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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살이

암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법

암 백신 원리를 이용한 암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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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연구소 홈페이지에 제시된 암백신 치료후의 생존자. melanoma는 피부에 발생하는 피부암의 한 종류다

암 백신(cancer vaccine)은 사람의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인식하고, 파괴하도록 하는 과정을 자극해 암에 대한 면역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백신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론적으로는 면역치료법에 속하는 것이지만 예방이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익히 알려져 있는 전염병에 대한 백신과 구별된다.

암 백신은 치료용이므로 일단 암이 발생한 후에 사용한다. 간암을 일으키는 B형 간염 바이러스(hepatitis B virus)나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인체 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에 대한 백신은 이들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을 예방함으로써 암 발생을 막는다는 점에서 위에서 기술한 암 백신과는 개념적으로 구별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로 암 백신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전염성 병원체가 인체에 감염되면 인체의 면역체계는 항원을 인식하여 항체를 생성한다. 이와 같이 항원의 자극에 의해 항체를 생산하면서 일어나는 면역반응을 후천성 면역이라 하며, 이와 반대로 선천성 면역은 항원의 자극 없이도 일어날 수 있는 면역이다. 항체를 생성하는 후천성 면역은 일단 항원에 노출이 되면 다시 노출되는 경우 처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항체를 생성할 수 있다.

일반적인 백신은 이와 같은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병원체에 감염되기 전에 각각의 병원체가 항원성을 나타낼 수 있는 부위를 미리 사람에게 노출시킴으로써 병원체가 실제로 감염되는 경우 후천성 면역반응이 잘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에이즈나 독감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항원성을 지닌 부위에 변이가 잘 일어나므로 예방을 위한 백신을 투여하더라도 변이가 생긴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면역반응을 나타낼 수 없다는 점이 예방접종법의 개발을 어렵게 하는 이유다.

암의 종류에 따라 암세포가 서로 다르므로 세포표면에 존재하는 항원성을 지닌 부위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한 가지 종류의 백신으로 모든 암을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암세포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성질도 있으므로 잘 연구하면 한 방에 모든 암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탄생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는 있다.

암 백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학 연구자들은 각자의 이론에 따라 어떻게 하면 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인지를 불철주야 연구하고 있으며, 이제 암 백신도 실용화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서울대학교 병원장을 지내신 한만청 교수께서 쓰신 책의 제목이다. 필자는 이를 암세포가 비록 정상세포는 아니지만 우리 몸에서 유래된 것이고, 이를 완전히 쳐부수는 방법이 현재로는 거의 불가능하니 차라리 친구라 생각하고 함께 잘 살자는 뜻으로 이해했다.

암 세포의 근원이 우리 몸에 존재하는 세포인 만큼 인체의 면역체계는 암세포가 항상 적이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우리 몸의 일부라 생각하고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몸에 필요하지 않은 ‘암’을 쓸데없는 침입자로 간주해 적극적으로 물리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순간 암세포가 자라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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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베스트(Biovest International) 회사에서 개발중인 암백신의 원리

의학이 과학이라는 점을 신봉하시는 독자들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확실히 확인된 것만) 받아들이고 싶으시겠지만 과학을 연구하다 보면 아주 부족한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큼지막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확인하는 어려운 실험을 해야 할 경우가 흔히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세워지는 가설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상상에 가까운 경우가 흔히 있곤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나 호킹의 블랙홀 이론도 초기 가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었다.

조지아 의과대학의 히(He) 교수는 “선천성 면역을 담당하는 T세포는 종양(암은 종양 중에서 악성인 경우를 가리킨다) 발생시 세포가 자라나기 전에 수년 동안 이를 막는 면역기능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종양은 아주 영리해 이와 같은 면역체계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자라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세포가 자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면역성을 더 크게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바람직한 방법이 항원성을 지닌 물질을 숙주에 주입함으로써 후천성 면역을 강화하는 것이다.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에는 T세포, B세포, 가지세포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으며, 인체에 항원을 노출시키기 위해서는 바이러스를 벡터(vector, 인체에 주입하는 물질을 원하는 곳까지 배달해 주는 기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

T세포에 의한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재조합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종양세포가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려면 인체의 면역기능을 억제해야 하며, indoleamine 2,3-oxygenase(IDO)라는 효소는 종양세포 성장이 T세포에 의해 억제되는 과정을 방해하는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IDO는 항암효과를 막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IDO의 기능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 종양세포에 대한 T세포의 면역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논문이 최근에 발표되기도 했다.

암 백신의 원리를 이용한 암 치료제 개발
지난 글에서 소개한 암 백신 연구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암연구소(Cancer Research Institute, CRI)는 암의 면역치료법과 암 백신 연구를 위해 자체 연구진은 물론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암 백신과 관련된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구내용을 토론할 수 있는 학술대회를 매년 10월경에 개최하여 일개 사설 연구기관이 신개념의 치료법 도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암 연구소외에도 1999년 전립선암 백신을 개발한 슬론캐터링 연구소와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 등 저명한 암연구기관은 물론, 암 백신에 관심을 가진 여러 연구자들과 파르멕사(Pharmexa), 오니백스(Onyvax Limited), 안티제닉스(Antigenics Inc.) 등 수많은 벤처회사와 제약회사들이 암치료를 위한 암 백신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중이다.

현재 개발 단계에 있는 대부분의 암 백신은 특정 암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용 백신이긴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것과 IDO에 의한 T세포의 기능 강화 등과 같이 다양한 종류의 암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치료제도 개발 중에 있다. 항암제가 그러하듯이 언젠가는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암 백신도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제 동물실험이 끝난 단계이거나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한 제한적인 목적으로 인체에 투여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지만, 앞으로 암 백신에 대한 연구가 더 활성화되어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암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