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_경제

평균으로 회귀 · 미래 예측 · 외삽법 · 파국 · 횡보

전일 볼린저밴드(Bollinger Band)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거기 어떤 분이 댓글을 하나 주셨습니다.

"밴드안에서 놀 확률 68%, 99% 나옵니다. 산수 할줄 알면 수식 분석해보세요. 근데 그건 지난 확률이고 미래 확률은 0% 입니다. 왜? 가격이 변하면 밴드가 따라 움직이기 때문. 수식을 보세요. 표준편차, 정규분표가 뭔지 보시고"

원래 저는 글을 통해 볼린져밴드의 유효성을 선전하거나, 주장하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다만, 기존의 이 지표 해석법에 일정분 의문을 일으켰고, 이에 보다 수학적인 해석과 판단법을 구하였을 뿐입니다.

기술적분석 일반이 그러하듯, 그게 진실, 진리를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투자 현실이란 깊고, 감은(black) 강속을 서발 삿대에 의지하여, 그리 건너려는 처절한 노력의 소산으로 보아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 기술적 지표는 과학이거나, 공리가 아니라, 그저 기술, 테크닉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리 지적하는 것은 제가 어설픈 감정에 호소하여, 지표 일반에 대하여 애정을 구하려함이 아니라, 사물의 실상이 그러하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입니다.

저는 볼린져밴드 말고도, 수많은 지표에 대한 분석적 연구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이곳에 시간을 두고 차례로 소개하려고 하였으나, 인터럽트가 걸리면 굳이 시간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볼린져밴드는 들머리에 하나 꺼내들었을 뿐, 기실 저는 이 지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소개를 할 요량이었던 지표가 더 있습니다만, 이는 별다른 인연에 맡기고자 합니다.

한편, 제가 소개한 볼린져밴드에 대한 이 새로운 해석법으로 성과를 보았다는 분도 계시긴 합니다. 부산에 계신 분인데 생면부지인 제게 사례를 하시기까지 하였는데, 이는 저것이 마냥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을 방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다만, 지표분석이란 맹목적으로 적용만 하여서는 아니되고, 그 내력을 살피고, 해석의 근거를 따지고, 판단의 타당성 여부를 잘 점검하여야 합니다. 사실, 저는 기술적 지표 일반에 대하여 이런 점을 환기하고도 싶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댓글 중, 미래 확률은 0%라는 말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혹 미래를 모른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확률이 0%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것은 통계학에서의 연속성과 관련된 문제로, 이리 그저 간단히 기분대로 단정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제, 주신 이 말씀에 기초하여, 유발되는 여러 생각의 끈을 잡고,  그저 되는대로 정리되지 않은 글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

평균 회귀와 미래 예측

이제, 프란시스 골턴 (Francis Galton, 1822~1911)을 앞세우고, 말을 이끌어 보고자 한다. 이 사람은 영국인으로 통계학계에선 입문 과정에서 흔히 소개되곤 한다. 골턴은 부모의 키와 자녀의 키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으며, 이를 회귀법칙(law of regression)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키는 세대 간 유전이 되며, 평균값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가령 부모 키가 크면 자녀 키가 크고, 반대로 부모 키가 작으면 자녀 키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그 변이(variation) 폭이 세대를 거쳐 가면서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회귀법칙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부모 키와 자녀의 키 사이의 관계는 선형함수를 이루는데, 이 양자의 관계 비율을 ratio of regression이라 불렀다. 이는 오늘 날 통계학의 회귀방정식, 상관계수와 개념이 비슷하다. 하지만, 이미 당시에도 존재하던 회귀식을 구하는 최소자승법을 골턴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료를 그림으로 그린 후, 적당히 눈대중으로 상관계수를 정했다. 게다가 단순한 부모 키가 아니라, 어머니 키에 1.08 가중치를 주어 부모 키를 평균하였고, 자녀 키 역시 여자에겐 1.08의 가중치를 가하였다. 

(※ 최소자승법 : method of least squares 어떤 시스템의 해(解)방정식을 근사적으로 구하는 방법이다. 구하려는 해와 실제 사이의 ‘오차의 제곱’의 총합이 최소가 되는 조건을 찾는 방법.)

또 다른 통계학자인 케틀레(Adolph Quetelet)는, 자료의 중심이 전체 자료의 대푯값이라 생각하였다. 여기서 중심이란 예컨대 자료의 평균값이라 여기면 이해가 편하다. 하지만 골턴은 중심이 아니라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료에 관심을 가졌다. 골턴은 통계학 자체가 아닌 유전학, 특히 우생학에 집중하였다. 따라서 집단의 중심(평균)적인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천재들에 관심이 많았다.

예컨대 정규분포의 끄트머리, 특히나 오른쪽 꼬리 부분에 주목하였다. 그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출산은 장려하고, 그렇지 못한 열등한 자의 출산은 제한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평균값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노태우는 보통 사람론을 폈다. 케틀레는 평균적인 사람들을 beautiful-of all which is good이라 하였다. 케들러야 통계학자이니까, 평균값으로써 세상의 현상을, 하나의 관찰, 분석 단위로 특정할 수 있음을 즐거워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노 씨의 보통 사람론은 순전 정치적 허사에 불과할 뿐, 일고의 가치도 없는 엉터리로 나는 이에 대한 생각을 어디선가 신랄하게 지적한 적이 있다. 

가우스(C. F. Gauss, 1777-1855)가 새롭게 해석한 바에 따르면, 정규분포의 중심은 관측 평균값, 좌우 나머지 부분은 오차 값이 된다. 하지만, 골턴의 주 관심부분은 평균값이 아니라 좌우 꼬리 부분이다. 그 역시 중심 값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가령 천재 남자와 부유한 상속녀 간에 결혼을 하여, 세대 간 유전을 지속적으로 꼬리 부분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 

(ⓒstudy.com)

(※ 정규분포 : normal distribution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을 참고할 것. 내가 접한 것 중에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친절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2&contents_id=2490) 

자, 내 이야기를 할 준비가 얼추 끝났다. 정규분포의 평균값이라는 것이 세상의 많은 일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푯값인가?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히 우리는 원하는 바를 얻게 되었는가? 가령 주식투자자치고 이동평균선이란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큰 성과를 보았다는 이를 찾기 어렵다. 만약 평균값이라는 것이 주가를 대변하는데 유익하다면, 이를 이용하여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재미를 좀 보았다면 좋았을 터인데,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통계학에선 일반 현상은 평균으로 회귀(regression to mean)한다고 가르친다. 주식투자자는 평균 회귀(mean reversion)라 하여, 오른 주가는 다시 내려 평균치로 수렴하고, 내린 주가는 평균치로 이끌려 들어온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충분히 내렸다고 여긴 주식이 부도가 나서 영원히 오르지 못하고, 지평선 밖으로 사라지기도 하며, 거꾸로, 주가수익비율(PER)가 과도하게 높은 데도, 높은 주가 수준을 상당 기간 유지하는 주식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평균으로 회귀하거나, 아니 그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설혹, 평균으로 회귀한다고 하여도 문제는 있다. 

즉 평균으로 복귀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더딘 경우, 여기 적응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평균이란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 조건에 따라 쉼 없이 이동하기도 한다. 이러할 경우엔 평균 회귀에 기초하여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주먹구구로 예측하는 것에 비해 더 나을 것도 없다. 게다가 주식투자의 경우 평균 근처 구간이 아니라, 평균을 훨씬 벗어난 구간에서야, 초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마치 골턴의 예처럼, 정규분포의 꼬리 부분에 처하여야, 우생학적 기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듯이, 주식 투자 역시 평균을 벗어난 주가 수준을 노려야, 초과 수익을 얻을 기회가 많아진다. 

종교적 맹신에 빠진 이들, 과도한 자기 신념에 충실한 이들을 보면, 나는 저들이 일반적 성질 집단 내의 정규분포의 꼬리 부분에 처한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꼬리 부분에 처한 저들이 폐쇄 공간에 함께 모여, 내부적으로 신념을 서로 교환하고, 강화할 때, 마치 골턴의 우생학적 대응처럼 꼬리 부분이 따로 결집하여, 저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평균 회귀론은 물리학적 세계라면 인간계보다는 더 쉽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과 같은 인간이 의지와 감정이 개입하는 영역에선, 평균 회귀론은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선 지탄을 받는 골턴의 우생학이란 것도, 기실 인간계 내부적으로는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가령 재벌, 정치권력 집단끼리 또는 이들 상호 간에, 폐쇄적인 통혼을 통해 정규분포의 우(右) 꼬리 부분 간의 결속을 강화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심화, 부의 집중 현상은, 의식적인 평균에로의 회귀를 거부하는, 저들 꼬리 부분, 그 힘의 존재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부자 감세니,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down effect)를 외치며, 정책 당국자는 꼬리 부분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저들은 신실한 중간 조정자가 아니라, 꼬리 부분에 속한 위장 세력일 따름이다. 비정규직이 반을 넘어가고 있는 한국의 오늘 현실은, 그야말로 비정규가 정규화 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식물계, 동물계도 인간이 끊임없이 관여하여, 품종 개량이란 이름으로 우생학적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평균으로의 회귀를 거스르는 작업을 인간은 이들 식물, 동물들에게 가하며, 이는 뭇 사람들로부터 인류 복지를 위한 공헌이라 상찬을 받는다. 작금엔 유전공학, 생물공학 등의 무시무시한 공격적 공학이, 생물학적 영역에 출현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인간에게 있어서는, 표면적으로는 우생학적 정책은 인권 문제를 일으키며, 거센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권은 자유 시민에게 주어진 권리이다. 이를 통해 재벌 등의 특정 위치에 있는 세력이나 계급은, 그들만의 선택과 집중으로 평균으로의 회귀를 완강히 거부한다. 

이렇듯, 인간만은 평균으로의 회귀 법칙에 저항한다.

따라서 평균으로 회귀(regression to mean)를 인간계에 적용할 때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자칫 그릇된 관측, 분석 결과를 초래케 될 우려가 많은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겐, 평균회귀란 그리 미더운 법칙이 아니다. 평균회귀를 자연계의 철칙으로 믿기보다는, 의사결정의 과정,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낳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는 불확실한 영역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고, 예측하는 데는 위험, risk가 따른다. 이 리스크를 어떻게 규정하고, 관리할 것인가? 이 문제는 또 다른 주제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한다.

평균회귀란 불안 의식이 낳은 사생아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신념에 찬 이들, 종교적 맹신자들 역시 불안에 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은 외적 믿음을 요구하게 된다. 그게 신일 수도 있고, 때론 신과 유사한 평균이란 레퍼런스를 의지처로 삼아, 불안을 잠재우며, 길고 긴 삶의 강을 건넌다. 나는 만인이 평균으로부터 멀어져, 독자적이고 비범(非凡)한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세상을 꿈꾼다. 물론 여긴 외부의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폭압이 전제되어서는 아니 되고, 자유로운 선택과 판단 하에, 저마다 하늘로 비상(飛翔)하는 독존(獨尊) 의식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오늘날 정치 현실을 보면, 입에 침 바르고, 단꿀인 양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어주며, 그대를 도와주겠다고 밤도둑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열린 장롱, 흐트러진 자취만 남는다. 

***

참고 자료로 나의 지난 글 한 토막을 여기 소개해둔다. 자연과학 실험실이나, 사회과학 연구실에서도 흔히 쓰는 기초적 기법인 외삽법을 두고 생각을 일으켜보았다. 외삽법은 부지불식간 생활 현실 가까이에 있다. 가령 주어진 용기안에 공기압을 조사했는데, 1 단위 온도 변화에 따라, 1 단위 기압 변화가 생겼다 하자. 그러면 2 단위 온도 변화가 생기면, 2 단위 기압 변화가 생기리라 예상을 한다. 이는 외삽법의 전형적인 한 예이다. 외삽법은 기실 앞에서 다룬 ‘평균으로의 회귀’에 기반한다. 과연 외삽법이란 신뢰할 만한 것인가? 

외삽법(外揷法, extrapolation)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모두 배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예측 일반의 가장 기초적인 수단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림을 보면 까만 점들이 기히 얻어진 데이터들이다. 이 때 다가올 여섯 번째 시점에서 어떤 데이터가 올 것인가? 우리는 기존의 데이터들을 기초로 물음표(?) 표시가 있는 위치에 다음 데이터가 존재하리라고 예측을 하곤 한다. 이렇듯 기존의 자료를 해석하여 그 외부의 자료를 가상으로 구축하는 방법을 외삽법(外揷法 extrapolation)이라고 한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는 내삽법(內揷法 interpolation)이라고 있는데, 이는 기존 자료들 외부가 아닌 내부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흔히 보간법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외삽법은 기존의 자료의 경향성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이는 자료들의 분포 또는 궤적이 연속성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만약 자료 외부 공간 영역 또는 미래에 급격한 불연속적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외삽법은 대단히 위험한 예측 방법이 되고 만다. (※ 여기서 외부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는 예측자가 경험하지 못한 과거 또는 미래, 공간적으로는 예측자의 자료 미획득 상태 공간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설명의 편의상 외부를 “미래”로 한정하여 지칭하므로서 예측이란 주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우리가 여론조사에서 흔히 듣는 “95% 신뢰구간” 운운할 때도, 표본집단이 충분히 커서 모집단의 분포를 통계학적으로 대표한다고 한들, 모집단이 어떠한 이유로 연속성을 잃고 급격한 변동을 겪게 되면 0%의 신뢰조차 담보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고려 요소를 확인하여 두지 않을 수 없다. 외삽법의 “정확한 확정”과 “불확실성”(또는 "불연속성")이다. “불확실성”과 "불연속성"은 다른 속성들이지만, 여기서는 "불연속성"에 대하여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외삽법의 확정이란, 여러 종류의 외삽 기법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이다. 즉 선형적인 외삽법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비선형적인 것을 택할 것인가? 개별적으로는 선형, 다항식, 스플라인 등등의 자료의 형태에 따라 적절한 외삽법을 잘 선택하여야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외삽법을 잘 적용하였다한들, 천체의 운동법칙과 같은 질서정연한 현상이 아닌 한, 대부분은 내적 포텐셜, 외부 조건 변동 등에 따라 예상과 다른 결과에 봉착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 외삽이 되었든 내삽이 되었든 무엇이 인간의 예측을 어긋나게 하는 것일까? 대표적인 게 파국과 랜덤워크라고 생각한다. 

***

파국(Catastrophe)

우리 사회에서 겪었던 대표적인 파국사건은 성수대교 붕락이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다리가 어느 날 아침 붕괴되어 강 속으로 두 동강나 떨어져버렸다. 외삽법에 입각한 의식으로 늘 건너던 다리를 대하고 있었다면, 여지없이 불행을 당하고 만다. 긋그저께도, 그저께도, 어제도 멀쩡하였으니, 이를 외삽하면 오늘 역시 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사면에 쌓여 있던 눈더미들이 빛을 받아 얼핏 푸르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허물어져 내리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사태가 된다.  

3년간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식사 후 그의 입가에 묻은 고춧가루를 본 순간 그녀는 절교를 선언한다. 향엄은 돌자갈이 대에 부딪히는 소리에 깨쳤고, 동산은 물 건너다 자기 그림자를 보고 깨쳤다고 한다. 어제까지 범부였던 이들이 담박 도를 이루었음이니, 이를 일러 번갯불의 깨우침, 돈오(頓悟)라 하는 게 아닌가? 

작은 자극으로 균형이 깨지면서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다. 이렇듯 불연속적으로 급변하는 현상은 그 흔한 외삽법으로는 감지하기 어렵다. 

그림을 보면 고무판을 구부려 만든 가상공간이 있다. 사건, 또는 사태의 추이가 지금 a에서 b로 진행한다고 생각해본다. 보통 외삽법을 구사하는 경우 고무판이 구부러져 있지 않고 그냥 편평하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지구관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편평하다. 땅은 반듯하니 고르게 연속하여 퍼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기존 자료들이 궤적이 a에서 b로 진행된 경우 b 이후의 궤적 예측은 b의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외삽된다.

하지만, 지금 제시된 고무판처럼 공간이 구부러져 있다면 b에서 아래로 뚝 떨어져 c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비유하건데, 기존의 구조공간이 편평한 고무판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한, 외삽법으로 이동평균을 동원하든 지수이동평균, 스플라인, FFT(Fast Fourier Transform), ARIMA 등등 무엇을 동원하든 b의 지점에서는 모두 c로 추락하게 된다. 

이 때에 파국을 맞게 된다. 만약 예측 현장에서 구부러진 고무판 같은 구조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외삽도구를 동원한들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구부러진 고무판위에 우리가 居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대인과 다름없이 地.方.에 살고 있음이다. 사후에 비로소 그 구조공간을 그럴 듯이 분석해낼 뿐이다. 

어렸을 때, 마음보 강퍅한 동네 영감탱이를 놀려 먹는 놀이가 있다. 그가 평소 잘 다니는 길 한가운데 몰래 구덩이를 파고 똥을 퍼 넣는다. 우리는 이를 호방다리라고 불렀지만, 다른 곳에서는 뭣이라 하였을까? 그 위는 표가 나지 않게 살짝 흙으로 덮는다. 조각달조차 비추지 않는 그믐밤이다. 물레방아 옆, 외따로 떨어진 과부댁을 훔치듯 다녀오던 그는 그만 호방다리에 발을 딛고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

이 파국의 현장을 그 뉘라서 피할 수 있었겠는가? 예전에 신정아氏가 문제의 중심에 서자, 비로소 역학자들이 주둥이를 헐어 “도색기 흐르나 말년 운은 꽝”이라고 떠벌린다. 모두들 申의 남자가 아니라고 발뺌하기 바쁜 와중에, 이들 관상쟁이들은 다투어 자신이 神의 아들, 딸들이라며 허공을 향해 외쳐댄다. 늘 그렇듯이 파국은 사후에 확인되기에 삶은 어지럽다.

***

갈지자행보(Random walk,亂步)

외삽에서는 기존 데이터들이 표출하고 있는 경향성, 추세(趨勢)에 의지한다. 하지만 랜덤워크가설에 의하면 그런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술 취한 이의 발걸음처럼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관찰 대상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화란의 튤립 투기는 모든 사람이 욕심에 취하였기에 오히려 한 방향으로 달려 나가 끝없이 투기가 일어났다. 현실에서 주식시장이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이 아니라는 반증은 많이 있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이 온전히 술에 취해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관여되지 않는 자연현상은 어떨까? 자연은 술에 취할 일이 없으니 오히려 취보(醉步) 현상을 보일 것 같기도 한다. 기예보가 곧잘 틀리는 이유는 현 기상청이 대단히 멍청한 집단이기도 하지만, 기상현상은 원천적으로 난보(亂步)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들 기상청 인사들의 부끄러움이 조금 감추어질런가? 

***

여기 두 집안이 있다.

모두 딸만 9명씩 두고 있다. 우연히도 두 집안 부인들은 같은 날 출산을 앞두고 있다. 만약 이들 집안의 신생아 성별을 예측하고자 한다고 하자. 외삽법을 차용한다면 미래의 아기들은 당연 딸이 될 것이 예측된다. 수십 년 동안 출산만 하였다 하면 딸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엔 아들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은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집 할머니가 아니라면, 섣부른 짓이다. 외삽법은 연속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고 있는 까닭이다. 년년히 딸이라는 출산의 경향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다음 차회의 출산이 딸일 가능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드디어 양 집안에 새 생명이 태어났다.

A 집안은 또 딸을 낳아 도합 딸만 10명을 꽉 채운다.

B 집안은 이번엔 아들을 낳아 그 집 할머니는 온 동네잔치까지 벌인다.

A 집안은 딸을 또 낳아 외삽법의 위력을 증거하였으나, 

새로운 정보를 외부에 전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B 집안은 기존의 국면을 깨뜨리고(파국,破局) 극대의 정보량을 창출해내었다. 지금 여기서 자연스럽게 정보량이란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외삽법이 깨질 때 정보량이 극대화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제나, 어제나 일관되게 유지되던 추세가 지금도 그대로이고, 미래에도 그리 예측되고, 아니 예정되다시피 되고 있는 상태라면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이며, 기회가 발생하겠는가?

이 양 집안은 모두 10명의 자식을 꽉 채우게 되었다라는 사실에선 일치하지만, 정보 생산량에선 천양지차를 시현한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말하여지고 있는 기술적분석가들은 추세를 말하며 오늘도 열심히 잣대를 주가 궤적에 갖다 대고 그리며 미래를 외삽한다. 주가 추세가 유지되는 한 기회는 없다. 추세가 깨질 때라야 새로운 황금의 기회가 도래한다. 그런데, 문제는 외삽법은 추세가 깨지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데 그리 재빠르지 못한 대안(對案)이다.

외삽법은 미래를 예측하는데 기대하는 만큼의 충분한 보상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사후적으로 예측이 틀렸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곤 한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후에라야 조급증과 부패를 확인하고 대책을 세우곤 한다. 눈사태가 나서 수많은 건물과 사람이 다친 연후라야, 산기슭 밑에 대책 없이 집을 짓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삽법이 미래를 예측하는데 동원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증거는 바로 이런 파국의 실례로서 확인된다.

그럼 외삽법을 뛰어넘는 예측술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이후의 행로를 더 밝히려드는 것은 못할 것도 없지만, 외려 주제를 넘는 짓이라, 혹인(惑人)에게 작폐를 짓는 것인 바, 이만 삼가는 것이 도리겠다.    

***

댓글

[레벨:13]ersillion 2018.02.11 11:26

주식은 통계죠. 보조지표도 대부분 통계에서 인간이 알아보기 쉽도록 가공한것에 불과합니다.

왜 보조지표겠어요...

[레벨:4]네오니케 2018.02.11 12:14

모든분석에는 정성적 분석과 정량적 분석이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정량적 분석을 훨씬 선호하죠. 숫자로 모든걸 개량화 해서 평가하기 편하기 때문이죠. 발칸님 글보면 치열하게 연구하고 분석해봤다는게 느껴집니다만 보조지표를 너무 맹신하지는 마세요. 주식이나 코인판은 정성적 분석이 더 통할때가 많습니다. 

[레벨:7]valcan 2018.02.11 13:46

글 하나 이제 막 내놓았는데, 이로써 지표를 맹신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지요. 사물을 관찰할 때, 정성, 정량 나누는 것도 한 방편이겠지만, 정성이 최고라 맹신한다면 이 또한 위험한 노릇이지요. 본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성질은 아니지만, 짐짓 부러 이리 말해놓고 보니까, 역시나 이런 규정은 스스로도 영 못 마땅한 화법이군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 누가 되었든, 그 다음을 미처 보지 않은 이상, 함부로 제가 대롱으로 본 틀 안에 가둬 평가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 넘어 있는 존재가 사람이거든요. 

***

이럴줄 알고 노파심에, 본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여 두었는데, 역시나 이런 분이 나타나고 있군요. 그럼 외삽법을 뛰어넘는 예측술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이후의 행로를 더 밝히려드는 것은 못할 것도 없지만, 외려 주제를 넘는 짓이라, 혹인(惑人)에게 작폐를 짓는 것인 바, 이만 삼가는 것이 도리겠다.

[레벨:4]BT리움 2018.02.11 14:47

언젠간 아시겠지만 지금의 노력과 열정을 다른 접근법으로 시세를 바라보는 통찰력에 베팅하심이 더 현명하리란 것은 시간이 알려드릴겁니다. 지금 이순간도 패자와 승자가 구분되어짐은 왜 그들의 나의 깊이에이토록 쉽게 평가절하 할수 있는가도 고민해 보셔야 할겁니다. 주식이든 코인이든 그어는 보조지표없이 현새의 시세 하나만으로 대응하는 순간이 와야 제대로된 승부가 가능합니다.지표란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의 수준에서 켤코벗어날수 없습니다.통계는 확률의 게임에서 분명 하나의 승패를 결정짖는 요소에서 더좋은 조건을 제시해 줄수 있으나 문제는 그 통계적 조건운 벗어났을때는 인간의 절제된 판단력이 개입되어야 하는데 결코 그 절제의 순간에 완벽한 선택을 할수 없게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도박의 수준에 있는 모든 것들에서 심리란 것을 배제한 통계는 결코 도움이 될수 없음을 전해 드리고 싶네요

[레벨:7]valcan 2018.02.11 16:14

글 하나로 미루어 제가 보조지표에 매몰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지금 글은 다만 보조지표, 통계학에 대하여 한정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신 말씀은 소위 판단적 예측(judgmental forecasts)에 관한 것인데, 또한 그 실효성에 대하여는 설이 분분한 과제 영역입니다. 제가 진작에 연구한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몇몇 자료를 여기 소개해드립니다. 어느 경지에 이르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자료가 혹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판단적 예측은 장기 예측에 있어 특히 부정확하였다.( Hogarth and Makridakis 1982 )

2. 간단한 정량적 예측은 정교한 통계학적 접근법보다 예측의 정확성이 높다. ( Hogarth and Makridakis 1982 )

3. 정량적 예측 방법이 판단적 예측보다 같거나 높은 성과를 내었다. ( Hogarth and Makridakis 1982 )

4. 전문 투자분석가(analysts)의 예측은 일반적인 단순한 예측보다 정확하지 못하였다. ( Richard. R. M. 1976 )

5. 주식거래 대행업자(stockbroker)가 업계에서의 경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판단적 정책(judgmental policy)에 따른 통찰력은 오히려 약하다. ( Slovic, P., Fleissner, D. and Bauman, W. S. )

6. 국내 증권사들이 매주 월요일 『이번 주의 투자 추천 종목』으로 발표하는 주식들의 수익률이 시장평균수익률을 오히려 밑돈다. ( 유관희[한양대,회계학] -- ‘우리나라 증권사들의 예측 정보 내용에 관한 실증연구’, 분석기간 : 1987.1 ~ 1990.12 )

[레벨:4]BT리움 2018.02.11 17:52

결국 주식이든 코인이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아주 단순화 시키는 것이 최종 종착역이라 생각합니다. 초심은 많은것을 알기위해 노력하는 단계이나 그 영역을 벗어난 이후는 집대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죠. 내가 정한 이론적 실전을 스스로 행할수 있느냐 없느냐의 자기 자신과의 전투. 그어떤 지식도 뛰어넘어야만 하는 마지막 심리. 위의 내용은 그 제일 중요한 부분이 그저 학문적 통계로 일관되었기에 부족한 부분이 제 눈에는 보였기에 관여 가득한 글로 이어졌다 보시면 됩니다. 그어떤 경제학자나 통계학자라 할지라도 이 분야에서 성공 못하는 이유가 다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레벨:16]moonli 2018.02.11 18:11

한말씀 덧붙이자면... 다만, 지표분석이란 맹목적으로 적용만 하여서는 아니되고, 그 내력을 살피고, 해석의 근거를 따지고, 판단의 타당성 여부를 잘 점검하여야 합니다. 사실, 저는 기술적 지표 일반에 대하여 이런 점을 환기하고도 싶었던 것입니다. 윗글에 지극히 공감을 합니다... 다시 말해 대부분 기술적 분석이라고 보조지표를 보고 매매하는 분들을 보면 현상을 보고 매매에 임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되더라... 식으로 말이죠... 그 보조지표가 최초 개발자가 어떤 의도로 개발을 했고 왜 그런 수식이 적용되었는지 깊이 있게 이해를 해야 그 보조지표의 진정한 의미를 알수가 있는데 대부분을 그러지를 않죠... 저도 주변 사람들한테 보조지표를 참고만 하지 맹신 하지 말라고들 조언합니다. 이는 대부분 현상만 보고 미래를 판단하려는데 이는 참 바보같은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보조지표는 절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지표가 아닙니다. 그런 보조지표가 나왔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지표만 보고 돈을 벌었겠죠... 보조지표는 현재의 시세가 어떤 위치 혹은 상황에 와 있고 앞으로 대응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말 그대로 보조지표로써 참고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투자 시장은 대응만 잘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구요... 말이 길어졌는데, 발칸님의 글을 앞으로도 계속 봤으면 하는 마음에 몇자 적었습니다. 

[레벨:7]valcan 2018.02.11 18:39

제가 예전에 포토샵을 어떤 이에게 가르쳤습니다. 원리를 먼저 가르치고, 나중에 구체적 실전 예를 알려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원리는 필요없고 그저 방법만 일러 달라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방법을 언제 다 알려줍니까? 원리만 알면 천변만변 수법들을 임기응변하며, 창조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지요. 대개, 무지한 사람은 원리를 무시하고, 마냥 문제 해결 결과만을 원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십년 세월이 흐르나 밤낮 발전이 없고 제 자리 뛰기에 급급하지요. 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정석을 배울 때, 문제 풀이에 열중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들이 문제 풀이 몇 개 하였다 서로 경쟁할 때, 저는 애오라지 원리만 철저히 익혔지요. 시험 기간이야말로 외려 제겐 문제풀이를 할 기회였습니다. 원리만 익혀두면, 아무리 배배 꼬인 문제도, 주체적인 판단 능력으로 잘 대처하며 옳게 풀어 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또, 포토샵, 수학의 정석과 얽힌 상황이 오버랩되는군요, 기실 볼린져밴드는 서론에 불과하고, 제가 차차 공개하려던 기술적분석법이 있는데, 이곳에선 더는 이를 소개하지 않으려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지표이되, 엉터리로 접근하는 것을, 제가 물리학의 파동학(Wave)을 원용 새롭게 밝힌 것입니다. 이것을 이곳에 밝히려는 것은 땡굴에서 저도 나름 도움을 받았기에, 회향하려 하였던 것인데 지금으로선 기분이 나지 않는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날 집에 돌아와서, 집식구에게 이리 투덜대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무식한 녀석들과는 거래하지 마라. 狗嘴裡吐不出象牙 개 주둥아리 안에선 결코 상아 이빨이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이 말을 명심해라, 내 유언으로 알아라.' 

[레벨:5]nicola 2018.02.12 10:17

볼린져밴드 말고도, 수많은 지표에 대한 분석적 연구를 한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10년이상 데이타를 가지고 거의 모든 보조지표를 개별 혹은 합성해서 과거 백테스트해봤습니다. 결과는 예상하신데로 입니다. 깔끔하게 우하향합니다. 

-출처: 땡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