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인기가 정조의 인기를 못 따라잡고 있다. 이성계의 2대손인 세종이 이성계의 16대손인 정조에게 한참이나 뒤져있다. 이는 <이산>이 3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데에 비해, <대왕세종>은 20%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을 보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세종 임금은 여느 한민족 군주의 추격을 불허하는 결정적인 '한방'이 있다. 바로 한글 창제라는 불후의 대업적이다. 한민족이 한글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 또 한국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되지 않는 한 세종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군주'로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에 비해, 좀 불경한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조 임금은 그 '한방'이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탕평정치와 르네상스를 일정 정도 구현한 공로는 있지만, 또 개혁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 못지않게 뜨거웠지만, 결정적으로 정조는 그 '한방'을 남기지 못했다.
정조가 시원하게 날린 공이 홈런이 될 뻔했지만, 상대방 외야수가 펜스 위로 멋지게 뛰어올라 그 공을 잡아버렸다고 하면 좀 불손한 표현이 될까? 그 상대방 외야수는 다름 아닌 정순왕후였다.
정조 사후에 정순왕후가 개혁을 원위치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조선이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구한말의 그 혹독한 수난을 겪었으니,
다시 말해 홈런이 될 뻔한 공을 쳤는데도 팀이 게임에서 패배했으므로 정조는 뭐라 할 말이 없는 처지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대왕세종>이 <이산>에 뒤지는 이유는?
이처럼 객관적인 '팀 공헌도'에서는 정조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세종이 왜 드라마 시청률에서는 14대손을 따라잡지 못하는 걸까? 이산에 비해 너무 늙어서 그런 건 아닐테고, 또 이산만큼 미소를 잘 짓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닐테고,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왕세종>이 <이산>의 인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원인과 관련하여 캐스팅을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극본 구성상의 문제에 국한하여 그 원인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동안 두 사극을 보면서 <대왕세종>은 어딘가 산만한 반면 <이산>은 선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산>의 극본이 축소를 지향하고 있는 데 비해, <대왕세종>의 극본은 확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갈등을 동시에 '죄다' 보여주려는 <대왕세종>
<대왕세종>이 확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복합적인 갈등관계를 동시에 그것도 '죄다' 보여주려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드라마에서는 구왕파·충녕대군파·양녕대군파·효령대군파·경녕군파·고려황실세력·명나라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대왕세종>의 작가가 비록 상상을 통해서나마 당시의 시대 상황을 총체적으로 그려내려는 의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세종을 둘러싼 모든 정치 역학관계를 역동성 있게 그려내려 하는 것이다.
'제3남에 불과한 충녕대군의 등극 과정에서 부모님과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큰형은 물론 작은형과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또 배다른 형제인 경녕군과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고려왕조를 지지하는 세력은 물론이고 명나라나 몽골족도 당시 조선왕실의 갈등구도에 일정 정도는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충녕대군파와 기타 세력 간의 갈등만 있었겠느냐? 기타 세력 상호 간의 갈등도 처리해보자. 양녕대군파와 경녕군파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고려황실 잔존세력과 구왕파(이방원 중심) 간에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또 머리 좋은 천민인 장영실은 분명히 체제에 불만을 품었을 테니, 그가 고려황실 잔존세력에 가세했을 가능성도 한 번 그려보자.'
이런 모든 상황을 총체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데에 <대왕세종> 작가의 의도가 있다. 그런 총체적인 상황을 구체적 역사지식이 아닌 머릿속 상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데에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그런 시도 자체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같은 총체적인 갈등구도를 선명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충녕대군파와 기타 세력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기타 세력 상호 간의 갈등까지도 상당히 비중 있게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로서는 어디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드라마는 어딘가 산만하다. 충녕대군파와 기타 세력 간의 갈등에 방점을 찍고 기타 세력 상호 간의 갈등은 간략히 처리할 필요가 있는데, 그 같은 강약 조절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점인 것이다.
복합적인 갈등구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 자체는 훌륭한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갈등구도의 강약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도대체 이 드라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이산>의 갈등구도
'이산이냐 아니냐'로 간명하게 압축한 <이산>
그에 비해 <이산>의 작가는 정조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대결로 갈등구도를 축소하고 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드라마에서는 이산 이외의 사람들 간의 갈등구도는 가급적 생략되고 있다. 모든 것이 '이산이냐 아니냐'로 간명하게 압축되고 있다.
최근 이산 이외의 사람들 상호 간(예컨대, 효의황후와 홍국영)에 갈등이 나타나긴 있지만, 이산과 기타 인물들 간의 갈등에 비하면 그것은 그리 큰 비중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갈등구도가 정조세력 대 반대세력으로 압축되는 그 선명함 때문에 <이산>의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무로 비유하면, 이 드라마에는 줄기만 있고 가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의 본류와 무관한 일부 희극적 요소(예컨대, 춘화의 거성)를 배제하면, 이 드라마에서는 웬만한 사실관계는 물론이고 꼭 필수적인 사실관계마저 '싹둑싹둑' 잘려나가고 있다. '복잡한 것은 모두 가라'는 한마디 구호 아래 말이다.
예를 들면, 이 드라마에서는 정조의 등극을 가장 극렬히 방해한 세력이 다름 아닌 외척 홍인한이었다는 점이 생략되었다. 홍인한은 그저 최석주(가상 인물)나 정후겸의 추종자 정도로만 묘사되었다. 이 드라마에서 홍씨는 원칙적으로 정조를 지지하는 세력일 뿐이다.
또 정순왕후와 김귀주 등이 세손 시절의 이산에 대해 옹호적 태도를 취했다는 점 역시 이 드라마에서는 생략되었다. 그 둘은 그냥 '무식'하게 정조를 반대한 것으로만 표현되었다. 겉으로는 세손을 지지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를 견제한 정순왕후·김귀주의 복합적인 내면세계가 그려지지 않은 것이다. 좀 복잡하다 싶은 내용은 모두 다 배제된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꼭 필수적인 청나라와의 관계마저도 이 드라마에서는 생략되고 있다. 또한 당시 재야에 존재한 탈(脫)체제 흐름도 이 드라마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군주 정조가 일정 정도는 진보적 흐름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알기 힘든 것이다.
이와 같은 축소의 미 덕분에 <이산> 시청자들은 비교적 선명하게 드라마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갈등구도가 아주 선명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확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왕세종>은 갈등구도의 산만함 때문에 <이산>의 인기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어느 군주에게도 뒤지지 않는 불후의 업적을 많이 남긴 세종 임금이 '새파랗게 젊은 후손'인 정조 임금의 인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시청률 측면에서 말이다.
역사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대왕세종>의 시도 '참신'
그 러나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역사 학습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대왕세종>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 존재했을 법한 모든 갈등구도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에, 비록 드라마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역사란 저렇게 돌아가는 것이구나' 하는 인식만큼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내용을 선명하게 전달한다는 목표 하에 필수적인 갈등구도마저 무 자르듯이 싹둑싹둑 잘라내 버리면, 시청자들에게 사극을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게 될 것이다. <대왕세종>은 비록 상상을 통해서나마 시청자들에게 역사의 법칙을 비교적 충실히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세종 임금은 정조 임금보다 훨씬 늙었지만, <대왕세종>은 <이산>보다 훨씬 젊다. <대왕세종>은 22부밖에 안 나갔지만, <이산>은 53회나 나갔다. 그러므로 <대왕세종>이 앞으로 훨씬 더 기회가 많다.
<대왕세종>이 향후 방영분에서 복합적인 갈등구도를 충실히 보여주되 충녕대군파와 기타 세력 간의 갈등에 방점을 찍고 기타 세력 상호 간의 갈등구도는 간단히 처리하는 방법을 구사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좀더 선명하게 다가서는 드라마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그래야만 '저 야심 많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대왕세종>의 이미지) 세종 임금께서 하루라도 빨리 정조 임금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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