조립동, 위성시험동, 고체모터동, 광학장비동이 들어섰으며 올 3월 터파기 공사가 시작된 발사대가 남은 1%다.
“우주센터는 우주개발의 전초기지다. 우주 선진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은 1950년대부터 우주센터를 운용했다. 우주센터 건립과 발사체 기술 확보는 우주시대에서 자립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증거다.”(백홍렬 KARI 원장·공학박사)
우주를 나는 ‘천년의 꿈’은 내년 4월 실현된다. 첫 우주인 탄생은 ‘Space Korea’의 서막을 여는 상징적 행사. 이 이벤트에 이어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우리 로켓’으로 쏘아올리는 일은 자주국가로서 ‘우주 주권’을 확보하는 변곡점이요, 신기원(新紀元)이다.
“언제든 위성 발사 국가의 안위와 직결”
“우주시대를 맞이해 영토 안에 독자적인 우주센터를 보유하고 발사체(로켓)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주권 확보의 문제다.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지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은 국가의 미래, 안위와 직결된다.”(민경주 박사)
한국이 우주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때는 과학위성 우리별 1호를 띄운 1992년. 15년간 쏟은 구슬땀 덕분에 불모지에서 싹을 나무모로 키울 수 있었다. 한국은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일본 인도 등을 쫓는 ‘중간 그룹’에 속한다. 소형 위성 제작과 위성 운용 능력에선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2년까지 총 9기의 위성이 개발되는데 과학기술위성2호 통신해양기상위성,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5호)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전남고흥군 외나로도 우주센터. |
우주 주권을 확보하려면 위성체 제작 능력, 발사체 개발 능력, 영토 내 발사장 구축 등 3축이 완성돼야 한다. 한국은 위성체를 만드는 실력은 어느 정도 갖췄고, 우주센터가 사실상 완공되면서 발사장도 확보하게 됐다. 그러나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은 우주 선진국의 견제 등으로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발사체는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전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로켓에 위성을 실으면 발사체가, 핵무기를 실으면 핵미사일이 되는 것.
외나로도에서 쏘아올릴 위성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한국이 개발 중인 KSLV-Ⅰ발사체에 실리게 된다. 위성을 우주로 띄워올릴 발사체는 2단 로켓인데, 1단은 러시아와 공동개발 중이고 2단은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이 완료됐다. KARI는 최근 2단 로켓 상단부의 노즈페어링 전개시험에 성공했다. 노즈페어링 전개시험은 로켓 발사 이후 고도 164km 지점에서 과학기술위성 2호를 보호하는 로켓 상단부의 보호덮개가 올바르게 전개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과학기술위성 2호는 100kg의 소형 저궤도 위성으로, 사실상 제작이 완료됐다. KSLV-Ⅰ은 2015년께 1.5t 규모의 위성을 쏘아올릴 KSLV-Ⅱ를 위한 징검다리. KSLV-Ⅱ를 개발해야 한국은 자력으로 실용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저궤도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나라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할 수 있으며, 고고도 정지위성을 쏘아올린 나라는 ICBM을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KSLV-Ⅱ 개발에는 현실적 제약이 많다. 미국이 주도하는 MTCR(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 : 미사일기술통제체제)는 사거리 300km, 탄두 중량 500kg급 미사일의 수출과 기술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인공위성 발사체를 제작하는 경우엔 MTCR 회원국에 한해 기술 이전을 허가하지만, 우주 선진국들은 후발국으로의 기술 이전을 꺼리고 있다. MTCR에 가입하면서 사정이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다.
추적장비와 통제시설 시험 운용 착수
한국의 두 번째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2호가 지난해 7월28일 러시아 플레세츠크 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
당초 올 10월을 목표로 진행된 ‘외나로도의 꿈’은 러시아가 기술 이전을 늦추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월간 ‘신동아’는 지난해 10월 정부의 대외비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미국 국무부가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우려해 러시아 우주발사체 기술의 한국 이전에 반대하는 서한을 러시아 외무부에 보냈으며, 이후 러시아는 우주발사체 설계도 및 발사대 설계도의 한국 이전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신동아’ 2006년 11월호 ‘미국, 대량살상무기 개발 우려해 러시아 로켓기술 한국 이전 막았다’ 제하 기사 참조).
KSLV-Ⅰ 사업이 지연된 이유는 러시아와의 ‘우주기술보호협정(TSA)’ 체결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양국이 체결한 이 협정은 최근 러시아 의회의 동의를 얻는 작업까지 마무리됐다. 우주센터는 추적장비와 통제시설 시험 운용에 착수했다. 최근엔 쌍발기와 T-50을 각각 띄운 뒤 고흥과 제주도의 레이더로 추적하는 실험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KSLV-Ⅰ과 발사대를 제외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거의 완비해놓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뛰어든 산업 중 가장 늦게 시작해 가장 빨리 세계 수준을 따라잡은 분야가 바로 우주산업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13번째로 영토 내에 우주센터를 건설했다. 그러나 발사체를 확보하지 못하면 우주선진국 그룹에 낄 수 없다. 내년 말 KSLV-Ⅰ이 치솟으면 위성 발사에 성공한 국가들을 가리키는 ‘스페이스 클럽’에 9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클럽에 속한 나라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이다.
10, 9, 8, 7, 6, 5, 4, 3, 2, 1, 발사! ‘우리 발사체’로 ‘우리가 만든 위성’을 ‘우리 땅’에서 쏘아올리겠다는 ‘외나로도의 꿈’이 늦여름 벼 익듯 여물어가고 있다.
[주간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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