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식 서명대신 ‘一心’ 직접 수결
“병합조약 인정못해” 의지 드러내
한일강제병합조약 비준서 서명을 거부한 순종황제가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 하루 전날 직접 수결(手決)한 훈장증서가 27일 발견됐다. 고종황제가 사용한 일심(一心) 수결을 조금 변형한 이 수결은 순종황제가 1907년 11월 18일 공식 즉위한 뒤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 희귀 사례로 손꼽힌다.
교지(敎旨)연구가 김문웅(64)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실장은 순종의 수결이 들어간 1910년 8월 28일자 훈장증을 공개했다. 이규상(李圭象)이란 경시(현재 경찰 직급으로 총경에 해당)에게 팔괘장(八卦章·8등급 훈장 중 6등급)을 수여한다는 이 증서에는 주로 외교관계 문서용으로 쓰이는 대한국새가 찍혀 있고 그 위에 순종황제의 일심 수결이 적혀 있다.
한일강제병합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게 통감의 서명을 거친 뒤 내각의 의결을 거쳤으나 그 비준서에는 순종의 서명 없이 대한국새만 날인됐다. 당시 순정황후 윤 씨가 치마폭에 감춰 둔 국새를 친일파였던 그 숙부 윤덕영이 강제로 빼앗아 날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실장은 이 훈장증의 순종황제 수결에 대해 “황제가 강제병합조약 체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에 의해 조약이 강제 공표되는 29일까지 통치권을 계속 행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설명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순종황제가 공식 즉위한 뒤 대부분 공문서에 황제의 수결은 일본식으로 순종황제의 이름인 척(척) 서명으로 바뀌었다”며 “조약의 공표 일을 앞두고 마지막 황제권을 행사하는 순종황제가 정식 수결을 갖춘 문서를 통해 일제가 조작한 공문서의 부당성을 지적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자료”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순종황제 시대 공문서의 황제 수결은 척(척) 서명으로 대체됐으며 일제가 이를 위조한 경우도 많았다.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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